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팀 선임기자 “국회의원들이 분권형 개헌을 주장하려면 정치불신을 타파한 뒤에 해야 한다. 대통령 권한을 제한하는 것은 국민이 동의하지만, 그 권한을 국회의원이 가져간다고 하면 동의하지 않는다.” 3월7일 아침 언론진흥재단 두번째 언론포럼 주제는 개헌이었다. 권력구조에 관심이 쏠렸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여야가 정치적 합의를 이룬다면 개헌 시기를 늦출 수도 있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최인호 의원은 4년 중임 대통령제를 전제로 다양한 권력 분산 방안을 제시했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비례대표)은 전문가 견해를 근거로 이원정부제 도입을 주장했다. 4년 중임 대통령제는 “절대반지를 쌍반지로 끼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낮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정당 대표들이 만났다. 한반도가 주제였지만 개헌 얘기도 나왔다. 조배숙·이정미 대표는 대통령 개헌안 발의를 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러면 국회에서 속도를 내달라. 이번 지방선거를 놓치면 개헌의 모멘텀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국회에서 개헌에 대한 여야 합의가 가능할까? 쉽지 않을 것이다. 사실 이번 개헌의 논점은 시기가 아니다. 권력구조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의원 다수는 대통령제를 유지하면서 권력을 분산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자유한국당 의원 다수와 더불어민주당 의원 일부는 국무총리를 국회가 선출하는 이원정부제를 원한다. 그러나 이들이 ‘분권형 대통령제’라고 주장하는 이원정부제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원내각제와 비슷하다. 사실상의 내각제를 대통령제로 포장한 것이다. 세상 어디에도 ‘분권형 대통령제’라는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름을 뭐라고 하든 이원정부제로는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세 가지 이유다. 첫째, 경로 의존성이다. 정부 수립 이후 70년 동안 거의 대통령제였다. 대통령제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뤘다. 바꿀 이유가 없다. 둘째, 위험하다. 예를 들어 문재인 대통령이 외치를 담당하고 홍준표 실세 국무총리가 내치를 담당한다면 국정이 제대로 돌아갈까? 셋째, 반정치주의다. 홍준표 대표가 지난 연말 <한겨레>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국회의원들이 분권형 개헌을 주장하려면 정치불신을 타파한 뒤에 해야 한다. 대통령 권한을 제한하는 것은 국민이 동의하지만, 그 권한을 국회의원이 가져간다고 하면 동의하지 않는다.” 홍준표 대표의 직설은 이원정부제를 원하는 국회의원들의 속셈과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민심을 꿰뚫어 본 것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이원정부제를 도입하려면 각 정당이 득표율만큼 의석을 갖도록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 현행 소선거구제는 1당과 2당에 터무니없이 유리한 불공정 제도다. 민의가 왜곡된 의회에 권력을 쥐여줄 수는 없다. 선거제도를 바꾸면 되지 않을까? 거의 불가능하다. 지금의 선거제도는 1987년 대선 뒤 ‘1노 3김’의 타협으로 탄생했다. 1노 3김은 총재였다. 공천권과 정치자금 분배권을 갖고 있었다. 의원들에게 절대권력을 행사했다. 그래서 선거법 개정이 가능했다. 지금 정당에는 총재가 없다. 공천권과 정치자금 분배권은 당원과 지지자들이 갖고 있다. 설령 문재인 대통령과 홍준표 대표가 선거법 개정에 합의한다고 해도 국회의원 개개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선거법 개정이 안 된다. 20대 국회의원은 현행 선거제도로 당선된 사람들이다. 자신을 당선시켜준 제도를 바꿀까? 바꾸지 않을 것이다. 구조적으로 선거법 개정은 어렵게 되어 있는 것이다. 기가 막히지만 현실이다. 그래서다. 개헌하려면 국회의원들이 물러서야 한다. 이원정부제에 미련을 버려야 한다. 현재로서는 대통령제를 유지하면서 대통령의 권한을 여러 곳으로 분산시키는 정도가 최선이다. 그게 국민의 뜻이다. 대통령 임기는 4년 중임이 좋을 것 같다. 국민이 그걸 원한다. 자유한국당은 임기 8년짜리 대통령 출현을 겁내는 것 같은데 공연한 걱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개정된 헌법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더불어민주당의 유력한 차기 주자였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사라졌다. 4년 중임 대통령제를 도입해도 자유한국당이 얼마든지 집권할 수 있다. 다이내믹 코리아다. 정리하면 이렇다. 시기가 문제가 아니다. 국회의원들이 이원정부제를 포기해야 개헌이 가능하다. 개헌이 안 되면 국회의원들이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부르는 현행 대통령제가 계속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손해가 없다. 국회의원들만 손해다. 어떻게 할 것인가. shy99@hani.co.kr
칼럼 |
[성한용 칼럼] 분권형 대통령제는 없다 |
정치팀 선임기자 “국회의원들이 분권형 개헌을 주장하려면 정치불신을 타파한 뒤에 해야 한다. 대통령 권한을 제한하는 것은 국민이 동의하지만, 그 권한을 국회의원이 가져간다고 하면 동의하지 않는다.” 3월7일 아침 언론진흥재단 두번째 언론포럼 주제는 개헌이었다. 권력구조에 관심이 쏠렸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여야가 정치적 합의를 이룬다면 개헌 시기를 늦출 수도 있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최인호 의원은 4년 중임 대통령제를 전제로 다양한 권력 분산 방안을 제시했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비례대표)은 전문가 견해를 근거로 이원정부제 도입을 주장했다. 4년 중임 대통령제는 “절대반지를 쌍반지로 끼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낮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정당 대표들이 만났다. 한반도가 주제였지만 개헌 얘기도 나왔다. 조배숙·이정미 대표는 대통령 개헌안 발의를 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러면 국회에서 속도를 내달라. 이번 지방선거를 놓치면 개헌의 모멘텀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국회에서 개헌에 대한 여야 합의가 가능할까? 쉽지 않을 것이다. 사실 이번 개헌의 논점은 시기가 아니다. 권력구조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의원 다수는 대통령제를 유지하면서 권력을 분산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자유한국당 의원 다수와 더불어민주당 의원 일부는 국무총리를 국회가 선출하는 이원정부제를 원한다. 그러나 이들이 ‘분권형 대통령제’라고 주장하는 이원정부제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원내각제와 비슷하다. 사실상의 내각제를 대통령제로 포장한 것이다. 세상 어디에도 ‘분권형 대통령제’라는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름을 뭐라고 하든 이원정부제로는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세 가지 이유다. 첫째, 경로 의존성이다. 정부 수립 이후 70년 동안 거의 대통령제였다. 대통령제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뤘다. 바꿀 이유가 없다. 둘째, 위험하다. 예를 들어 문재인 대통령이 외치를 담당하고 홍준표 실세 국무총리가 내치를 담당한다면 국정이 제대로 돌아갈까? 셋째, 반정치주의다. 홍준표 대표가 지난 연말 <한겨레>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국회의원들이 분권형 개헌을 주장하려면 정치불신을 타파한 뒤에 해야 한다. 대통령 권한을 제한하는 것은 국민이 동의하지만, 그 권한을 국회의원이 가져간다고 하면 동의하지 않는다.” 홍준표 대표의 직설은 이원정부제를 원하는 국회의원들의 속셈과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민심을 꿰뚫어 본 것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이원정부제를 도입하려면 각 정당이 득표율만큼 의석을 갖도록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 현행 소선거구제는 1당과 2당에 터무니없이 유리한 불공정 제도다. 민의가 왜곡된 의회에 권력을 쥐여줄 수는 없다. 선거제도를 바꾸면 되지 않을까? 거의 불가능하다. 지금의 선거제도는 1987년 대선 뒤 ‘1노 3김’의 타협으로 탄생했다. 1노 3김은 총재였다. 공천권과 정치자금 분배권을 갖고 있었다. 의원들에게 절대권력을 행사했다. 그래서 선거법 개정이 가능했다. 지금 정당에는 총재가 없다. 공천권과 정치자금 분배권은 당원과 지지자들이 갖고 있다. 설령 문재인 대통령과 홍준표 대표가 선거법 개정에 합의한다고 해도 국회의원 개개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선거법 개정이 안 된다. 20대 국회의원은 현행 선거제도로 당선된 사람들이다. 자신을 당선시켜준 제도를 바꿀까? 바꾸지 않을 것이다. 구조적으로 선거법 개정은 어렵게 되어 있는 것이다. 기가 막히지만 현실이다. 그래서다. 개헌하려면 국회의원들이 물러서야 한다. 이원정부제에 미련을 버려야 한다. 현재로서는 대통령제를 유지하면서 대통령의 권한을 여러 곳으로 분산시키는 정도가 최선이다. 그게 국민의 뜻이다. 대통령 임기는 4년 중임이 좋을 것 같다. 국민이 그걸 원한다. 자유한국당은 임기 8년짜리 대통령 출현을 겁내는 것 같은데 공연한 걱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개정된 헌법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더불어민주당의 유력한 차기 주자였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사라졌다. 4년 중임 대통령제를 도입해도 자유한국당이 얼마든지 집권할 수 있다. 다이내믹 코리아다. 정리하면 이렇다. 시기가 문제가 아니다. 국회의원들이 이원정부제를 포기해야 개헌이 가능하다. 개헌이 안 되면 국회의원들이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부르는 현행 대통령제가 계속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손해가 없다. 국회의원들만 손해다. 어떻게 할 것인가.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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