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5.17 21:55
수정 : 2015.05.17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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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싱가포르 국립박물관에서는 ‘리콴유 회고전’이 열리고 있었다. 고 리콴유(1923~2015) 전 싱가포르 초대 총리는 신생 소국 싱가포르를 아시아의 금융·물류·교통 중심지로 키웠다. 공과에 대한 평가는 갈리지만 싱가포르의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이다. 싱가포르/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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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 사이에서] ② 싱가포르
중국이 설립 주도한 AIIB
미국 반대에도 최초로 동참
유연하되 근본문제엔 타협 안해
“우리는 모두와 친구가 되고, 그 누구와도 적이 되지 않겠다.”
‘지도 위의 빨간 점’이라고 불릴 만큼 작은 나라 싱가포르가 50년간 지켜온 원칙이다. 지난달 30일 싱가포르에서 만난 키쇼어 마부바니 싱가포르국립대 리콴유공공정책대학원 원장은 “신생국 싱가포르의 생존을 지켜내기 위해 세운 명확한 원칙이었다”고 강조했다. 이 원칙은 ‘실리외교’로 유명한 싱가포르 외교·안보 정책의 근간이 됐다.
싱가포르에서 만난 전·현직 외교관들은 지난 3월 한국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을 요구하는 중국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원하는 미국 사이에서 진땀을 흘렸던 상황에 ‘한국은 대체 왜 망설였는가?’ 하고 의문을 제기했다.
싱가포르는 중국이 주도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설립에 최초로 동참한 21개국 중 하나다. 지난해 10월 창립 양해각서 체결식보다도 3개월 이른 7월 이미 참가 의사를 밝혔다. 미국과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 가운데선 처음이었다. 미국은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한 상태였다. 지난달 29일 싱가포르 외교부에서 만난 빌라하리 카우시칸 싱가포르 외교부 본부대사는 “아시아에 실제 인프라 투자에 대한 요구가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아시아개발은행도 인정한 것”이라며, 싱가포르가 실리적 판단에 기초해 일찌감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동참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9일 싱가포르국립박물관 2층에서는 고 리콴유 싱가포르 초대 총리 회고전이 열리고 있었다. 한달여 전 숨진 그를 기억하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는 갔지만 그의 이름은 사라지지 않네요.” 박물관으로 향하는 길에 택시 운전사가 말했다. 공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리콴유가 싱가포르의 생존을 우선에 놓고 이 작은 나라를 아시아의 금융·물류·교통의 중심으로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선 흔들림 없이 실천한 ‘실리외교’가 중요한 힘이 됐다.
싱가포르는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분리 독립했다.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해 연방에 합류한 지 2년 만이었다. 서울보다 조금 큰 싱가포르는 자국 면적의 273배가 넘는 인도네시아와 47배나 큰 말레이시아 사이에서 불안한 첫발을 뗐다. 당시 싱가포르의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320달러(현재 화폐가치 환산 2398달러)에 불과했다. 베트남전이 진행 중이었고, 캄보디아, 라오스에서 공산주의가 득세했다. 동남아는 치열한 냉전의 현장이었다.
라자라트남 싱가포르 초대 외무장관은 취임 첫해 연설에서 “우리 외교정책의 첫번째 임무는 외부 위협으로부터 독립을 지키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국가들, 특히 이웃국가들과 우호적 관계를 형성하는 방법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우리의 외교안보 정책은 싱가포르가 그 어떤 강대국의 ‘새우’가 되지 않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대국 사이 ‘새우’ 안될 것”
아세안 등 국제기구 적극 활용
비동맹 노선 유지·다자체제 구축
다양한 네트워크 주도적 참여로
‘독립 50년’ 작은 나라 약점 보완
정치·군사 등서 미·중 간섭 배제
싱가포르도 G2 사이 새로운 도전
“둘 중 누구를 택할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선택 안할지 고민해야”
싱가포르가 ‘비동맹’ 노선을 유지할 수 있었는 데에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의 역할이 컸다. 아세안은 1967년 싱가포르를 포함한 동남아의 비공산 5개국이 지역 내 질서 유지를 위해 창설한 기구다. 카우시칸 대사는 “중국과 인도 사이에 위치한 동남아 국가들이 이들의 틈에서 주권 또는 중립을 유지하는 데 아세안이 계속 역할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 현재까지 이 기구가 존재하는 근본적인 이유”라고 꼽았다.
싱가포르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등 국제기구를 적극 활용하며 대외적 위상을 높였다. 1992년에는 유엔의 비공식 모임인 ‘작은 나라들의 포럼’(Forum of small states)을 꾸렸다. 유엔 193개 가입국 가운데 인구 1000만명 이하 105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다양한 경제·외교·안보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작은 나라로서의 약점을 지워갔다.
싱가포르의 실리외교는 결국 생존과 이익을 위해 타협한다는 것일까? 카우시칸 대사는 “싱가포르는 유연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들은 타협하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1990년대 초반 중국은 싱가포르의 대만 내 군사 훈련을 반대하며 하이난섬을 대체 훈련지로 내주겠다고 제안했다. 싱가포르는 거절했다. 10년 넘게 핵심 훈련지였던 대만에서 갑자기 철수할 수 없었던 것이다. 중국과의 불화를 낳더라고 근본적으로 타협의 여지가 없는 문제였다. 반면 ‘하나의 중국’ 노선을 존중해 자국 내 대만 국기와 국가를 금지한 조처는 ‘실용적인 선택’이었다는 게 싱가포르의 입장이다. 싱가포르 국내 정치에 대한 미국의 개입은 용인할 수 없는 ‘근본적 문제’이지만, 미 국무부가 연례 인권보고서에서 싱가포르를 비판하는 것은 실용적 관점에서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라고 싱가포르 외교 전문가들은 말한다.
싱가포르 외교도 G2로 떠오른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새 도전에 직면했다. 싱가포르는 비동맹 노선을 지키고 있지만, 경제·군사적 측면에서 여느 동맹국 못지않게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싱가포르는 동아시아의 안정을 위해 지역 내 미군 주둔을 지지한다. 그 일환으로 싱가포르 해안에 항공모함이 정박할 수 있는 거대한 창이해군기지를 만들었다. 2001년부터 미국 항공모함들은 창이기지를 수시로 드나든다. 마부바니 원장은 “(창이기지는) 미 7함대에 주는 싱가포르의 선물이었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싱가포르는 태생적으로 중국과 가까울 수밖에 없는 처지다. 싱가포르 인구의 74%가 중국계인데다, 중국이 싱가포르의 가장 큰 교역 상대국이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도 언젠가는 이 ‘두 친구’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카우시칸 대사는 “지금이 (미·중) 강대국들이 서로의 힘에 적응하는 기간이라고 한다면, 나머지 국가들은 ‘그들 중에 누구를 택할 것인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둘 중 한쪽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을지’를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처럼) 조약 동맹국의 경우 선택의 폭이 좁아지는 건 맞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외교) 전략의 모든 목적은 결국 선택의 여지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며 “선택지가 없는 구석에 몰렸다면 그건 그 나라의 외교가 실패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싱가포르/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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