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2.28 09:00
수정 : 2018.12.28 19:54
[책과 생각] 백원근의 출판풍향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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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경기도 용인시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 기흥점 2층에 면적 326평 규모로 개장한 중고서점 ‘예스24 기흥점’ 전경. 예스24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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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국 출판계 실적은 어땠을까. 종이책 출판은 침체 속에서 ‘나’를 위로하는 1인칭 에세이들이 베스트셀러를 석권했다. 할인과 굿즈를 앞세운 인터넷서점은 성장했지만 오프라인서점은 더욱 쪼그라들었다. 전자책은 상당히 약진했으나 오디오북은 소문만 무성할 뿐 시장 형성이 지체되고 있다. 저작권 수출이나 해외 판매도 예년 수준을 밑돌았다.
저자부터 독자에 이르는 책 생태계의 역동성을 키우려면, 앞으로도 상당 기간 출판시장의 중추 역할을 할 종이책 시장의 산업적 기초체력을 키우면서 부가가치를 확대하는 노력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본격적인 디지털 기반의 출판 콘텐츠 시대로 항해하기 위한 출판자본의 형성도 당장은 종이책 판매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한국 출판시장의 하부 기반은 지금 심하게 뒤틀려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가 ‘기업형 중고서점’ 문제다. 온라인 매매와 함께 오프라인 매장도 알라딘 42개, 예스이십사 6개, 개똥이네 38개 등 지명도 높은 곳만 86개다. 이곳들은 전통적인 개인 경영 중고서점들과 달리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저인망식으로 신간 또는 중고책을 구입한 독자들로부터 책을 되사들이고 다시 되판다. 책 생태계 전체의 선순환 구조와는 무관한 폐쇄 회로이자 산업 이익을 절취(截取)하는 행위다. 신간을 판매하는 인터넷서점 강자들이 직접 온·오프라인에서 중고책까지 매매하는 코미디 같은 일이 대한민국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벌어진다.
‘온·오프라인 중고서점 실태조사’(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17년 10월)에서 집계한 2016년 기준 국내 중고서점 매출 규모는 3334억원인데, 기업형 중고서점에 의한 신간 단행본의 판매 기회 손실이 7.6%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은 중고책 시장이 더 커졌으므로 기업형 중고서점 때문에 신간 시장의 10%가 증발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미 상당수 독자는 알라딘 같은 기업형 중고서점 매장 또는 인터넷에서 새 책처럼 깨끗한 중고책을 저렴하게 사고 되파는 습관이 붙었다.
‘2017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를 보면 ‘주로 중고서점에서 책을 구입하는 비율’은 성인이 3.1%, 초중고 학생이 4.9%로 각각 4년 전 대비 2배 이상의 증가세를 보였다. 최근 조사된 다른 비공개 자료에서는 그 비율이 더 커졌다. 지역 서점 이용률이 감소세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문제는 새 책 판매가 아닌 2차 시장(중고책 매매) 규모가 매우 커지면서 새 책 시장을 대체한다는 점이다. 인터넷서점이 주도하는 중고도서 시장이 커질수록 저자, 출판사, 신간 서점의 손해는 더욱 커진다. 책의 판매량 규모가 전반적으로 종전보다 줄어든 이유 중 하나도 여기서 찾아진다. 독서율 때문만이 아니다.
출판산업 가치사슬이 기업형 중고서점 때문에 무너지고 있지만 출판계는 유통계 큰손들을 상대로 저자세다. 점잖은 저자들은 기업형 중고서점에서 팔린 책의 인세를 내놓으라고 말하지 않는다. 독자는 싸니까 좋다고 한다. 이렇게 책 생태계가 침몰해가고 있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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