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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0.02 19:21 수정 : 2015.10.03 14:09

[토요판] 윤운식의 카메라 웁스구라

사진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우리 회사 근처에 작은 중국음식점이 있다. 4인용 테이블 세 개 정도 들어가는 규모인데 말이 4인용이지 성인 네 명이 동시에 한 테이블에 앉아서 식사하기는 불가능한 정도로 작은 음식점이다. 약 30여년을 같은 자리에서 장사해온 주인아저씨는 학업(?)에 별 뜻이 없는지 일정한 양만 만들어 팔아치운 다음 일찌감치 문 닫고 본인의 삶을 즐기면서 살아왔다. 그도 그럴 것이 본인 혼자 주방에서 직접 손으로 때려서 면발을 뽑고 만들다 보니 더 만들고 싶어도 몸이 따라주질 않아 쓸데없는 욕심 부리지 않고 적당히 살기로 했다고 한다.

돈벌이에 큰 욕심이 없다 보니 뭔가 인위적으로 맛있게 하려고 힘쓰는 것도 아니고 보기 좋게 만들려고도 하지 않으며 배달은 물론 광고도 하지 않는다.(몇 년 전까지 배달은 면이 붇지 않는 거리, 주변 약 150m 내외로 했었다고 한다.) 그저 근처에 사는 주민들이 오다가다 먹고 가끔 맛있다는 말 한마디 해주면 만족하는 집이었다. 회사에도 마니아들이 몇몇 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구미가 당기는 집은 아니다. 자극적이지도, 감칠맛도 느껴지지 않아서 그 민숭민숭함이 서운해선지 다 먹고 돌아서면 뭔가 강렬한 맛을 내는 소스 한 통을 따로 먹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끔 그 집을 찾았던 것은 도시의 일상에 지친 심신이 휴식을 위해 산속 오지마을을 찾아가듯 온갖 자극과 화려함에 길든 지친 혀가 힐링할 곳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평소 이 집에 강한 호감을 갖고 있던 우리 회사 음식 담당 기자는 어느 방송사가 좋은 중국집을 소개해 달라고 조언을 구하자 위에서 말한 음식점을 소개해줬다고 한다. 해당 방송사는 주인도 모르는 사이 카메라로 찍어 가서(방송 전에 동의를 구했지만) 방송을 했는데 제법 잘 소개했던가 보다. 그리고 얼마 뒤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 이 작은 중국집 앞에 어떤 날은 대형버스가 정차해 있기도 하고 점심시간보다 꽤 이른 시간에 가도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선 것이다. 주인이 하루 정량만 팔고 문을 닫는지라 갑자기 불어난 손님이 특별하게 경제적 이득으로 돌아오는 것도 아니어서 주인이 부자가 된 것도 아니니 갑자기 바빠지기만 한 셈이다. 특별하지 않은 동네 음식점이 매체를 만나 갑자기 유명해진 순간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순간이었다.(알고 보니 그 음식점은 인터넷상에서 몇몇 블로거들에게 이미 입소문이 나 있었다.)

방송마다 먹방이 대세다. 이번 정권에서는 먹방만 방통위로부터 제재받지 않고 자유로운 것 같다. 신문도 그 대열에서 빠지지 않는데 과거 음식이 여행이나 문화의 일부분이었다면 이제는 하나의 분야로 자리매김해 고정 면이 있을 정도다. 얼마 전까지 신문에서의 음식사진은 상업광고에서의 그것보다 정도는 훨씬 덜했지만 최대한 먹음직스러워 보이게 하기 위해 여러 가지 효과를 첨가했다. 입체감을 주기 위해 조명은 물론, 투명한 재질의 인공얼음 등 각종 모형물을 얹거나 뜨겁게 김이 나는 것을 표현하려고 담배연기같이 무식한 방법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엔 손님이 주문해서 나온 그 상태에 최대한 가깝게 표현하는 게 대세다. 광선도 조명 없이 자연광으로 하고 뜨겁게 솟아오르는 김도 있는 그대로 찍는다. 완성도 면에서는 과거보다 떨어진 감이 있지만 오히려 독자들은 자연스러운 것에 더 호감을 갖는 시대가 됐다. 인터넷에 수많은 사람이 직접 찍어 올리는 맛집 정보들이 넘쳐나는 시대가 주는 또 다른 현상이다. 색깔과 조명등이 완벽한 것보다 뭔가 빠진 듯한 음식사진이 더 현실감 있어 식욕을 자극하는 시대. 심심하고 특별할 게 없어 별로 주변인들에게 추천하지 않던 동네 음식점에 사람이 몰려드는 이유와 많이 닮았다. 세 치 혀가 원할 때쯤이면 가던 그 가게 앞을 오늘도 지나가지만 여전히 줄은 길게 늘어서 있다. 별다른 기다림 없이 예전처럼 저 가게에서 한 그릇 뚝딱 먹으려면 아저씨 어깨가 좀 많이 버텨줘야 할 텐데…. 오늘도 지친 입맛만 다시면서 뭘 먹을지 고민한다. 이상하다 먹을 게 지천인데 왜 고민은 늘까?

윤운식 사진부 뉴스사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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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토요판] 윤운식의 카메라 웁스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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