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1.30 06:02
수정 : 2018.11.30 19:36
[책과 생각] 백원근의 출판 풍향계
지난 11월1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군 복무 장병 희망·미래 비전 세미나’가 열렸다. 국회의원들과 육군본부가 함께 개최한 행사다. 육군본부 담당자는 “청년에게 희망을 주는 인생 준비 플랫폼 육군”이란 제목의 발표에서 군 복무가 인생의 낭비가 아니라 꿈과 미래를 준비하는 희망의 기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학업 연장과 역량을 키워주는 육군’, ‘창업·취업의 기회를 높여주는 육군’ 등의 대안을 제시했다. 청년들의 절박한 요구를 반영한 내용이다.
그런데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병영도서관을 활성화하는 대신 ‘전자도서관 학습기반 조성’ 방침을 내세운 것은 전혀 수긍하기 어렵다. 군은 전자책 단말기 비치 등 병영도서관의 디지털화를 추진하고, 최신 전자 도서를 비롯한 다양한 학습 콘텐츠를 무한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드론부대까지 창설한 마당에 디지털 군대로 변신하려는 신선한 발상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국방부는 10년 전에 ‘병영도서관 운영 훈령’을 제정했지만 부대별 평균 장서량은 훈령이 정한 보유 기준(6천권)의 절반에 불과하다. 볼 만한 새 책도 거의 없다. 그러니 병사들의 이용률이 저조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다 1877개 병영도서관의 전담인력 확보율은 고작 3%에 불과하다. 사실상 병영도서관이 방치되고 있다. 이를 혁신해서 병영도서관을 도서관답게 만들 생각은 하지 않고, 청년 희망 운운하며 디지털 만병통치약을 들이밀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 국방부는 스스로 정한 훈령조차 무시하고 있다.
물론 군도 할 말이 있다. 병사들의 일과시간 이후 스마트폰 이용이 추진되고, 병영 내 사이버지식정보방을 이용한 인터넷 접속이 가능해진 상황, 그리고 병영도서관에서의 종이책 관리의 어려움 때문에 전자도서관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 군의 판단이다. 2018년에 12억원 가량의 종이책과 30만권의 기증 도서가 병영도서관에 들어갔지만 전담자가 없어 간부급 관리자들이 도서 적합성 심의와 도서 관리, 대출까지 담당하며 본연의 업무에 어려움이 많고 분실과 파손 대책도 없다는 설명이다. 현재 육군사관학교 등에서만 휴대폰과 개인용 컴퓨터(PC)를 통해 전자도서관 서비스를 하는데, 이를 육군 전체로 확산시키자는 것이다. 그래서 내년 전자도서관 예산이 확보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를 밀어붙이기 위해 병영도서관 도서구입비의 50%를 전자도서관 운영비로 전환할 방침이다. 2020년부터는 중기계획 본예산에도 반영할 계획이다.
종이책을 읽을 수 있는 병영도서관은 뒷전이고 전자도서관 중심의 행정 편의주의로 병사들의 학습과 역량을 키워주겠다니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군은 미군이나 이스라엘군 등이 종이책 도서관을 치우고 전자도서관만 운영하는지부터 파악하라. 사실은 정반대다. 전자도서관은 어디까지나 보조 수단이다. 주식과 부식을 구별해야 한다. 종이책 가운데 전자책으로 전환되는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학술 논문과 오락물 위주인 국내 전자책 실태부터 파악하기 바란다. 군은 장병들을 책과 멀어지게 할 뿐인 백전백패의 계획을 당장 멈춰야 한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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