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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01 17:27 수정 : 2019.11.02 02:31

배정한

서울대 조경학과 교수·‘환경과조경’ 편집주간

미지의 땅 노들섬이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원래는 섬이 아니었다. 용산 아래의 넓은 모래밭이었던 이 땅은 1917년 용산과 노량진을 잇는 한강인도교를 건설하면서 흙을 돋우고 석축을 쌓아올리며 섬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섬 동쪽의 백사장에서 강수욕을 하며 피서를 즐기던, 한강의 대표 휴양지이자 절경의 명소였다. 한강 백사장 모래를 퍼 날라 강 북단에 제방도로를 쌓으면서 마침내 노들섬은 고립되고 유기되어 지도 바깥으로 추방됐다.

강 한가운데 버려진 이 땅엔 도시의 욕망이 주기적으로 들끓었다. 종합 유원지와 대규모 관광타운 개발사업이 수차례 계획되고 번번이 취소됐다. 2000년대에 들어서자 세계적 랜드마크를 목표로 내건 오페라하우스, 노들섬예술센터, 한강예술섬이 연이어 추진됐지만, 설계안까지 정한 상태에서 공사비와 접근성 문제로 모두 무산됐다.

2012년을 넘어서며 노들섬의 운명은 변곡점을 지난다. 노들섬의 지혜로운 활용을 위해 사회적 공감대를 모으는 다양한 노력이 펼쳐졌다. 시민 포럼, 아이디어 공모, 학생 디자인 캠프, 전문가 워크숍 등을 토대로 ‘시민 모두가 함께 지속적으로 가꾸고 즐기는 장소’ ‘단계적으로 완성되는 과정 중심적 조성’이라는 두 가지 방향이 도출됐다. 2015년부터는 관행적인 공간 프로젝트 추진 방식과 다른 혁신적 공모 과정을 통해 사업이 본격화됐다. 시설을 먼저 계획하고 콘텐츠를 나중에 집어넣는 방식이 아니라, 콘텐츠와 운영 프로그램을 우선 기획하고 그것에 맞는 시설과 공간을 설계하는 3단계 공모가 진행됐다.

선 운영 기획, 후 공간 설계와 조성이라는 실험적 공모 방식을 통해 젊은 스타트업 어반트랜스포머(대표 김정빈 서울시립대 교수)가 운영자로 뽑혔다. ‘대중음악을 중심으로 한 예술창작 기지’라는 운영자의 구상을 담아낼 공간의 설계자로는 젊은 건축집단 ‘엠엠케이플러스’(MMK+)가 선정됐다. 실험은 불확실성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4년이라는 긴 여정 속에서 법, 제도, 실행이 충돌하는 갖가지 난관을 겪었지만, 마침내 운영자의 구상이 구현됐고 지난 9월 말 새 노들섬의 문이 열렸다. 방치된 지 거의 반세기 만에 복합문화공간의 옷을 입고 노들섬이 돌아왔다.

개장 소식을 다룬 지면들을 훑어보다 김정빈 운영총감독의 인터뷰 기사 한 구절에 시선이 멈췄다. “단 하루의 자발적 표류. 일상을 벗어나 문득 표류하듯이 찾아와 예기치 않은 즐거움을 발견하는 곳, 그곳이 노들섬입니다.” 표류, 마다할 이유가 없다. 연구실 문을 박차고 나왔다. 한강대교를 지나는 버스는 다리 위 정류장에 자발적 표류자를 내려준다. 한강대교와 똑같은 레벨로 설계된 새 노들섬의 상층 광장은 평일 오후의 나른한 여백으로 충만했다. 공연 준비에 부산한 공연장 건물을 스치듯 둘러보고, 검박한 건물 곳곳에 들어선 독립서점과 가드닝숍, 라이프스타일 가게들을 어슬렁거리다 강이 내려다보이는 카페에 앉아 생맥주를 시켰다.

낮술에 나른해진 몸을 느릿느릿 움직여 넓은 잔디마당을 산책했다. 어느덧 익숙해진 서늘한 강바람을 친구 삼아 섬 하단 시멘트 둔치를 한 바퀴 돌았다. 갈라진 시멘트 틈새로 야생의 풀들이 삐져나온 이 길은 반세기 가까이 유기된 노들섬의 옛 시간이다. 버드나무 사이로 해넘이가 시작됐다. 그러나 만추의 노을은 마냥 게으르다. 한강철교 너머, 여의도의 스카이라인 뒤로 펼쳐진 높고 푸른 하늘이 보라에서 진홍을 거쳐 다시 주황으로 변신을 거듭한다. 북적이는 도시 서울에도 이렇게 넉넉한 풍경이 있었다. 소란한 도시의 일상에 지친 어느 표류자에게 노들섬은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질문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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