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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7.01 08:55 수정 : 2016.07.01 08:59

정혜윤 <시비에스>(CBS) 피디

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보이지 않는 도시들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민음사(2016)

지난 17일 숨진 채 발견된 고 김관홍 잠수사. 바닷물을 뚝뚝 흘리면서 세월호에서 나온 뒤로 그는 쓰고 짠 눈물을 많이도 흘렸다. 떠들썩하게 이야기하기를 즐겼던 그의 입은 이제 굳게 닫혔지만 그의 말 몇 가지는 영원히 내 가슴에 남는다. 세월호에서 나온 그는 집으로 곧장 돌아가지 못하고 여관에서 머물렀다. 품에 안고 나온 아이들의 촉감, 냄새, 그 슬픈 기억 때문에 살아 있는 아내와 자신의 어린 세 아이를 안을 수가 없었다. 잠수사니까 팽목항에 갔고 잠수사니까 아이들을 꺼냈고 잠수사니까 끝까지 남아 있으려고 했고 잠수사니까 바다에서 본 것에 대해서 입 다물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나 같은 놈이 봐도 인간적으로 이건 아니야!’라고 생각했을 때 그는 팽목항에서 겪은 일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는 늘 알고 싶어했다. “대체 왜 구조하지 않았을까?” 그는 진실을 알려고 했고 진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삶을 바꾸려고 했다. 그의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물었다. “김관홍 잠수사와 우리 아이들은 벌써 만났겠지요? 우리 아이들이 말했겠지요. 아저씨! 아저씨가 우리를 꺼내줬지요? 고마워요.” 나는 대답도 못 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카라마조프 형제들> 마지막 장면에서 알료샤 카라마조프가 죽은 친구를 둔 아이들과 나누는 이야기 같았다. “우리는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며 그동안 있었던 일을 즐겁게 기쁘게 이야기하게 될 거야.” 이제 더 이상 여기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은 그렇게 미래의 슬픈 약속으로, 애절한 희망으로 변하고 있었다.

18일 김관홍 잠수사의 추모식에서 4·16연대 박래군 상임운영위원이 “관홍아, 먼저 가 있는 세월호 사람들 만나서 얘기도 나누면서 있어라. 오늘은 다른 일 제쳐두고 너와 술 한잔 해야겠다. 나, 오늘 밤은 시간 많다. 관홍이 이 새끼야. 내 동생아”라고 말할 때, 세월호 가족대책위 유경근 집행위원장이 “김관홍은 내 형제입니다. 내 가족입니다. 내 아우입니다. 관홍이의 아이들은 내 아이들입니다”라고 할 때, 나는 어느 화창한 토요일 저녁 시립병원의 지하 주차장에 앉아 있는 500명의 얼굴을 하나씩 하나씩 바라보았다. 왜 박래군 운영위원과 유족들은 김관홍 잠수사를 내 동생, 내 형제, 내 가족이라고 부를까? 그리고 여기 앉아 있는 사람들은 대체 누구일까?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는 ‘숨겨진 도시 이야기’들이 나온다. 숨겨진 도시는 보통 때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들 사이가 눈에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될 때, 살아 있는 존재와 죽은 존재가 연결될 때,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힘이 된다는 단순한 이유로 행동할 때, 우리가 알던 공간이 변하면서 숨겨진 도시가 순간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진다. 그렇게 불행한 도시는 매 순간 결코 존재하지 않는 행복한 도시를 포용한다. 그날 추도식 날, 지극한 슬픔 속에서도 다정하게 눈인사를 나눌 때, 손을 잡을 때, 내가 본 것이 바로 숨겨진 도시였다.

<시비에스>(CBS)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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