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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5.14 22:17 수정 : 2015.05.15 14:22

[강대국 사이에서] ① 핀란드
2017년 자주독립 100돌 ‘고난의 역사’

2차 대전 뒤 우호·협력 ‘핀-소협약’
냉전 휩쓸리지 않고 중립노선 고수

2년 뒤인 2017년이면 핀란드는 독립 100돌을 맞는다. 지난 100년의 역사는 이 나라가 주변 강대국에 끼인 지정학적 위치 탓에 겪어온 쓰라린 역사적 경험과 자주독립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써온 지혜가 응축된 시간이기도 하다.

핀란드는 16세기 초부터 300년 동안 스웨덴 왕국에 편입돼 지배를 받았다. 1809년에는 스웨덴과의 전쟁에서 이긴 제정러시아에 복속돼 핀란드대공국이 됐다. 러시아령 핀란드대공국은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의 와중에 주권국가로 독립했다.

그러나 독립 직후 1917년 사회주의 세력의 적군과, 독일의 지원을 받은 백군으로 갈려 최대 3만7000명이 목숨을 잃는 내전을 겪었다. 백군의 승리로 내전이 끝난 뒤에는 폭넓은 사회적 치유와 통합의 과정이 진행됐다. 내전 뒤 9년 만에 사회민주당이 집권했을 정도다.

그러나 닥쳐온 2차 세계대전은 약소국 핀란드가 강대국 소련과 독일을 상대로 세 차례나 전쟁을 할 수밖에 없는 지경으로 몰아넣었다. 1939년 독일과 불가침조약을 맺은 소련이 폴란드를 분할점령한 데 이어 핀란드를 전격 침공하면서 ‘겨울전쟁’이 벌어졌다. 병력과 무기에서 핀란드는 소련에 압도적인 열세였지만 스키 부대와 공습 교란, 영하 40℃까지 내려가는 혹한을 이용한 게릴라 전술로 완강히 저항했다.

당시 소련군의 무차별 소이탄 폭격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커지자 뱌체슬라프 몰로토프 소련 외무장관은 “원조용 빵을 던져줬다”고 비아냥거렸다. 그러자 핀란드인들은 “몰로토프야, 이거나 마셔라”라고 외치며 소련군 탱크에 화염병을 던지며 맞섰다. ‘몰로토프 칵테일’의 유래다.

1941년 6월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면서 핀란드에 협력을 요구하자 핀란드는 나치의 점령을 피하기 위해 전투에 합류하면서 소련과의 ‘계속전쟁’이 발발했다. 1944년 들어 전세가 소련 쪽으로 역전되자, 핀란드는 이번에는 소련 편에서 독일을 공격해야 했다. 두 강대국의 충돌 사이에 낀 약소국의 비애였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핀란드는 냉전에 휩쓸리지 않고 철저한 중립 노선을 걸었다. 여기엔 1948년 핀란드와 소련이 체결한 ‘우호·협력·상호 지원 협약’(핀-소 협약)이 큰 몫을 했다. 핀란드의 정치·군사적 중립과 소련의 핀란드 영토 및 주권 보장이 조약의 뼈대다. 핀란드는 이 조약을 보호막으로 삼아 서구식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유지·발전시킬 수 있었다.

헬싱키/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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