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9.28 19:46
수정 : 2017.09.28 19:55
백원근의 출판 풍향계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행복한 책방’이 문을 연지 여덟 달이 지났다. 이곳에는 대다수 서점에서 매출 비중이 큰 학습참고서가 없다. 가족이 함께 서점을 찾도록 어린이 그림책부터 어른을 위한 교양서와 문학 책까지 다양한 책을 정가대로 판매한다. 수시로 저자 강연회나 책 관련 모임을 열고, 작은 모임방에서는 독서동아리 모임이 열린다. 고객이 기념할 만한 날에 책 선물을 하도록 ‘행복한 책 꾸러미’를 꾸며준다. 또한 ‘한 달 한 책 클럽’을 만들어 이미 116명이 가입했다. 계절마다 서점신문을 배포하며 고객과 소통하는가 하면, 작은 출판사에서 첫 책을 펴낸 신인 저자를 응원하는 출판기념회를 부지런히 열 계획이다.
이 서점을 만든 이는 사단법인 ‘행복한아침독서’를 이끄는 한상수 대표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중심에 책이 들어서고, 시민의 삶이 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운영하는 곳이란다. ‘지속 가능한 좋은 서점’의 모델을 만들고 싶다는 그의 꿈은 언제 끝날지 모를 적자 구조를 견디게 하는 밑천이다. 그는 도서관 운영, 학교 아침독서 운동 등 책과 관련된 일을 하며 내공을 쌓았지만 책을 판매하는 서점 일은 초짜다. 그래서인지 겁도 없고 선입견도 없다.
그런 그가 이번 추석을 앞두고 시도한 것이 ‘한가위 책보’다. 명절을 맞이하여 고마운 분들에게 책 선물을 하자는 것인데, 동네서점의 시도로는 전례를 찾기 어렵다. ‘사람들이 참치 통조림 세트를 좋아하지 책 선물을 하겠냐’는 부정적인 의견들을 물리쳤다. ‘보름달 꾸러미’ 등 ‘행복한 책방’이 직접 고른 독자층별 3권짜리 책 꾸러미를 여러 종류 준비했다. 전국 곳곳의 구멍가게를 섬세한 펜화로 그려 공감과 감동을 전한 이미경 작가의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남해의봄날) 특별판 양장본이 간판 선물이다. 행사 시작 3일 만에 100세트 판매를 훌쩍 넘기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행복한 책방’은 우리나라 서점 지형에서 볼 때 특이한 서점일 것이다. 그러나 독서 선진국들에선 이런 동네서점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동네서점은 책을 매개로 지역 주민들이 만나는 문화적 거점이자 출판 생태계의 모세혈관이다. 이런 서점이 전국 각지에 늘어난다면 가장 큰 수혜자는 다름 아닌 지역 주민일 것이다.
서양에서는 크리스마스 시즌의 책 선물 문화에 힘입어 서점이 특수를 누린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풍토의 조성이 가능하다는 것을 한 동네서점이 입증해냈다. 다만, 부모님이나 어르신 등에게 선물하기 좋은 책이 부족한 현실은 출판계가 풀어야 할 과제다. ‘행복한 책방’은 책이 안 팔리니 잡화 판매나 다른 매출로 매장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책방이라면 책으로 정면 승부를 해야 한다고, 아직 책맛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다가서려는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서점을 응원하는 저자와 출판사,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적 관심, ‘한 달 한 책 클럽’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많아질 때 책으로 행복한 나라가 만들어질 터이다. 한가위 보름달을 기다리며 꾸는 꿈이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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