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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1.12 21:13 수정 : 2015.11.12 21:13

백원근의 출판 풍향계

정부가 펴낸 무가 보고서를 민간 출판사가 유가로 출판하여 시중 서점과 인터넷서점 등에서 판매하고 있다. 가격도 일반 도서 기준으로 보면 몇 배 수준이다. 예를 들어 기획재정부가 저자로 표기된 <국가회계편람>은 7만5000원, 문화체육관광부가 저자인 <2015 전국 문화기반시설 총람>은 6만5000원이다. 출판 진흥 기관인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저자로 되어 있는 <도서 저작권 수출 가이드북 시장편(중국)>은 분량이 80쪽에 불과하지만 종이책과 전자책 모두 2만원의 정가가 붙어 있다.

이밖에도 행정자치부, 보건복지부, 농림축산식품부, 한국산업인력공단, 특허청 등 대부분의 정부 부처에서 발행한 수많은 정부 간행물들이 평균 도서 정가보다도 훨씬 비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대부분 해당 부처나 기관의 누리집(홈페이지)에서 무료로 파일을 내려받아 볼 수 있는 자료들이다. 몇몇 출판사가 수백 종씩의 정부 간행물을 이런 식으로 발행해 판매하고 있다.

이러한 일들이 가능해진 것은 저작권법의 ‘공공저작물 자유 이용’(제24조의 2) 조항이 2014년 7월1일부터 시행되면서 정부 간행물의 상업적 이용이 허용된 까닭이다. 국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이 저작권을 보유한 각종 공공저작물의 자유로운 이용을 통해 콘텐츠 개발을 촉진하려는 취지로 문화체육관광부는 ‘공공누리’를 개발했다. 즉 정부가 펴내는 연구보고서와 미술, 사진 저작물 등 다양한 공공저작물의 이용 활성화를 위한 자유 이용 허락 라이선스를 가리키는데, 표시 도안으로 태극마크 모양의 ‘OPEN’(오픈)을 쓴다. 이 제도 역시 2014년 7월부터 도입되었다.

공공저작물의 이용 활성화와 문화산업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공공누리의 취지는 매우 타당하다. 그렇지만 정부 보고서나 자료를 민간 출판사가 복제하여 고가로 발행하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다. 첫째, 자료 이용자들은 정부 간행물을 누리집 등을 통해 무료 이용이 가능함에도 상업적 공간에 노출되어 유가로 구매함으로써 경제적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둘째, 일반 도서처럼 국제표준도서번호(ISBN)를 부착하므로 문헌번호와 출판통계의 혼란과 거품을 만들 수 있다. 동일한 보고서가 여러 곳에서 중복 발행되면서 동일 도서의 아이에스비엔이 여럿 나올 수도 있다. 동일한 간행물임에도 정부 간행물의 연속간행물번호(ISSN)와 출판사의 아이에스비엔 번호가 공존하여 문헌번호의 고유성 또한 상실된다. 셋째, 출판사가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에 납본하는 대가로 정부가 지급하는 납본보상금의 적정성도 논란거리다.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정부 보고서를 복제한 민간 출판사 발행 도서에 대해 국민 세금이 다시 투입되기 때문이다. 액수의 문제가 아니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공공저작물의 민간 출판사 발행과 관련하여, 납본을 받는 국립중앙도서관 등은 지난해 말부터 문제를 파악하고 해당 출판물의 납본은 필요에 따라 요청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책들이 대량 출판되어 서점 서가에 꽂혀 팔리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해당 출판사들은 이를 ‘틈새시장’이라 볼지 모르지만 곤궁한 한국 출판의 씁쓸한 단면을 보여준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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