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원근의 출판 풍향계
한국이 주빈국으로 참가한 파리도서전이 성황리에 끝났다. 출판사 1200개, 저자 3700명, 독자 20만명이 어우러진 가운데 프랑스 대통령과 총리, 문화부 장관은 물론이고 국방부 장관까지 독자 자격으로 줄줄이 전시장을 찾았다. 문화가 프랑스의 심장이고 그 중심에 책이 있다고 말하는 나라답게 역동적인 책 축제를 선보였다. 또한 할인 없는 도서정가제, 튼실한 서점 진흥정책, 출판·도서관·독서 정책이 융합된 정부 부서 등 출판문화의 근간을 떠받치는 제도적 장치들이 프랑스 책 생태계의 저력이라는 점도 확인시켜 주었다. 파리도서전의 특징 중 하나는 전시장을 찾는 수천명의 저자들이다. 작가와 대화를 나누며 최신작에 사인을 받아 구입하는 것이 평균적인 관람객들 모습이다. 출판사는 이 기회를 활용하기 위해 당연히 자사 부스를 차리고 저자를 부른다. 자발적으로 참여한 저자에게 교통비를 주는 것도 아니다. 독자들은 정가를 내고 책을 여러 권씩 구입한다. 이번에 파리도서전을 찾은 한국 출판인들이나 관련 기사를 접한 출판인들은 여러 측면에서 ‘부러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부끄러움’이어야 했다. 6월에 개최 예정인 서울국제도서전을 앞두고 주최자인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사상 최저 수준의 출판사 참여율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도서정가제 강화로 할인율이 정가의 10%로 제한되면서 부스 임대료도 뽑지 못할 만큼 판매량이 적을 것이란 우려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전쟁 직후이던 1954년부터 시작된 국내 도서전은 1994년까지 31회에 걸쳐 개최되었고, 광복 50주년을 맞은 1995년부터 국제도서전으로 승격했다. 서울국제도서전은 한때 ‘아동도서전’ ‘할인도서전’ 등의 비판도 받았지만, 어떻든 매년 참가 출판사들을 어렵게 유치하며 당대 출판문화를 대표하는 행사로 자리잡았다. 유력 출판사들이 장삿속 때문에 자신들의 축제인 도서전을 올해처럼 찬밥 신세로 만든 적은 없었다. 모든 상품 전시회의 주체는 기업이다. 현대자동차가 빠진 서울모터쇼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근년 들어 이름난 출판사들조차 서울도서전에 불참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도서전을 찾는 방문객과 그 출판사의 책을 구입하고 아끼는 독자들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출판문화 공동체의 주역답지 못하다. 출판의 판을 키우기 위한 소통의 장을 스스로 외면하면서 외치는 ‘출판 불황’이란 공허하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