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6.21 06:00
수정 : 2019.06.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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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인공지능 업체가 개발한 ‘책 읽어주는 로봇’이 최근 국내에도 상륙했다. 출처 키즈엠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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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생각] 백원근의 출판풍향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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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인공지능 업체가 개발한 ‘책 읽어주는 로봇’이 최근 국내에도 상륙했다. 출처 키즈엠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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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총아다. 책의 세계에서도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 책의 판매와 추천에 이르기까지 인공지능의 고도화가 계속되고 있다. 이제 읽기 영역에서도 인공지능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그림책을 읽어주는 인공지능 로봇이 지난해 미국 가전박람회(CES)에서 소개된 이후 한국에 상륙했다. 이 로봇은 집에서 부모 대신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준다. 시간이 부족한 맞벌이 부부의 역할을 보완해주고 아이의 언어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로봇 판매 회사의 설명이다. 인공지능 로봇은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도 선생님 대신 책을 읽어준다. 지난 1년 사이에 2만여대의 로봇이 전국의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보급되었다니 놀랍다. 그림책 동화 구연은 물론이고 낮잠 시간에 자장가를 들려주는 것도 로봇의 몫이다.
그럼 부모와 교사의 역할은 무엇일까. 청소기나 세탁기가 육체노동을 줄여주듯이 책 읽어주기도 장난감 같은 기계에 맡기면 되는 일로 생각하는 것인가? 아이의 성장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호작용이 가능할까? 정작 아이들은 부모나 선생님 대신 로봇이 읽어주기를 바라나? 로봇이 들려주는 책을 들으며 자란 아이는 스스로 책을 좋아하는 어른으로 성장할까? 의문이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답은 반대편에 있을 것이다. 부모와 교사는 아이와 그림책의 만남을 돕고 함께하는 중재자로서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
최근 국내 대형 출판사에서도 인공지능 독서교육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업계 최초의 인공지능 독서 케어 론칭”을 홍보하는 이 출판사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활용해 맞춤형 독서 솔루션을 제공함으로써 독서역량 향상과 올바른 독서습관 형성을 도와준다고 강조한다. 대다수 부모들이 자신 없어 하는 독서교육을 인공지능 솔루션이 모두 해준다니 신통방통할 노릇이다. 문제는 아이를 위해 도움이 될 것 같은 착각이 드는 이런 종류의 교육 상품이 책을 싫어하는 아이를 양산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상반기 종합 베스트셀러 최상위권인 <공부머리 독서법>은 독서논술 전문가의 안목으로 독서법을 전한다. 한 인터넷서점은 이 책을 ‘가정 살림’ 분야에 올렸는데(다른 서점에서는 인문 분야), 독서 사교육 시장이 지구에서 유일하게 발달한 나라의 풍토를 여실히 보여준다. 독서교육이 공부와 입시교육에 갇혀 있으니 책 읽기가 즐거울 까닭이 없다.
그간의 숱한 실패 경험으로도 부족한 것일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책을 품에 안기보다 발로 걷어차기 바쁘다. ‘아이들이 책과 친해지도록 하겠다’면서 결과적으로 책이 싫어지게 만드는 데 귀재들인 상업자본, 교육제도가 강고하다. 당장의 이익을 위해 인공지능의 수사학으로 아이들에게서 책을 떼어내는 일을 멈춰야 한다. 심장이 뛰지 않는 로봇형 독서교육이 아이를 멍들게 한다. 아이들에게 제공할 것은 책의 세계를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는 멋진 환경이지 주입식 독서교육이 아니다. 로봇이 아니라 부모와 선생님의 목소리로 책을 읽어줘야 한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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