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팀 선임기자 “민주화 운동을 하는 입장에서는 자신의 세계나 신념체계만 고집하면 될지 몰라도, 정치를 통해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나라를 새롭게 바꿔보겠다는 각오라면 전체를 다 통합하는 태도와 너그러움이 있어야 합니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주 말했다. 1946년생과 1953년생이니 친구는 아니다. 변호사 선후배지만 정치인으로는 사제지간에 가깝다. 제자는 스승의 업적을 승계하고 잘못을 넘어서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스스로 표현했듯이 “너무 낭만적이고 이상주의적”이었다. 대통령이 여당을 지배하는 것은 권위주의 시대의 낡은 유산이라고 봤다. 민주적 정당에 필요한 것은 대통령을 겸한 제왕적 총재가 아니라 분권적, 수평적, 개방적 리더십이라는 지론을 가졌다. 당정 분리를 실천했다. 현실은 이상과 달랐다. 대통령은 여당을 방치했고, 자생력이 없었던 열린우리당은 엉망이 됐다. 그래도 국민은 열린우리당을 ‘노무현당’이라고 했다. 실패였다. 그는 선거제도를 고쳐서 지역대결 구도를 깨면 동거정부로 권력을 분점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진짜 행동으로 옮겼다. 참여정부 최대의 실책이었던 대연정 제안의 배경이다. 의도와 결과는 일치하지 않았다. 사달이 났다. 지지층은 떨어져 나가고 야당과의 관계는 파탄으로 치달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훨씬 현실적이었다. 대선 전 일찌감치 ‘민주당 정부’를 선언했다. 집권 이후 청와대, 내각, 공기업에 민주당 사람들을 줄줄이 앉혔다. 논공행상 차원만은 아니었다. 정부 출범 이후 고위 당·정·청 회의, 당정 회의가 자주 열린다. 비공개회의도 꽤 많다. 각료들이 민감한 정책을 보고하면 문재인 대통령은 “당과 얘기해보라”고 지시하는 경우가 많다. 김동연 부총리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최근 예민한 발언은 대부분 민주당 정책위원회와 조율을 거친 것이다. 민주당 정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정책에서 민주당 역할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야 관계도 연정이나 합당 같은 담론을 접고 실질적인 대화에 초점을 맞췄다. 취임사에서 “분열과 갈등의 정치,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끝나야 한다”며 “대통령이 나서서 직접 대화하겠다”고 했다. “야당은 국정 운영의 동반자”라며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다”고 했다. 그러나 야당과의 관계는 당정 관계만큼 성공적이지 않다. 오히려 더 나빠졌다. 여야 관계는 상대적이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과 대화할 생각이 없었다. ‘평양 올림픽’ 주장이 증거다. 그래도 문재인 대통령에게 정치적 책임은 남는다. 대한민국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분열적인 사람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묻는다>라는 책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민주화 운동을 하는 입장에서는 자신의 세계나 신념체계만 고집하면 될지 몰라도, 정치를 통해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나라를 새롭게 바꿔보겠다는 각오라면 전체를 다 통합하는 태도와 너그러움이 있어야 합니다.” <1219 끝이 시작이다>에도 있다. “혹시 우리가 민주화에 대한 헌신과 진보적 가치들에 대한 자부심으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선을 그어 편을 가르거나 우월감을 갖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른바 ‘싸가지 없는 진보’를 자초한 것이 아닌지 겸허한 반성이 필요한 때입니다.” 대화와 타협은 의지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경험과 훈련이 필요하다. 아직 늦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이 야당과 적극 대화에 나설 시기다. 가장 절박한 과제인 민생 경제에서 성과를 내려면 입법을 해야 한다. 입법권은 국회의 권한이다. 국회는 여소야대다. 정치로 풀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첫째, 야당과 대화하고 타협하는 길이다. 개헌 및 선거구제 개편과 개혁입법 일괄타결, 여·야·정 정책협의체 설치, 대표회담 정례화 등을 검토할 수 있다. 둘째, 야당을 압박하는 길이다. 민생 경제의 어려움이 야당의 입법 방해 때문이라고 호소하며 2020년 총선 압승을 기대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입법은 2020년 총선 이후로 미뤄야 한다. 선택은 문재인 대통령의 몫이다. 후자로 가면 당분간 여야 관계는 사라진다. 20대 후반기 국회를 이끌어갈 문희상 국회의장이 선출됐다. 8월25일이면 더불어민주당의 새 대표가 뽑힌다. 그러나 국회의장이나 여당 대표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대통령제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인은 역시 대통령이다. shy99@hani.co.kr
칼럼 |
[성한용 칼럼] ‘문재인 정치’가 필요하다 |
정치팀 선임기자 “민주화 운동을 하는 입장에서는 자신의 세계나 신념체계만 고집하면 될지 몰라도, 정치를 통해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나라를 새롭게 바꿔보겠다는 각오라면 전체를 다 통합하는 태도와 너그러움이 있어야 합니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주 말했다. 1946년생과 1953년생이니 친구는 아니다. 변호사 선후배지만 정치인으로는 사제지간에 가깝다. 제자는 스승의 업적을 승계하고 잘못을 넘어서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스스로 표현했듯이 “너무 낭만적이고 이상주의적”이었다. 대통령이 여당을 지배하는 것은 권위주의 시대의 낡은 유산이라고 봤다. 민주적 정당에 필요한 것은 대통령을 겸한 제왕적 총재가 아니라 분권적, 수평적, 개방적 리더십이라는 지론을 가졌다. 당정 분리를 실천했다. 현실은 이상과 달랐다. 대통령은 여당을 방치했고, 자생력이 없었던 열린우리당은 엉망이 됐다. 그래도 국민은 열린우리당을 ‘노무현당’이라고 했다. 실패였다. 그는 선거제도를 고쳐서 지역대결 구도를 깨면 동거정부로 권력을 분점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진짜 행동으로 옮겼다. 참여정부 최대의 실책이었던 대연정 제안의 배경이다. 의도와 결과는 일치하지 않았다. 사달이 났다. 지지층은 떨어져 나가고 야당과의 관계는 파탄으로 치달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훨씬 현실적이었다. 대선 전 일찌감치 ‘민주당 정부’를 선언했다. 집권 이후 청와대, 내각, 공기업에 민주당 사람들을 줄줄이 앉혔다. 논공행상 차원만은 아니었다. 정부 출범 이후 고위 당·정·청 회의, 당정 회의가 자주 열린다. 비공개회의도 꽤 많다. 각료들이 민감한 정책을 보고하면 문재인 대통령은 “당과 얘기해보라”고 지시하는 경우가 많다. 김동연 부총리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최근 예민한 발언은 대부분 민주당 정책위원회와 조율을 거친 것이다. 민주당 정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정책에서 민주당 역할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야 관계도 연정이나 합당 같은 담론을 접고 실질적인 대화에 초점을 맞췄다. 취임사에서 “분열과 갈등의 정치,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끝나야 한다”며 “대통령이 나서서 직접 대화하겠다”고 했다. “야당은 국정 운영의 동반자”라며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다”고 했다. 그러나 야당과의 관계는 당정 관계만큼 성공적이지 않다. 오히려 더 나빠졌다. 여야 관계는 상대적이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과 대화할 생각이 없었다. ‘평양 올림픽’ 주장이 증거다. 그래도 문재인 대통령에게 정치적 책임은 남는다. 대한민국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분열적인 사람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묻는다>라는 책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민주화 운동을 하는 입장에서는 자신의 세계나 신념체계만 고집하면 될지 몰라도, 정치를 통해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나라를 새롭게 바꿔보겠다는 각오라면 전체를 다 통합하는 태도와 너그러움이 있어야 합니다.” <1219 끝이 시작이다>에도 있다. “혹시 우리가 민주화에 대한 헌신과 진보적 가치들에 대한 자부심으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선을 그어 편을 가르거나 우월감을 갖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른바 ‘싸가지 없는 진보’를 자초한 것이 아닌지 겸허한 반성이 필요한 때입니다.” 대화와 타협은 의지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경험과 훈련이 필요하다. 아직 늦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이 야당과 적극 대화에 나설 시기다. 가장 절박한 과제인 민생 경제에서 성과를 내려면 입법을 해야 한다. 입법권은 국회의 권한이다. 국회는 여소야대다. 정치로 풀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첫째, 야당과 대화하고 타협하는 길이다. 개헌 및 선거구제 개편과 개혁입법 일괄타결, 여·야·정 정책협의체 설치, 대표회담 정례화 등을 검토할 수 있다. 둘째, 야당을 압박하는 길이다. 민생 경제의 어려움이 야당의 입법 방해 때문이라고 호소하며 2020년 총선 압승을 기대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입법은 2020년 총선 이후로 미뤄야 한다. 선택은 문재인 대통령의 몫이다. 후자로 가면 당분간 여야 관계는 사라진다. 20대 후반기 국회를 이끌어갈 문희상 국회의장이 선출됐다. 8월25일이면 더불어민주당의 새 대표가 뽑힌다. 그러나 국회의장이나 여당 대표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대통령제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인은 역시 대통령이다. shy99@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