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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25 18:06 수정 : 2019.10.26 14:44

노광우

영화칼럼니스트

1980년대 할리우드는 근육질의 실베스터 스탤론과 아널드 슈워제네거를 주인공으로 한 액션영화들을 주로 선보였다. 이들은 남근을 상징하는 로켓포와 중기관총을 들고 미국에 위협이 될 만한 국제 테러리스트들을 응징했다. 수전 제퍼즈는 이 액션영화 주인공들의 단단한 근육질 몸을 ‘하드 바디’라고 일컬으며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이 주창한 ‘강력한 미국의 복원’이라는 노선에 조응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강경노선은 1970년대 베트남전의 실질적인 패배와 1980년대 이란 미국대사관 인질 구출 실패 등과 같은 미국의 외교 참사와 국제무대에서 겪은 굴욕에 대한 반동이었다.

<람보> 1편은 원래 베트남에서 복무했던 존 람보가 민간인으로서의 삶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강조했다. 그러나 람보를 주인공으로 한 속편이 제작되면서 람보는 베트남에 남아 있는 미군 인질을 구출하는 특수임무를 띤 인물로 바뀌었다. 그래서 영화는 특수무기를 잘 다루는, 신출귀몰한 람보의 활약을 주로 다루었다.

이번에 개봉한 <람보: 라스트 워>는 이 시리즈를 종결하는 작품이다. 영화는 여러모로 ‘엑스맨’ 시리즈의 외전인 <로건>과 비교할 만한다. <로건>과 <람보: 라스트 워>는 나이 든 남성 영웅들의 마지막 활약상을 그린다. <로건>은 ‘엑스맨’ 시리즈의 주요 캐릭터인 로건/울버린이 노쇠한 도망자 신세가 됐고 정부 요원에 맞서 어린 돌연변이들을 탈출시키는 이야기다. 이는 존 웨인이 늙고 죽어가는 총잡이로 나오던 1970년대 쇠퇴기의 서부영화와 국가기관으로부터 도망가는 무법자를 다룬 서부영화의 코드를 공유했다.

<람보: 라스트 워>는 폭우가 쏟아지는 숲에서 람보가 조난당한 사람들을 구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때 람보는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말을 타고 나타난다. 구조를 마친 람보가 돌아가는 집은 드넓은 애리조나 초원 한가운데에 있는 말을 기르는 목장이다. 목장의 마당에는 람보가 베트남에서나 경험했을 지하터널을 파놓았는데 그가 거처하는 지하공간에는 기관총과 윈체스터 라이플이 구비돼 있다. 서부영화와 람보가 겪은 베트남전의 시각적 관습을 섞어놓은 셈이다.

영화는 람보의 조카 가브리엘라가 가족을 버린 아버지를 찾아 멕시코로 갔다가 실종되고 람보가 조카를 구하러 갔다가 멕시코의 인신매매 조직과 일전을 벌이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을 넘나드는 람보와 멕시코 범죄조직을 통해 트럼프의 장벽과 그 밑을 통과하는 땅굴을 보여준다. 젊은 시절에는 해외로 나가 국제적인 공산주의 세력을 응징하던 람보는 이제는 늙고 지쳐 자기 집 마당에서, 미국에 침입한 외적에 맞서 싸운다. 트럼프 시대 미국의 다른 나라에 대한 배타적 태도가 담겨 있다.

곧 개봉할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도 나이 든 슈워제네거가 등장하는 마지막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될 것으로 보인다. ‘람보’와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끝나면 1980년대식 ‘하드 바디’는 퇴장할 것이다. 미국을 위협하는 국제 테러리스트들을 제거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이야기는 이미 마블 시네마 유니버스로 옮겨갔다. 마블의 슈퍼히어로들은 단련된 근육질 신체 대신 특수합금 슈트를 착용하고 비브라늄으로 만든 방패를 들었거나 방사선에 오염된 거미에 물린 신체를 가졌으며, 인간이 아닌 신적인 존재로 나오기도 한다. 또 이들은 위성과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빅데이터를 검색해서 적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첩보활동을 벌인다. 훨씬 업그레이드된 디지털 슈퍼 바디가 하드 바디를 대신하는 상황인 것이다. ‘팍스 아메리카나’를 유지하는 데는 우월한 신체뿐만 아니라 방대한 정보 처리능력도 중요한 것으로 간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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