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2.21 18:27
수정 : 2018.12.22 13:32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9년 8월1일부로 강사법이 시행된다. 강사들이 교원으로서의 최소한의 지위를 확보하게 되는 일인데, 이는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입법의 본래 취지와 무관하게 7만명 이상의 시간강사들이 법에 명시된 최소 강좌를 확보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불확실하다. 대학별 강사노조들이 초유의 파업에 나서고 있는 것은 이런 까닭일 것이다.
나는 좀 다른 관점에서 강사법의 문제를 생각하고 싶다. 강사들이 처해 있는 상황은 노동의 관점에서도, 계급·계층의 관점에서도 일반적인 노동자들과는 다른 특수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력과 임금 관계를 논의할 때, 우리들은 흔히 고학력=고임금, 저학력=저임금의 구도를 생각하기 쉽다. 전체적인 고용구조하의 소득 수준을 보면, 실제로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 하지만 강사들의 경우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들은 사회 전체로 보면, 학력 수준에서는 가장 높은 위치에 있지만, 소득 수준에서 보자면 최하층에 처해 있다.
1990년대까지는 박사과정 중에 시간강사로 출강하는 일이 흔했지만, 현재는 박사학위가 있어야 간신히 대학의 시간강의를 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에는 국내파와 유학파의 구분이 없다. 고학력 빈곤 문제가 매우 심각한 상황인 것이다.
또 한 가지 시간강사 문제에서 고려되어야 할 것은 연령 문제다. 한국에서든 외국에서든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연령은 만 40살 전후인 경우가 많다. 이 시기는 학업·연구·강의와 함께, 결혼·육아·생계 문제를 가장 고단하게 수행해야 할 시기이기도 하다. 다른 모든 것을 떠나서 경제적 압력이 가장 심각한 시기인데, 그렇다고 해서 대학을 떠나 새로운 직업을 탐색한다는 것은 거의 모험에 가깝다.
시간강사 문제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는 이들이 고학력 지식인, 그런 가운데서도 비판적 지식인에 해당된다는 점이다. 소득 수준으로 보면, 시간강사의 소득은 고용된 비정규 노동자보다도 더 낮은 수준이다. 일반적으로 빈곤선에 접근할 정도로 임금소득이 현저하게 낮아지면, 생존 그 자체가 문제가 되어 정치적 무관심층이 되는 경향이 큰데, 거꾸로 고학력 지식인들은 그럴수록 더 첨예한 정치적 비판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박사학위를 소지한 고학력 지식인들은 지배계급 내부의 피지배 분파로서의 계급·계층적 속성을 갖고 있다. 지식인들 역시 자기이익이라는 개인적 성취도 생각하지만, 그가 속해 있는 사회와 국가, 그리고 문명의 전망에 대해서도 골똘하게 생각하는 존재다. 그런데 자기가 속한 사회, 국가, 문명이 삶의 전망을 폐쇄하거나 자신의 존재근거 자체를 부정한다고 인식된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 것인가.
짐작하건대 결과는 이 사회, 국가, 문명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틀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과 발언과 행동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런 7만명 이상의 고학력 정치적 반대자들의 불안은 일차적으로 강사법 관련 예산을 삭감한 국회와 정부 등 정치세력 모두에 대한 불신·비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 문제는 정부와 교육당국이 책임 있게 나서야 한다. 강사법 시행에 필요한 예산의 충분한 현실적 증액과 변화된 제도와 시행령 등의 미비로 인해 현재 각 대학에서 나타나고 있는 혼란을 적극적으로 조정하고 관리·감독을 해야 한다.
정부와 교육당국이 뒷짐 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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