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픽션들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민음사 펴냄(2011) 비가 오락가락했던 5일 저녁,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을 폐기할 것 등을 요구하는 세월호 희생자 및 실종자 가족 도보행진단이 들어오는 광화문에 갔다. 부모들은 다시 상복을 꺼내 입었고 다시 영정사진을 목에 걸었다. 부모들은 영정사진이 행여 비에 젖을까봐 꽉 끌어안고 있었다. 집회에서 한 어머니는 끝내 얼굴을 한번도 들지 않았다. 그녀는 영정사진 속 아이의 눈과 눈동자와 코와 입과 턱, 얼굴의 모든 윤곽선들을 손가락으로 따라가고 쓰다듬고 상복 소매로 깨끗이 닦기를 반복하느라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녀가 누구인지 일깨워 줄 수 있는 것은 그 윤곽선을 기억하고 만질 수 있는, 사랑하는 하나의 얼굴 속에 있었다. 집회의 마지막 순간에 유족들과 시민들이 서로 끌어안았다. 안기 전에 서로 예를 갖춰 깊숙이 인사했다. 그리고 꼭 끌어안고 나서 다시 깊숙이 몸을 숙여 예를 갖춰 인사했다. 지친 얼굴의 한 아버지가 흐느낌 소리들을 뚫고 외쳤다. “꼭 좀 부탁합니다!” 보르헤스의 ‘끝없이 두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에서 한 첩보원은 정체가 탄로나 곧 죽을 운명이었다. 그는 좁다란 침대에 누워서 ‘나는 죽게 된다는 말인가?’ 되묻는다. 한때 어린아이였던 자신이 죽는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나는 모든 것들이 정확하게 한 사람에게 정확하게 지금 일어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세기들의 시간, 그런데 단지 현재에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육지와 바다 위의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 그런데 정말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이 지금 내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죽기 직전에 우리 아이들도 점점 가물가물해져가는 정신 속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을까? 한때 어린아이였던 내가 정말로 죽는다는 말인가? 이 일이 정말로 나에게 일어나는가? 설마 나에게 일어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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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윤 <시비에스>(CBS)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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