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3.29 20:13
수정 : 2018.03.29 20:20
백원근의 출판 풍향계
지난 26일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했다. 기본권, 국민주권, 지방분권 강화가 핵심이다. 형식적인 지방자치를 넘어선 본격적인 지방분권의 역사가 열리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개헌의 시기와 내용에 대한 논란이 뜨겁지만, 지방분권에 대한 이견은 크지 않다.
지방분권이 현실화되면 시민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지역문화의 양과 질에 대한 관심이 필연적으로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지방분권 시대엔 지방자치단체가 지역의 저술 및 출판과 도서관, 서점, 독서 환경 등 책 생태계를 든든히 다지는 일은 시민을 위해 해야 할 최상의 행정 서비스가 될 것이다. 지자체가 지역에 태어나는 모든 아기에게 그림책을 선물하는 ‘북 스타트’ 사업이 이미 그것을 증명했다.
가정에선 아이의 미래를 위해 교육과 독서에 투자하는 것이 우선순위일 것이다. 이처럼 시민 개개인이 저마다 길이 없는 곳에서 길을 만들어야 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지식과 상상력의 동력인 ‘독서권’(책 읽을 권리)을 존중하는 것이 지자체의 엄중한 책무다. 마침 오는 6월에 치르는 지방선거에서 주권자인 시민들은 후보들 가운데 책 생태계와 시민의 독서 장려에 누가 더 신경을 쓰는지 눈여겨보았으면 한다.
앞서가는 지자체들은 이미 독서진흥조례나 서점육성조례를 만들어 시행 중이다. 경기도 군포시는 ‘책나라 군포’를 브랜드로 만들고, 전국에서 유일하게 책과 관련된 국장급 행정조직을 운영한 지 오래다. 서울시는 지난해 처음으로 ‘서울서점주간’ 행사를 진행했고, 부산의 도서관들은 지역 출판사에서 발행한 책을 별도 예산으로 사들인다. 경기도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10억원을 도내 출판사와 서점 지원 사업에 책정했다. 제주도는 전국 최초로 올해 2월 말에 지역출판진흥조례를 제정했다.
특히 전남 순천시가 주목할 만하다. ‘기적의 도서관’을 처음 만든 순천시는 시민과 청년을 위한 도서 지원 사업을 활발히 펼쳐왔다. 2014년부턴 ‘전 시민 좋은 책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순천시립도서관 도서 대출 회원증이 있는 시민들이 추천 도서 목록에 있는 책을 시내 서점에서 구매할 때, 시에서 도서 정가의 30%를 지원한다. 지난해부터는 도서관 회원증이 있는 19~39살 청년들이 시내 서점에서 원하는 책을 구매하면 책값의 50%를 지원하는 ‘청년 꿈 찾기 도서 지원 사업’을 추가로 시행 중이다. 시민, 도서관, 서점 모두 만족도가 높다.
옆 나라 사례도 있다. 일본 동북부에 있는 아오모리현 하치노헤(八戶)시에서는 2014년부터 관내 약 1만2천명의 전체 초등학생에게 2천엔(약 2만원)짜리 ‘마이 북 쿠폰’을 매년 지급한다. 어린이들이 부모와 함께 서점 나들이를 하도록 하는 독서 지원책이자, 자연스럽게 지역 서점과 출판의 육성으로 연결된다.
지자체의 관심이 지역의 도서관, 서점, 출판사를 살리고, 시민과 도시의 미래 경쟁력을 키운다. 지방분권의 내실화를 다지는 일에 책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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