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현의 책갈피 경제
자본주의를 구하라로버트 라이시 지음, 안기순 옮김/김영사(2016) 영화 <트루먼쇼>에서 트루먼은 TV 리얼리티쇼를 위해 지은 거대한 세트장을 세상으로 알고 살아간다. 대학에서 만나 결혼한 아내도, 출근길 친근한 인사를 건네던 이웃도, 하늘의 태양도 모두 24시간 생중계되는 쇼를 위한 설정이란 걸 나중에야 알아채고 탈출을 시도한다. 시장경제도 이와 비슷하다. 우리는 시장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인다. 거래하려는 본능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동네 시장을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경제체제로서 시장경제라고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시장경제야말로 수많은 규칙과 제도 들로 세워진 인공물이다. 시장을 만드는 큰 뼈대는 사유재산, 독점제한, 계약, 파산, 채무불이행 등을 다루는 규칙들이다. 2014년 직원 55명의 메시징 서비스 ‘왓츠앱’이 페이스북에 190억달러에 팔렸고 공동창업자 얀 쿰은 68억달러를 손에 쥐었다. 미국 특허국이 ‘새롭고 유용한’ 경우에만 내주는 특허 기준을 엄격히 적용해 왓츠앱의 특허출원을 기각했거나, 정부가 이미 공룡인 페이스북이 사용자 4억5천만명인 왓츠앱을 인수하는 걸 반독점법으로 막았다면 얀 쿰의 소득은 보잘 것 없었을지 모른다. 이렇게 규제에 따라 인센티브가 달라지므로 시장은 자연스럽지도 중립적이지도 않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이런 시장을 조직하느냐에 따라 자원이 어떻게 투입되고 수입이 누구에게 돌아갈지 결정된다. 그래서 자유시장이냐 정부냐의 논쟁은 오도된 것이다. 그냥 두면 누군가 유리하도록 짜인 시장을 정부가 어떻게 보정하고 관리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전 세계적으로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이 심화해 사회 통합이 위태로운 지경이 됐다. 미국 근로자의 실질 시급은 70년대 초 수준에서 거의 오르지 않았다. 생산성만큼만 올랐더라도 지금의 두배 반이 되어 있어야 한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그동안 시장이 특정 계층에 유리해지도록 작동했기 때문이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상위 1%, 10% 부유층의 발언권이 커져 시장의 구조가 ‘자본주의 황금기’라는 전후 30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레이건과 대처 이후의 신자유주의가 방향타가 됐다. 대기업, 거대은행, 부유층은 정치자금을 통해 규제를 만드는 정부와 정치권을 움직였다. 텔레비전 광고 등으로 선거자금이 천문학적으로 들어가면서 이런 현상은 심해져, 미국의 경우 공화당이건 민주당이건 부유층에게 손을 내밀지 않을 수 없다. 로비스트, 싱크탱크, 로펌 그리고 돈만 주면 어떤 결론도 내주는 전문가들이 이런 변화에 말끔한 논리를 제공해 왔다. 반면 노조나 시민단체의 대항력은 끊임없이 약해졌다. 뭘 좀 해보려면 “정치논리가 경제를 망친다”는 등 정치혐오의 덫에 발목이 잡히기도 했다. 그래서 벼랑 끝으로 달리는 폭주기관차를 세우고 자본주의를 구하는 것은 어떻게 대항세력이 정치역량을 발휘하느냐 하는 “민주주의 문제”라고 저자인 라이시는 강조한다. 경제학이 아니라 정치경제학의 시대가 온 이유이기도 하다. 이봉현 편집국 미디어전략 부국장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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