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팀 선임기자 박정희 시대에 동서 간 데탕트의 흐름을 타고 시작된 한반도 냉전 구조 해체가 노태우, 김대중, 노무현 시대를 거쳐 문재인 시대에 마무리될 조짐을 보인다. 한반도 냉전 구조 해체는 우리에게도 엄청난 기회다. 보수와 진보, 여당과 야당의 이해를 넘어선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은 박정희 대통령과 김일성 수상이 동서 간 데탕트라는 국제질서의 흐름에 따른 것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3년 6·23 선언에서 “우리에 대해 적대적이지 않은 한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는 공산 국가들에 대해서도 문호를 개방한다”고 했다. 1960년대 말 시작된 데탕트는 1972년 닉슨 대통령의 베이징 방문을 거쳐 1975년 헬싱키 협약으로 절정을 맞았다.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중단됐지만 1980년대 중반 소련의 개혁·개방으로 신 데탕트 시대가 열렸고, 동유럽 사회주의 정권 및 소련 붕괴, 독일 통일로 이어졌다. 동서 간 냉전체제가 한반도를 제외하고 거의 무너진 것이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은 이런 국제질서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호응한 것이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1988년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7·7 선언)을 발표했다. 7·7 선언의 마지막 여섯째 항목은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킬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북한이 미국·일본 등 우리 우방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협조할 용의가 있으며, 또한 우리는 소련·중국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한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남북 교차 승인’ 방안이다. 실제로 우리는 1990년 소련과 수교했고 1992년 중국과 수교했다. 북한도 일본 및 미국과의 수교를 시도했다. 1990년 가네마루 신 자민당 부총재와 다나베 마코토 사회당 대표의 북한 방문을 계기로 북-일 수교협상이 시작됐다. 그러나 결렬됐다. 북한 핵 개발 의혹과 일본인 납치 문제가 걸림돌이었다. 2002년 고이즈미 총리의 북한 방문으로 수교협상이 재개됐다. 또 깨졌다. 같은 이유였다. 우리와 달리 북한은 30년 가까이 미국·일본과 수교하지 못한 채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어 있다. 이유가 뭘까? 미국과 일본의 냉전 세력, 한반도 분단 기득권 세력의 방해 때문이라는 가설이 설득력이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는 금융·증권 거래의 중심지다. 펜타곤은 국방부 건물이다. 한반도는 월스트리트와 펜타곤의 이해가 엇갈리는 곳이다. 펜타곤과 군산복합체는 한반도의 평화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일본의 우익세력도 한반도의 분단과 갈등을 먹고 산다. 어쨌든 북한으로서는 자구책이 필요했을 것이다. 핵폭탄을 만들고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한 것은 국제사회 고립에서 벗어나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른다.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은 북한이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가 북한의 몸부림 때문인지, 대통령 재선을 향한 트럼프 대통령의 집념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다. 북-미 정상회담 한방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 않는다. 북-미 관계 정상화의 종점은 평화협정이 아니다. 북-미 수교다. 미국의 기업이 북한에 투자하고 미국 사람 수천명이 일상적으로 북한에 머물 수 있게 되어야 한다. 그래야 북한이 먹고살 수 있다. 그래야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래야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북한의 비핵화와 검증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북-미 수교에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역할은 어쩌면 ‘북-미 관계 정상화’라는 열차를 ‘수교협상’이라는 궤도에 올려놓는 것까지다. 그 이후는 ‘워싱턴 조야’의 뜻에 달렸다. 미국이 북한과 국교를 맺는 최종 단계까지 가려면 법령을 개정해야 한다. 미국 의회의 복잡한 승인과 동의가 필요하다. 아무리 서둘러도 2~3년은 걸릴 것이다. 미국과 베트남 수교도 3년 이상 걸렸다. 박정희 시대에 동서 간 데탕트의 흐름을 타고 시작된 한반도 냉전 구조 해체가 노태우, 김대중, 노무현 시대를 거쳐 문재인 시대에 마무리될 조짐을 보인다. 한반도 냉전 구조 해체는 우리에게도 엄청난 기회다. 보수와 진보, 여당과 야당의 이해를 넘어선다.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돼야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경제도 성장시키고 일자리도 만들고 양극화도 해소하고 복지국가의 꿈도 이룰 수 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6월12일을 기다리는 이유다. shy99@hani.co.kr
칼럼 |
[성한용 칼럼] 박정희-노태우의 냉전 종식 완결해야 |
정치팀 선임기자 박정희 시대에 동서 간 데탕트의 흐름을 타고 시작된 한반도 냉전 구조 해체가 노태우, 김대중, 노무현 시대를 거쳐 문재인 시대에 마무리될 조짐을 보인다. 한반도 냉전 구조 해체는 우리에게도 엄청난 기회다. 보수와 진보, 여당과 야당의 이해를 넘어선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은 박정희 대통령과 김일성 수상이 동서 간 데탕트라는 국제질서의 흐름에 따른 것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3년 6·23 선언에서 “우리에 대해 적대적이지 않은 한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는 공산 국가들에 대해서도 문호를 개방한다”고 했다. 1960년대 말 시작된 데탕트는 1972년 닉슨 대통령의 베이징 방문을 거쳐 1975년 헬싱키 협약으로 절정을 맞았다.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중단됐지만 1980년대 중반 소련의 개혁·개방으로 신 데탕트 시대가 열렸고, 동유럽 사회주의 정권 및 소련 붕괴, 독일 통일로 이어졌다. 동서 간 냉전체제가 한반도를 제외하고 거의 무너진 것이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은 이런 국제질서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호응한 것이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1988년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7·7 선언)을 발표했다. 7·7 선언의 마지막 여섯째 항목은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킬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북한이 미국·일본 등 우리 우방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협조할 용의가 있으며, 또한 우리는 소련·중국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한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남북 교차 승인’ 방안이다. 실제로 우리는 1990년 소련과 수교했고 1992년 중국과 수교했다. 북한도 일본 및 미국과의 수교를 시도했다. 1990년 가네마루 신 자민당 부총재와 다나베 마코토 사회당 대표의 북한 방문을 계기로 북-일 수교협상이 시작됐다. 그러나 결렬됐다. 북한 핵 개발 의혹과 일본인 납치 문제가 걸림돌이었다. 2002년 고이즈미 총리의 북한 방문으로 수교협상이 재개됐다. 또 깨졌다. 같은 이유였다. 우리와 달리 북한은 30년 가까이 미국·일본과 수교하지 못한 채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어 있다. 이유가 뭘까? 미국과 일본의 냉전 세력, 한반도 분단 기득권 세력의 방해 때문이라는 가설이 설득력이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는 금융·증권 거래의 중심지다. 펜타곤은 국방부 건물이다. 한반도는 월스트리트와 펜타곤의 이해가 엇갈리는 곳이다. 펜타곤과 군산복합체는 한반도의 평화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일본의 우익세력도 한반도의 분단과 갈등을 먹고 산다. 어쨌든 북한으로서는 자구책이 필요했을 것이다. 핵폭탄을 만들고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한 것은 국제사회 고립에서 벗어나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른다.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은 북한이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가 북한의 몸부림 때문인지, 대통령 재선을 향한 트럼프 대통령의 집념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다. 북-미 정상회담 한방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 않는다. 북-미 관계 정상화의 종점은 평화협정이 아니다. 북-미 수교다. 미국의 기업이 북한에 투자하고 미국 사람 수천명이 일상적으로 북한에 머물 수 있게 되어야 한다. 그래야 북한이 먹고살 수 있다. 그래야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래야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북한의 비핵화와 검증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북-미 수교에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역할은 어쩌면 ‘북-미 관계 정상화’라는 열차를 ‘수교협상’이라는 궤도에 올려놓는 것까지다. 그 이후는 ‘워싱턴 조야’의 뜻에 달렸다. 미국이 북한과 국교를 맺는 최종 단계까지 가려면 법령을 개정해야 한다. 미국 의회의 복잡한 승인과 동의가 필요하다. 아무리 서둘러도 2~3년은 걸릴 것이다. 미국과 베트남 수교도 3년 이상 걸렸다. 박정희 시대에 동서 간 데탕트의 흐름을 타고 시작된 한반도 냉전 구조 해체가 노태우, 김대중, 노무현 시대를 거쳐 문재인 시대에 마무리될 조짐을 보인다. 한반도 냉전 구조 해체는 우리에게도 엄청난 기회다. 보수와 진보, 여당과 야당의 이해를 넘어선다.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돼야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경제도 성장시키고 일자리도 만들고 양극화도 해소하고 복지국가의 꿈도 이룰 수 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6월12일을 기다리는 이유다.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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