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생각] 이봉현의 책갈피 경제
제프 멀건 지음, 김승진 옮김/세종서적(2018) 2008년 10월 리먼브라더스의 붕괴로 본격화한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10년이 되어간다. 도산과 실직, 정치적 혼란 속에서 경제 주체의 탐욕과 무절제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다. 이런 식의 자본주의가 지속 가능하겠느냐는 회의감도 커졌다. 재정 투입과 전대미문의 ‘양적 완화’ 덕분에 경제는 깨어난 듯 보인다. 하지만 유럽연합의 운명이 위태롭고, 여러 나라에서 대중영합주의와 ‘스트롱맨’의 정치가 등장하는 등 2008년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우리는 여전히 “자본주의여 어디로 가는가?”를 묻고 있다.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를 창조하는 것”이란 말이 있다. 세계적인 사회혁신 활동가 제프 멀건이 지은 <메뚜기와 꿀벌>은 자본주의의 앞날을 예측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의지를 갖고 만들어가야 하는 방향과 이미 나타나고 있는 맹아들을 찾아 보여준다. 그 여정의 출발은 자본주의를 연원부터 시작해 지금 있는 그대로 보는 것으로, 바로 자본주의가 이 책의 부제처럼 창조와 약탈의 두 얼굴을 갖고 있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그간 자본주의 비판자들은 창조성에 눈을 감고, 옹호자들은 약탈자를 보상한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먼저 ‘꿀벌’에 비유되는 얼굴은 “창조하는 자, 만드는 자, 제공하는 자”에게 보상하는 자본주의이다. 인류를 혹독한 빈곤과 비참한 질병에서 구한 것도 이 얼굴이다. 반면, 자본주의의 문제는 약탈자에게도 보상하는 것이다. ‘메뚜기’의 얼굴이다. 기술주 주가 폭등, 부동산 가격의 급등, 값싼 대출의 확산 등 다양한 메커니즘을 통해 약탈과 무임승차는 벌어진다. 자본주의는 꿀벌과 메뚜기의 얼굴이 교차하며 끊임없이 재구성됐다. 노예노동 및 아동노동 폐지, 복지국가 성립 등은 자본주의가 사람들이 흔쾌히 좋아할 수 있는 매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의미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진화해 온 것이다. 하지만 지난 20~30년은 메뚜기에게 유리하도록 보상체제가 굳어졌다. 제프 멀건은 특히 지식과 정보기반의 경제로 전환되면서 “자본주의는 지금처럼 창조적인 때가 없었지만, 지금처럼 약탈적인 때도 없었다”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 혁신하는 사람, 부지런한 꿀벌 같은 사람에게 보상하는” 자본주의를 위한 시각들을 제시한다. 멀건은 인공지능이나 사물인터넷처럼 가속화하는 기술발달이 자본주의의 미래를 구성하는 데 결정적 요인이 될 것으로 본다. 이때 필요한 것은 많은 사람이 가장 절실해 하는 과제에 기술이 봉사하도록 기술발달을 사회적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아울러 미래에는 ‘성장’이나 ‘효율성’, ‘기업가 정신’ 같은 개념들이 단지 양적 성장뿐 아니라 인류의 더 나은 삶을 모색하는 데 얼마든지 창조적으로 쓰일 수 있다고 본다. 사회문제와 씨름하는 ‘사회적 기업가 정신’이란 말은 이미 활발히 쓰인다. 무엇보다 멀건은 물질, 물량, 생산 위주에서 ‘관계’와 ‘유지’를 중시하는 인간다운 자본주의가 성장해야 하며 이미 그런 방향의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한다.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등 호혜와 협력의 가치를 중시하는 경제가 세계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이런 예측이 틀리지 않음을 보여준다. 건강, 교육, 돌봄, 그리고 녹색산업 등 ‘관계’와 ‘유지’에 기반을 둔 분야가 주요 나라에서는 자동차, 철강, 반도체, 금융 못지않게 경제의 중요한 분야가 되리라는 것이다. <끝>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
※‘이봉현의 책갈피 경제’가 이번주를 마지막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독해주신 독자분들과 이봉현 연구위원께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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