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현의 책갈피 경제
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다니엘 라벤토스 지음, 이한주 이재명 옮김/책담(2016) 지금 몇 개 극장에서 상영 중인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생각할 거리를 주는 영화다. 켄 로치 감독에게 두 번째 황금종려상을 안긴 이 영화는 화석화한 복지제도가 사람과 공동체를 황폐화하는 현실을 고발한다. 성실히 살아온 영국 목수 블레이크는 심장발작으로 더는 일을 못하게 된다. 질병수당과 실업수당을 타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수치와 울분을 안고 쓰러진다. 자기도 어려우면서 비슷한 처지의 싱글맘 케이티를 돕는 블레이크의 따뜻한 가슴을 담당 공무원들의 싸늘한 눈초리, 까다로운 심사, 수첩 한권을 빼곡히 채워야 하는 구직 일기 같은 것들이 갉아댄다. 같이 영화를 보고도 정반대로 메시지를 읽는 일은 흔하다고 했던가? 재정경제부 차관 출신으로 지금은 경영자총연합회장을 하는 박병원은 27일치 <문화일보> 칼럼에서 이 영화가 “자신의 삶을 공공의 손에 의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며 “자신의 삶은 자신이 책임지”는 것이 “국가나 권력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복지국가의 한계가 드러났기로서니 “그러니까 네 힘으로 살아”라는 말이 해답이 될 수는 없다. 지난 30년간 경쟁과 효율을 앞세운 신자유주의 ‘만트라’가 세상을 어떻게 지옥 문턱까지 밀어붙였는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부유한 2%가 세계 모든 가정이 가진 부의 절반 이상을 독차지한 것은 참기 힘든 부조리다. 블레이크가 사는 영국뿐 아니라 많은 나라가 봉착한 이런 딜레마에 기본소득은 이 책의 표현처럼 “빈곤과 불평등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해악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사회적 제안”으로 다가온다. 만일 블레이크가 자산조사나 구직노력에 관계 없이 빈곤선(중위소득의 50%) 또는 최저생계비 수준의 기본소득을 받았다면 덜 좌절하고 덜 비굴해지면서 새로운 삶을 모색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영화에서 블레이크는 “자존심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라고 절규한다. 그것이 기업주든 복지공무원이든 남에게 생존을 의탁할 수밖에 없는 것은 자유의 박탈이고 인간성의 말살이다. 기본소득은 인간의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 기본권으로 인식되기에, 수혜자가 시민으로서의 자존감을 갖고 공동체에 참가토록 한다. 생계의 목줄을 잠시 풀고 좋아하는 일, 시민운동이나 자원봉사, 가사노동 등으로 노동을 다양화할 수 있다. 올겨울 한국에서 수백만명이 촛불광장에 모인 이유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란 헌법 1조를 오롯이 하자는 것이었다면, 그 공화주의의 바탕이 되는 시민의 덕성을 키우는 사회시스템도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2012년 대선에서 경제민주화가 그랬듯이 이번 대선에선 기본소득이 화두가 되길 기대해본다. 박원순, 이재명, 김부겸에 이어 문재인 등 야권 대선주자 대부분이 도입에 긍정적이다. 증세는 불가피하다. 토지세나 환경세를 세원으로 주장하는 전문가도 있다. 늘 나오는 ‘포퓰리즘’ 논란도 돌파하고 기본소득정책이 다음 정권에서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봉현 편집국 미디어 전략 부국장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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