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9.16 16:47
수정 : 2019.09.16 19:03
조국 사태의 본질은 ‘세대’가 아니라 ‘계급’이다.
개혁과 정의와 진보를 외쳤던 그의 삶이 알고 보니 다른 ‘강남 상류층’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중산층과 서민이 느끼는 배신감과 상실감이 핵심이다.
기득권 세력은 계급의 문제를 늘 다른 쟁점으로 물타기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 사태로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은 내상을 입었다. 국정 수행 평가와 당 지지도는 큰 변화가 없다. 위기를 느낀 지지층이 결집한 덕분이다. 그러나 지지층도 마음에 큰 상처가 났다.
장관 임명으로 사태가 끝난 것도 아니다. 검찰은 압수수색과 기소가 부당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필사적이다. 정치가 그렇듯이 수사도 생물이다. 뭐가 또 튀어나올지 알 수 없다. 검찰이 성공하면 정권이 타격을 입는다. 실패하면 검찰이 치명상을 입는다. 위험한 대치다.
난세에는 요설이 판친다. 이른바 보수는 조국 사태를 계기로 정치 지형을 ‘박근혜 탄핵’ 이전으로 되돌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가장 위력적인 선동은 세대갈등 부추기기다. 조국 장관을 ‘운동권 출신 386’의 상징으로 세우고, 그 아래 세대를 ‘386세대’와 분리하려는 시도다.
이른바 보수의 세대갈등론은 매력적이다. 인류는 자신과 공동체의 문제를 늘 다른 세대 탓으로 돌렸다. ‘요즘 젊은것들’이 문제였다. ‘늙으면 죽어야 한다’는 말은 통했다. ‘위아래 사이에 낀 우리가 가장 불행한 세대’라고 생각했다. 그런가? 아니다.
1960년대생이 기득권 세력으로 비치는 것은 그들이 지금 50대이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든 50대가 주도한다. 1960년대생은 다른 세대에 비해 인구도 많다. 최근 20년 동안 386세대가 정치판을 좌지우지했다는 비판이 있다. 그건 386 정치인들의 문제지 386세대의 문제는 아니다.
조국 장관은 386의 대표가 아니다. 그는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이었다. 사노맹은 일종의 ‘좌파 맹동주의’였다. 큰 조직도 아니었다. 안기부가 괴물처럼 부풀렸을 뿐이다.
386세대의 대표적인 정치인은 더불어민주당의 이인영·우상호·김영춘 의원, 임종석 전 의원 등 다른 사람들이다. 운동권 출신 386세대의 자식 중에는 조국 장관의 경우와 달리 상류층 진입에 실패한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조국 사태의 본질은 ‘세대’가 아니라 ‘계급’이다. 개혁과 정의와 진보를 외쳤던 그의 삶이 알고 보니 다른 ‘강남 상류층’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중산층과 서민이 느끼는 배신감과 상실감이 핵심이다. 그렇다고 조국 교수가 외쳤던 개혁과 정의와 진보가 무가치한 것이 되지는 않는다.
조국 사태로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1인 시위를 하고 삭발을 하고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당 지지도는 올라가지 않는다. 왜 그럴까? 유권자들은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를 ‘강남 상류층’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은 개혁과 정의와 진보를 외친 적이 없다.
하지만 기득권 세력은 ‘시선 돌리기’의 도사들이다. 계급의 문제를 늘 다른 쟁점으로 물타기했다. 박정희·전두환 시절에는 계급 모순을 타파하려는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았다. 김영삼·김대중 정부 시기에는 ‘지역’을 전면에 내세웠다. 영남의 서민이 못사는 원인이 전라도 때문인 것처럼 선동했다.
기득권 세력이 ‘세대’를 들고나온 것은 노무현 정부 때였다. 노무현 대통령을 둘러싼 운동권 출신 386들이 나라를 망친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명박·박근혜 10년을 건너뛴 문재인 정부에서도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조국 사태로 세대갈등론의 서식 환경이 좋아졌다고 보는 것 같다.
최근 20대 연령층에서는 남녀 간 ‘젠더 갈등’이 시작되고 있다. 기득권 세력은 머지않아 20대 남자들이 불이익을 받는 이유가 여성 탓이라고 선동할 것이다. 내기해도 좋다.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조국은 조국대로, 조국 사태는 조국 사태대로 해결해야 한다. 조국 장관은 검찰 수사를 지켜보고 거취를 결정하면 된다.
조국 사태의 해법은 훨씬 더 어렵다. 계층 간 격차가 점차 더 벌어지는데 계층 간 이동 사다리는 거의 다 끊어져가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공정의 가치는 대학입시 제도를 바꾸는 수준에서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결국 서울의 일류대학 출신이나 지방대학 출신이 취업과 연봉에서 크게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를 줄여야 한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수십년에 걸쳐 조금씩 꾸준히 밀고 나가야 할 중대한 과제다. 호흡을 길게 가다듬어야 한다.
성한용
정치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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