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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1.07 20:42 수정 : 2016.01.07 20:42

백원근의 출판 풍향계

새해가 밝았다. 한국고전번역원이 ‘올해의 한자’로 ‘살필 성(省)’자를 골랐다. 두루 성찰이 필요한 우리 사회의 과제를 집약한 탁견이다. 그렇지만 정작 한국고전번역원은 자기성찰이나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한국고전번역원은 한문 고전 번역을 과업으로 삼아 고전번역총서 등을 출판해 왔다. 그런 한편으로 어린이도서 <장복이 창대와 함께하는 열하일기>, 교양도서 <이충무공전서 이야기>, ‘악학궤범’의 완성 과정을 그린 <최고의 소리를 찾아서>라는 소설에 이르기까지 대중도서를 수십 종이나 발행했다. 옛 선비들의 잠언을 소개한 신간도 나왔다. <주석학개론> 같은 번역서도 여럿이다. 이런 일은 민간 출판사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상업적 출판 행태를 보여준다. 작년에 정부 예산을 185억 원이나 받아 쓴 공공기관이 할 일이 아니다.

지난해 292억 원의 국민 혈세를 쓴 한국학중앙연구원은 한국학자료총서를 비롯해, 청소년도서 출판사들에게 맡겨도 좋을 <청소년을 위한 세종 리더십 이야기> 등에 이르기까지 그간 1700여 종의 책을 펴냈다. 2013년과 2014년에는 <서양 윤리학에서 본 유학>, <용을 그리고 봉황을 수놓다>가 학술원의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었다. 정부 예산으로 만든 책을 정부 예산으로 선정·구입한 것이다. 공공기관이 민간 출판사들의 출판 기회와 선정 기회까지 대신해 수상의 영예를 누렸다.

앞의 두 곳을 포함해 한국국방연구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한국노동연구원 등은 출판 전담 부서까지 두고 있다. 유가 출판물을 기관 홈페이지에서만 직판하거나(한국산업인력공단,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 홈페이지에 파일 제공을 하지 않는 경우(코트라, 한국문화재재단 등), 5만원부터 9만원까지 높은 정가를 책정하는 경우(한국특허정보원, 코트라) 등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이와 관련해 대한출판문화협회는 한국출판학회 연구용역을 바탕으로 작년 4월27일 ‘공공기관의 상업출판 행위 실태와 문제점 및 대책 연구 결과 설명회’를 개최했으나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다. 지난해 공공기관으로 신규 지정된 한국상하수도협회는 정가가 4만5000원인 <상수도공사 표준시방서>를 홈페이지에서 3만6000원으로 판매해 도서정가제를 위반했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공공기관의 발간 자료는 국민 세금으로 만들어진 만큼 원칙적으로 홈페이지에 디지털 자료를 무상 공개해야 한다. 민간 출판사들과 중복되는 영역의 출판은 하지 말고, 부득이하게 유가 도서로 제작할 경우 민간 출판사에 위탁하여 발행하는 게 순리다. 정부는 공공기관 관련 법규에 공공기관의 상업 행위 금지 규정을 서둘러 신설해야 한다. 출판도 그렇고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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