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1.30 18:06
수정 : 2018.12.01 12:49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한부모 가정의 어려운 환경과 상황엔 동의하지만 국가가 책임지는 것은 곤란하다.” 한부모 가정 지원예산 전액을 삭감하자면서, 한 자유한국당 의원이 했다는 말이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내 귀를 의심했다.
나는 우리 모두가 이 부분에서 ‘대한민국 헌법 제34조’를 상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논란의 중대성을 고려하여 해당 조문을 전부 인용하고자 한다. “제34조 ①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②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 ③ 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④ 국가는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할 의무를 진다. ⑤ 신체장애자 및 질병·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⑥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인간다운 생활은 모든 국민의 ‘권리’로 규정되어 있다. 이러한 ‘권리’를 수호하기 위해 국민은 국가운영에 필요한 공동의 비용을 조세의 형태로 납부하고, 정부는 각종의 정책을 통해 자원을 재분배한다. 국가가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온정주의에 기초한 선택사항이 아니다. 그것은 헌법적 ‘의무’다. 그 ‘의무’에서 특히 강조되는 것은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는 더 높은 책임과 의무가 강제된다는 것이다. 가령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향상” “신체장애자 및 질병·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 등에 대해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
이혼·사별은 물론 기타 여러 이유로 한부모 가정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이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일찍부터 나타난 현상이고, 이 때문에 거의 모든 선진 국가가 각종 사회보장·사회복지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는 이유이다.
한부모 가정이 처하게 되는 곤란은 고질화한 인습적 차별은 차치하고라도, 가장 큰 것은 저소득에 따른 사실상의 경제적 박해 상태다. 가구소득의 측면에서 보면 월소득 평균치가 190만원으로 파악되고 있는데, 이는 도시근로자 평균 가구소득에 현저하게 미달한다. 사회적 돌봄 시스템의 지원·보강이 없다면, 특히 영·유아를 둔 단독 가장은 비정규·시간제 일자리를 찾을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자녀 세대로 대물림되는 ‘구조화된 빈곤’에 포위될 가능성이 크다.
“한부모 가정의 어려운 환경과 상황엔 동의하지만 국가가 책임지는 것은 곤란하다”는 발언은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 즉 ‘국가의 책임’을 경제적 박해 상태에 빠져 있는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논법이다. 책임의 주체가 헌법상 명백하게 국가로 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책임지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한다면, 대한민국은 사회도 없고 국가도 없는 상태라고 간주하는 것이 된다.
한부모 가정 지원예산 심의 과정을 지켜보는 국민은 왜 분노할 수밖에 없었는가. 위와 같은 발언이 잠재적으로는 예산안 심의의 모든 항목, 정책 집행의 모든 사안에 정략적으로 악용될 위험이 있다는 신호를 읽었기 때문이다. 가령 “당신들이 처한 어려운 환경과 상황에는 동의하지만, 국가가 책임지는 것은 곤란하다”는 식의 발언이 계속되고 실제로 관철된다면, 어떤 현실이 초래될 것인가. 정치 공동체로서 대한민국의 통합성은 균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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