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수도 바르샤바 한복판에는 1955년 소련 지도자 스탈린이 폴란드에 ‘우정의 선물’로 지어준 문화과학궁전이 우뚝 서 있다. 폴란드에선 ‘이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쳐다보기도 싫은 건물이 보이지 않아 행복하다’는 농담이 있을 만큼 소련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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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 사이에서] ③ 폴란드
러시아를 안보 위협국 규정
미 MD시스템 배치 공식 발표
내부서도 “지나친 편향” 우려
지난달 폴란드 바르샤바 옛 도심에 있는 바르샤바 봉기 박물관을 찾은 관객이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과 러시아에 분할점령된 폴란드의 상황을 표시한 동판 지도를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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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대선이 분수령
러와 ‘슬라브족’ 뿌리 같지만
사회문화 정체성은 ‘서방 바라기’
‘대러 강경’ 현 대통령과
‘대화 강조’ 야권후보 대선 맞붙어 오늘날 폴란드 외교안보의 기본 틀이 “적이냐, 동맹이냐”는 이분법에 가까운 것도 이런 역사적 경험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폴란드가 사실상 ‘적’으로 삼고 있는 러시아와 폴란드는 역사적으로 깊은 유대가 있다. 13세기 슬라브족의 건국설화를 보면 폴란드와 러시아는 본디 한 핏줄이다. 설화의 ‘폴란드 판본’은 이렇다. ‘노아의 방주’로 유명한 노아의 손자는 세 아들을 두었다. 레흐, 체흐, 루스. 성장한 삼형제는 독립해 정착할 곳을 찾아 각각 다른 방향으로 길을 떠났다. 북쪽으로 가던 레흐는 참나무 둥지에 날카로운 눈매의 흰 독수리가 앉아 있는 걸 본다. 뒤로는 붉은 황혼이 강렬했다. 레흐는 상서로운 징조로 여기고 그곳에 나라를 세웠다. 하양과 빨강이 선명하게 대조된 풍경은 그대로 폴란드 왕국의 국기가 됐다. 흰 독수리는 왕실(국가)의 문장이다. 체흐는 지금의 체코, 루스는 오늘날 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의 개국 시조다. 폴란드와 러시아는 언어와 혈통에선 같은 슬라브 계통이지만, 사회문화적 정체성은 상당히 이질적이다. 폴란드인 대다수는 슬라브 국가들과 달리 로마가톨릭을 국교로 삼았고, 문자도 라틴알파벳을 쓴다. 발은 슬라브 쪽에 가깝지만, 눈은 항상 서쪽을 향했다. 폴란드가 최근 사실상 러시아를 겨냥한다는 평가를 받는 미사일방어 체계를 도입하기로 하자 러시아는 강력히 경고했다.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 총참모장은 “미사일 방어체계를 도입하고 있는 비핵 국가들은 (러시아의) 선제적 대응의 대상이 됐다”고 위협했다. 폴란드 안에서도 외교안보의 지나친 서구 편향성에 대한 우려와 논란이 있다. 로만 쿠지니아르 폴란드 대통령 외교안보보좌관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유럽과 러시아의 관계가 개선될 경우 폴란드가 (유럽에서) 유일한 반러시아 국가로 고립될 위험은 항상 있다”고 인정했다. 지난 10일 폴란드 대선을 앞두고 유력 후보들은 때아닌 ‘러시아 대통령과의 전화’ 논쟁을 벌였다. 좌파당의 36살 여성 후보가 “내가 당선된다면 러시아와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러시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겠다”고 공약한 게 화두가 됐다. 코모로프스키 현 대통령은 “유럽의 평화가 전화 걸기에 달렸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사람들”이라고 반박했다. 그러자 최대 경쟁자인 법과정의당의 안제이 두다 후보는 코모로프스키를 풍자하며 꼬집는 선거운동 동영상을 내보냈다. 코모로프스키 대통령이 코를 골며 자다가 모스크바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잠을 깨는 상황극이다. 동영상은 “전화를 받을 상대에 대해 계속 걱정만 하시렵니까?”라는 자막으로 끝난다. 폴란드가 먼저 러시아와 대화의 물꼬를 트자는 메시지다. 폴란드는 오는 31일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를 앞두고 있다. 대선 결선에선 코모로프스키 현 대통령과 두다 후보가 맞서고 있다. 폴란드의 강경 일변도의 대러시아 외교도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바르샤바/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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