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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6.18 20:35 수정 : 2015.10.23 13:52

백원근의 출판 풍향계

일본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가 올해 상반기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지난해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다. 일본 원서의 띠지에는 유명 작가인 이사카 고타로가 눈물을 흘리며 읽었다는 문구가 달렸다. 일본에서 이 책은 자기계발서로 분류되었고, 아들러가 “자기계발서의 원류”라고 한 홍보 문구도 함께 쓰였다. 심리학자 아들러를 인용하고 있지만,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자존감과 용기를 갖고 세상을 살아가라는 내용을 담은 대화체의 자기계발서이다. 저자가 쓴 40여종에 이르는 아들러 관련서도 사랑, 육아, 용기, 행복을 다룬 자기계발서가 주류다.

그런데 이 책은 회수, 아니 동해를 건너 한국어판으로 발행되며 인문서로 분류되었다. 이로 인해 ‘인문서 점유율이 소설을 누르는’ 것처럼 보이는 초유의 사태를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실용서이자 자기계발서 성격이 강한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도 인문으로 분류되어 ‘인문서 대세론’에 역할을 했다. 결국 <미움받을 용기>를 비롯한 실용적인 자기계발서들이 대세를 이뤘을 뿐 엄정하게 볼 때 소설은 침체의 와중에도 여전히 가장 힘센 출판 분야다.

오히려 판매 목록 최상위권 10종 안에서 필명 ‘채사장’을 제외하고는 한국 저자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야말로 한국 출판의 문제적 상황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상반기 베스트셀러 종합 10위권을 기준으로 한 국내 저자의 책이 2013년에 6종, 2014년에 7종이던 것과 비교해 믿기 어려운 퇴행이다. 올해 상반기 베스트셀러 10종 중 번역서가 단 1종뿐이고 자국 저자가 9종인 일본과 비교하면 더욱 마음이 편치 않다.

물론 상위권 베스트셀러 목록만으로 출판시장의 흐름을 진단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독서 생태계 전체에 규정력을 갖는 이 목록에서 내국인 저자를 찾기 힘들어지게 된 현상은 무심코 지나칠 일이 아니다. 근년 들어 번역출판의 비율이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주목할 만한 책이나 판매량 측면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여기에는 지식, 저자, 저술의 국제 경쟁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유능한 저자의 기근과 번역출판 의존도 심화라는 근본 문제를 풀지 않는 한 우리 출판과 학술, 문화의 지속 가능한 발전은 요원한 일이다.

우수한 한국산 원작이 원활하게 생산되지 않는 상황에서 ‘출판 한류’ 또한 공염불에 불과할 것이다. 최근 법제화 움직임이 있는 아마추어 저술가 지원 정책 역시 그 대안이 되기는 어렵다. 재능 있는 프로 저자들을 키워야 한다. 무엇보다 교육부와 각 대학에서는 가장 두터운 저자층이라 할 수 있는 대학교수들이 단행본 저술에 뛰어들 수 있도록 교수업적 평가에서 최소한 학술논문과 동일한 점수 비중을 부여해야 한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사회의 지적 자산으로 폭넓게 공유되고 후세에도 전승되는 책을 쓰는 일이 극소수에게만 읽히는 논문보다 훨씬 헐값으로 취급되고 학문적 외도로까지 해석되는 현실은 우리나라에서만 통용되는 고상한 난센스다. 또한 전업 작가로 먹고살기 어려운 시스템과 환경을 뜯어고치기 위해 발 벗고 나서지 않는 문단, 출판계, 정책 당국의 무신경도 오늘의 사태를 초래하는 데 일조했다. 문화의 몸통과 영혼을 부수는 자충수다. 우리 출판이 수입 업종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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