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쇼어 마부바니 전 유엔안보리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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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 사이에서] ② 싱가포르
‘아시아 토인비’ 마부바니 전 유엔안보리 의장 인터뷰
<한겨레>는 싱가포르 실리외교의 실체를 들여다보기 위해 지난달 30일 ‘아시아의 토인비’라고도 불리는 키쇼어 마부바니(67) 싱가포르국립대학교 리콴유공공정책대학원 원장을 만났다. 마부바니 원장은 1993~1998년 싱가포르 외무부 사무차관을 거쳐 11년간 유엔 주재 싱가포르 대사를 지냈다. 2001~2002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의장을 역임했다. 그의 저서 <위대한 융합>은 2013년 <파이낸셜 타임스> 선정 ‘올해의 책’ 중 하나이며,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그를 ‘세계 지성인 100인’으로 꼽았다.
G2가 서로 건설적 관계 원하고북한 잘 다뤄 통제하고 싶어해
한반도에 통일의 기회 될수도
지금은 모두가 유연해야 할 때 중국은 북한 반대에도 한국과 수교
미국에 ‘북한과 수교’ 요구해야
한국, 이념 벗어나 북한과 대화를 -싱가포르의 실용적 외교전략이 어떻게 성립됐는지 설명해달라.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라는 큰 이웃국가들 틈에 끼여 있다. 인도네시아와는 콘프론타시 분쟁(말레이연합을 반대한 인도네시아가 1963~1966년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등에 폭탄테러 등을 함)이 있었고, 말레이시아로부터는 추방됐다. 싱가포르로서는 생존은 당연히 주어지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와 친구가 되고, 그 누구와도 적이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냉전시대에도 우리는 친미 국가에 가까웠지만 반소련 또는 반공주의를 표방한 적은 한번도 없다. 냉전이 한창이던 1976년 모스크바를 방문한 라자라트남 외무장관은 안드레이 그로미코 당시 소련 외무장관에게 ‘우리는 공산주의자는 아니지만 반공주의자도 아니다. 우리는 기꺼이 소련과 교역을 하고 싶고, 소련 군함들이 싱가포르 항구에 정박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반대하지는 않았나? “싱가포르는 동남아 10개국을 통틀어 미국과 가장 가까운 나라지만, 오늘까지도 형식적으로는 미국의 동맹국이 아니다. 한번도 미국의 동맹이었던 적이 없다. 우리는 미국이 싱가포르를 방어해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우리 역시 미국을 위해 어떤 (분쟁) 상황에 동참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미국에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됐다. 우리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 때 분담금을 냈다. 한국과 달리 싱가포르는 미국과 의견을 달리하기도 한다. 1994년에 미국대사관 직원의 자제인 마이클 페이가 싱가포르에서 기물을 파손하다가 걸렸다. 싱가포르에서 절도와 기물 파손에 대한 형벌은 무겁다.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이 그의 사면을 요구하며 전화를 해왔지만 우리는 ‘미안하다. 우리는 국내법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라고 말하고 형을 집행했다. 페이는 결국 태형 4대, 징역 4개월에 3500싱가포르달러를 벌금으로 내야 했다. 그건 백악관에 굉장히 큰 충격을 줬다.” -과거 미국 외교관을 추방한 일도 있다고 들었다. “메이슨 헨드릭슨 사건(싱가포르 반정부 인사들의 총선 출마를 독려했다고 추방)이다. 우리는 미국과 많은 이견을 보여왔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제재를 가했고, <뉴욕 타임스>를 상대로 소송을 했다. 하지만 우리는 반미가 아니다. 우리는 독립적일 뿐이다. 싱가포르는 항상 모두로부터 스스로의 국익을 보호해야 한다고 믿어왔다.” -일반적으로 싱가포르의 눈부신 경제발전을 기적이라고 하는데, 아세안 등 다자체제 구축에 앞장서는 동시에 여러 나라와 일찌감치 양자 경제협력 관계를 맺은 것은 외교전략의 일환이었다고 볼 수 있나? “완벽한 마스터플랜은 없었다. 싱가포르의 근본을 설명하는 단어가 ‘실용적’이라는 단어다. 싱가포르는 1965년에 말레이연방으로부터 추방당해 원치 않는 독립을 강요받았다. 싱가포르는 당시 굉장히 가난한 나라였다. 심각한 실업문제 해결이 우선이었던 우리는 (상대를) 가리지 않고 투자를 받아 그 목표를 달성했다. 싱가포르는 당시 비동맹운동과 개발도상국들의 상호협력회의인 G77의 일원이었다. 이 회의체들에서는 당시 해외 투자를 거부하자는 움직임이 컸다. 해외 투자자들과 자본가들을 착취자로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싱가포르는 외국 투자자들을 싱가포르로 초청했다.” -미국과 동맹인 한국은 현재 중국과의 관계에서 난감한 점들이 있다. 최근엔 사드(THAAD)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즉 미-중 사이에서 곤란한 입장에 처했다. “미국 재무부에서 (한국 정부로) 전화가 가지 않았나? 싱가포르에도 미국 재무부에서 전화가 왔다. 하지만 우리는 ‘아시아에는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이 미국과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도 유연함을 보일 수 있다고 보나? “그런 것 같다. 내 경험에 의하면 백악관에는 어떤 결정과 행동을 할 때 왜 그렇게 하는지 설명을 해줘야 한다. 그리고 나는 미국이 한반도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본다. 안정적인 한반도를 유지하는 게 분명히 미국의 관심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신 미-일 동맹도 한국으로서는 고민되는 지점이 있고, 여전히 북한과의 관계 문제도 있다. 어떤 조언을 할 수 있나? “실용적이 되라는 것이다. 또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라고 해야겠다. 한국은 북한과 대화를 통해 길을 모색해야 한다. 포기해서는 안 된다. 북한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왜 계속 그들과 대화하지 않나? 싱가포르라면 대화할 것이다. 중국은 동맹국인 북한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국과 수교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한국도 실용적으로 미국에 북한과 수교하라고 요구했어야 했다. 그건 북한의 변화를 가져왔을 것이다. 미국은 외교를 대하는 자세가 굉장히 이상하다. 외교의 원칙인 외교관의 면책특권은 적들과 대화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란, 북한 등 적이라면 외교관을 보내지 않겠다’고 말하는 나라다. 그건 미친 짓이다. 미국은 너무 오만해서 3000년 된 외교의 지혜를 잊었다. 물론 과거 이란 정권이 미국 외교관들을 투옥한 사실이 있다. 하지만 오늘날 이란은 변했다. 그렇다면 왜 외교적 관계를 맺지 않나? 같은 맥락으로 한국은 너무 보수적인 것 같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걸 굉장히 주저한다. 그래서 더 실용적이 되라고 제안하고 싶다.”
2001년 3월22일 미 항공모함 키티호크가 싱가포르가 새로 구축한 창이해군기지에 미 항공모함으로서는 처음으로 진입하고 있다. 미 해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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