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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11 18:05 수정 : 2019.07.12 14:24

최재봉
책지성팀 선임기자

“작가가 좋아. 방에 틀어박혀 착실하게 일할 수 있고, 남들 앞에 나가지 않으니 주위에서 신비한 일을 한다고 착각해줄지도 몰라. 힘도 들지 않아, 땡볕에 땀 흘릴 일도 없어, 찬바람을 맞을 일도 없어, 만원 전철에 타지 않아도 되지, 스승에게 욕을 먹어가며 수행할 필요도 없거니와 연극이나 영화의 세계와 달리 창작을 위한 밑천도 필요 없지. 장점만 가득한, 이상적인 일이야.”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연작소설집 <작가 소설> 중 한 단편에서 소설가 기코쓰 선생은 자신을 인터뷰하러 온 작가 지망 고교생에게 이렇게 말한다. 작가로 산다는 일의 장점을 열거한 것인데, 여기에 더해 재능이나 운이 따라주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부자로 살 수도 있으니 작가란 얼마나 매력적인 직업인가.

그런데 기코쓰 선생은 곧이어 이와는 정반대되는 말을 하며 학생의 문학을 향한 꿈을 꺾으려 한다. 출판과 문학은 ‘사양산업’이어서 전망이 밝지 않으며, 재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자칫 시간만 낭비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요컨대 “소설가를 지망했다가는 수렁에 빠질 수 있”다는 것. 물론 이 소설의 결말은 뜻밖의 반전을 마련해두고 있지만, 작가 지망생에게 던지는 그의 경고는 심상하게 들리지 않는다.

작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단편 여덟이 묶인 이 책은 소설가로 사는 삶의 이모저모를 다루며 작가들의 욕망과 고뇌를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게 한다. 소설가라는 직업과 소설이라는 예술을 주제로 삼은 ‘소설가 소설’ 또는 ‘메타 소설’이라는 장르도 있지만, 아리스가와의 소설은 엄살과 과도한 자의식은 빼고 경쾌하고 솔직하게 소설가의 일상과 환경을 그린다.

작가란 책을 몇권 냈다고 작가가 아니고, 문학을 가르친다고 작가가 아니며, “지금 이 순간 쓸 수 있을 때만 작가”라고 미국의 시인 겸 소설가 찰스 부코스키는 썼다.(<글쓰기에 대하여>) 작가라는 존재의 본질은 쓰는 행위 자체에 있다는 뜻이겠다. 그런가 하면 독일 소설가 토마스 만은 단편 ‘트리스탄’에서 “작가란 다른 누구보다 글쓰기를 힘들어하는 사람”이라고 밝혀놓기도 했다. 글을 쓸 수 있어야만 작가인데, 쓰는 일은 결코 쉽지가 않다. 당위와 현실 사이의 이런 괴리에 작가의 딜레마가 있다.

<작가 소설> 맨 앞에 실린 단편 ‘글 쓰는 기계’에서 출판사 편집장 후지와라는 신진 소설가 마스코를 출판사 지하의 수상쩍은 방으로 안내한다. ‘글 쓰는 기계’라 불리는 이 방은 글쓰기에 최적화된 공간. 작가는 안락한 의자에 앉아 글을 쓰기만 하면 된다. 출판사는 음식과 자료 등 필요한 것을 모두 제공하고, 의자 아래에는 비데 기능을 갖춘 변기가 있으니 배설을 위해 자리를 뜰 필요도 없다. 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자리를 뜰 수가 없는데, 작가의 두 손목에는 의자와 연결된 수갑 같은 장치가 채워졌고, 글을 쓰지 않는 동안 책상과 의자는 레일 위를 미끄러져 결국은 깜깜한 구덩이 아래로 떨어지게 되어 있다. 거꾸로, 글을 부지런히 쓰면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도 한다. 그야말로 쓰지 않으면 죽고 써야만 살 수 있는 극한의 조건이다.

이런 장치가 현실에 있을 리는, 당연히, 만무하다. 그렇지만 비슷한 사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김승옥이 오랜 침묵을 깨고 발표해 제1회 이상문학상을 받은 중편 ‘서울의 달빛 0장’은 잡지 <문학사상>을 발행하던 평론가 이어령이 김승옥을 강제로 호텔에 투숙시키고 편집자들이 옆방에 머무르며 감시하도록 해 완성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조정래는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 대하소설 3부작을 완성하느라 두문불출하며 글쓰기에만 일로매진한 20년 세월을 ‘글감옥’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작가 소설>에 실린 다른 작품들에서는 마감을 코앞에 둔 작가의 몸부림, 글감을 얻기 위한 노력, 소설적 허구와 프라이버시의 마찰, 사인회에서 벌어지는 해프닝, ‘망작’을 낸 작가의 일탈, 표절, 문학상 등 작가의 삶을 둘러싼 다채로운 풍경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그리고 그 모든 풍경은 단 하나, 쓰기로 수렴된다. ‘쓰지 말아주시겠습니까?’란 단편에서 인기 에세이스트 와쿠이가 젊은 소설가에게 하는 말은 작가 삶의 핵심을 이렇게 요약한다. “일단 써야지. 쓰고, 쓰고, 계속 써대는 인간만이 일류라 불리는 작가가 되는 거야.”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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