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2.05 18:42
수정 : 2016.02.05 18:42
한남동의 카페 ‘테이크아웃드로잉’에 두 번 가 보았다. 이 카페는 단지 커피만 파는 게 아니라 1층과 2층 공간 자체가 하나의 미술관이며 공연장이기도 하다. 나는 2층에서 독서 토크 행사를 진행한 적이 있고, 놀라운 퓨전 국악밴드의 공연을 관람하기도 했다. 지금도 이곳에서는 어떤 전시, 포럼, 모임 등이 열리고 있다. 이러한 전시와 모임은 ‘돈’이나 ‘권력’과는 하등 상관이 없다. 독립적이고 적극적인 예술을 표방하며 ‘동네미술관’이 되기를 원하는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의식적으로 이런 행사들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비싼 한남동 땅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 자체가, 시공간이 모두 자본의 회전율을 높이는 데 이용되는 자본주의의 법칙을 거스르는 일이다.
이 테이크아웃드로잉의 정신이 또 다른 아티스트에 의해 위협받는 중이다. 건물을 사들인 가수 싸이가 이들을 내보내고 그 자리에서 다른 일을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장기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들어왔던 테이크아웃드로잉을 내보내고 독립 예술가의 공간을 대형 프랜차이즈 상업으로 대체시키면 싸이는 그저 앉아서 매달 수천만원을 더 벌 수 있다. 싸이의 본모습은 아티스트로서 쓴 가사가 아닌, 건물주로서 행하는 강제집행 속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놀기 좋아’하는 ‘쿨’한 가수가 아니라 시세차익과 임대료 수익을 극대화시키려는 건물주가 바로 그것이다.
가난한 예술가나 소상공인들이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어떤 공간에 사람이 몰리자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건물주는 재건축을 하거나 임대료를 끝없이 높인다. 이 과정에서 원래 문화를 만들었던 이들은 쫓겨나고 대규모 자본의 상업시설이 들어온다. 어지럽고 가끔 지저분하기는 하지만 자유로운 활기가 넘쳤던 공간은 돈으로 처바른 거대하고 깨끗한 공간으로 변한다. 이를 ‘젠트리피케이션’이라 부른다. ‘취향을 세련되게 한다’는 뜻의 부드러운 이 말은 사실 ‘인간의 공간’이 ‘자본의 공간’으로 변하는 폭력을 제거해버린 말이다. 뉴욕의 가난한 예술가들이 임대료를 올려 이익을 취하려는 건물주에게 노래와 사랑과 투쟁으로 맞서는 일을 그린 뮤지컬 <렌트>가 다루는 주제가 바로 이것이다. 뮤지컬 속의 가난한 예술가들이 1년을 재는 기준이 몇 잔의 커피인지 어떤 사랑인지라면(“Seasons of Love”), 건물주에게 그 기준은 1년치 임대료 총액일 것이다. <렌트>는 싸이에게 맞서는 테이크아웃드로잉의 투쟁으로 여기 한국에서 다시 반복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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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강형준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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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공간이 자본의 공간으로 바뀌는 젠트리피케이션은 사실 한국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중이다. 구불구불하고 복잡하고 시끄럽던 공간은 깔끔하고 쾌적한 공간으로 바뀌어간다. 그렇게 최신식으로 변해가는 자본의 공간 속에서 우리의 정신은 인간이 아니라 상품에 대한 스마트한 관계맺기로 새롭게 구성된다. 자본이 구획해놓은 동선을 따르며 상품 스펙터클의 대상이 되고, 자본이 마케팅하는 ‘이벤트’의 관객이 되며, 상품관계 바깥을 상상하지 못하는 인간으로 서서히 만들어진다. 오늘날의 대학이 대표적이다. 캠퍼스가 깔끔해지고 고층화되는 현상과 인문-사회-예술이 대학에서 주변화되는 현상은 동일한 것의 양면이다. 자본이 대학을 지배할 때 인간의 학문은 쫓겨나고, 고급 아파트가 서민의 골목을 집어삼킬 때 우리 삶의 어떤 모습들도 함께 사라진다. 모든 것의 젠트리피케이션이다. 이를 표상하는 건물주 싸이가 뭔가 비주류적이고 쿨하고 위반하는 것 같은 노래들로 인기를 얻는다는 것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지독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문강형준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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