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무한도전’이라는 건배사가 있다. ‘무조건 도와주자, 한없이 도와주자, 도와달라고 하기 전에 도와주자, 전화 안 해도 도와주자’라는 말이다. 청탁이 만연한 우리 사회를 상징하는 표현인데 끈끈한 연대를 강조하기엔 적절한 구호다. 문자로 급속히 대체되고 있지만 전화는 여전히 강력한 소통 수단이다. 이모티콘으로 묘사할 수 없는 감정과 진정성을 목소리로 전달할 수 있다. 전화를 하면 만나서 밥을 먹게 되고, 밥을 먹으면 상대를 이해하게 된다. 설득과 타협이 중요한 정치에서 전화와 식사가 중요한 것이 바로 그런 이유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야당 정치인에게 좀처럼 전화를 하지 않는다. 식사도 하지 않는다. 대통령 되기 전에는 그렇게 자주 전화하고 식사하던 사람도 대통령 되고 난 뒤에는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정치 지도자’에서 ‘국가 지도자’로 신분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한 정파의 대표에서 국가의 대표로 승격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이런 변화가 착각만은 아니다. 대부분의 야당 의원은 대통령과 직접 통화하는 중압감을 감당하기 어렵다. 자칫하면 사쿠라로 몰릴 위험도 있다. 반대로 못된 야당 의원이라면 대통령과의 통화를 정치적으로 악용할 수 있다. 그래서 대통령은 전화를 하지 않게 되고 대통령과 야당은 점점 더 멀어진다. 역대 대통령의 참모들은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참모들도 마찬가지였다. ‘큰영애님’과 ‘퍼스트레이디 대행’ 출신 대통령을 야당과 만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사례를 수집해 보고서를 작성했다. 오바마는 건강보험 개혁법안을 관철하기 위해 의원들을 백악관 집무실로 불러 설득했다. 지역구를 방문하는 의원 일정에 맞춰 대통령 전용기를 띄워 함께 출장도 갔다. 보고를 마친 이정현 정무수석이 콧노래를 부르며 돌아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4월12일 민주당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과 민주당 소속 국회 상임위원장단을 청와대로 초청해 만찬을 했다. 생일을 맞은 문희상 위원장을 위해 케이크를 마련하고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다. 4월16일에는 민주당 소속 상임위원회 간사단 17명을 초청해 만찬을 했다. 거기까지였다. 참모들은 야당과의 대화를 임기 내내 계속해야 한다고 봤다. 박근혜 대통령은 생각이 달랐다. 금세 “그래서 야당이 나를 도와준 것이 뭐냐”고 따졌던 것이다. 참모들의 건의대로 박근혜 대통령이 야당과의 대화를 이어갔다면 정권이 몰락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인관계가 ‘쿨’하다. 쓸데없이 너스레를 떠는 성격이 아니다. 국회의원 경력도 짧다. 그런데도 5월10일 대통령직에 취임하자마자 야당을 방문했다. 이 장면은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됐다. 6월12일 일자리 마련 추경예산안을 처리해달라고 국회에서 연설을 했다. 11월1일에도 2018년도 예산안을 설명하는 시정연설을 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문재인 정부를 비난하는 대형 펼침막을 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연설을 마치고 자유한국당 의석으로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펼침막을 붙잡고 있던 김도읍 의원은 얼떨결에 한 손을 내려 악수를 받았다. 못 본 척 외면한 사람은 있었지만 대통령의 손을 뿌리친 사람은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사람이다. 펼침막이 불쾌했을 것이다. 그래도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자유한국당에 비난이 쏟아졌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승리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9월18일 미국으로 출국하며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김동철 원내대표에게 전화를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 표결에 찬성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사흘 뒤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은 가결됐다. 대통령의 전화는 효력이 있다. 청와대 참모 중에는 “대통령이 전화하면 가결되기는 하는 것이냐”고 되물으며 야당과의 직접 소통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꼭 있다. 이렇게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는 사람들이 문제다.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며 보고를 제대로 하지 않는 참모들 때문에라도 대통령이 야당과 직접 대화해야 한다. 홍준표 대표가 별도 회담을 요구했다. 정략이 깔려 있을 것이다. 그래도 문재인 대통령이 적절한 기회에 받아들이면 좋겠다. 안철수 대표와도 만날 필요가 있다. 시간이 없으면 우선 전화라도 자주 해야 한다. 야당과 전화하고 만나면 무조건 대통령에게 이득이다. 정치팀 선임기자 shy99@hani.co.kr
칼럼 |
[성한용 칼럼] 대통령이 전화해야 하는 이유 |
선임기자 ‘무한도전’이라는 건배사가 있다. ‘무조건 도와주자, 한없이 도와주자, 도와달라고 하기 전에 도와주자, 전화 안 해도 도와주자’라는 말이다. 청탁이 만연한 우리 사회를 상징하는 표현인데 끈끈한 연대를 강조하기엔 적절한 구호다. 문자로 급속히 대체되고 있지만 전화는 여전히 강력한 소통 수단이다. 이모티콘으로 묘사할 수 없는 감정과 진정성을 목소리로 전달할 수 있다. 전화를 하면 만나서 밥을 먹게 되고, 밥을 먹으면 상대를 이해하게 된다. 설득과 타협이 중요한 정치에서 전화와 식사가 중요한 것이 바로 그런 이유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야당 정치인에게 좀처럼 전화를 하지 않는다. 식사도 하지 않는다. 대통령 되기 전에는 그렇게 자주 전화하고 식사하던 사람도 대통령 되고 난 뒤에는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정치 지도자’에서 ‘국가 지도자’로 신분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한 정파의 대표에서 국가의 대표로 승격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이런 변화가 착각만은 아니다. 대부분의 야당 의원은 대통령과 직접 통화하는 중압감을 감당하기 어렵다. 자칫하면 사쿠라로 몰릴 위험도 있다. 반대로 못된 야당 의원이라면 대통령과의 통화를 정치적으로 악용할 수 있다. 그래서 대통령은 전화를 하지 않게 되고 대통령과 야당은 점점 더 멀어진다. 역대 대통령의 참모들은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참모들도 마찬가지였다. ‘큰영애님’과 ‘퍼스트레이디 대행’ 출신 대통령을 야당과 만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사례를 수집해 보고서를 작성했다. 오바마는 건강보험 개혁법안을 관철하기 위해 의원들을 백악관 집무실로 불러 설득했다. 지역구를 방문하는 의원 일정에 맞춰 대통령 전용기를 띄워 함께 출장도 갔다. 보고를 마친 이정현 정무수석이 콧노래를 부르며 돌아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4월12일 민주당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과 민주당 소속 국회 상임위원장단을 청와대로 초청해 만찬을 했다. 생일을 맞은 문희상 위원장을 위해 케이크를 마련하고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다. 4월16일에는 민주당 소속 상임위원회 간사단 17명을 초청해 만찬을 했다. 거기까지였다. 참모들은 야당과의 대화를 임기 내내 계속해야 한다고 봤다. 박근혜 대통령은 생각이 달랐다. 금세 “그래서 야당이 나를 도와준 것이 뭐냐”고 따졌던 것이다. 참모들의 건의대로 박근혜 대통령이 야당과의 대화를 이어갔다면 정권이 몰락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인관계가 ‘쿨’하다. 쓸데없이 너스레를 떠는 성격이 아니다. 국회의원 경력도 짧다. 그런데도 5월10일 대통령직에 취임하자마자 야당을 방문했다. 이 장면은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됐다. 6월12일 일자리 마련 추경예산안을 처리해달라고 국회에서 연설을 했다. 11월1일에도 2018년도 예산안을 설명하는 시정연설을 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문재인 정부를 비난하는 대형 펼침막을 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연설을 마치고 자유한국당 의석으로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펼침막을 붙잡고 있던 김도읍 의원은 얼떨결에 한 손을 내려 악수를 받았다. 못 본 척 외면한 사람은 있었지만 대통령의 손을 뿌리친 사람은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사람이다. 펼침막이 불쾌했을 것이다. 그래도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자유한국당에 비난이 쏟아졌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승리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9월18일 미국으로 출국하며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김동철 원내대표에게 전화를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 표결에 찬성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사흘 뒤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은 가결됐다. 대통령의 전화는 효력이 있다. 청와대 참모 중에는 “대통령이 전화하면 가결되기는 하는 것이냐”고 되물으며 야당과의 직접 소통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꼭 있다. 이렇게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는 사람들이 문제다.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며 보고를 제대로 하지 않는 참모들 때문에라도 대통령이 야당과 직접 대화해야 한다. 홍준표 대표가 별도 회담을 요구했다. 정략이 깔려 있을 것이다. 그래도 문재인 대통령이 적절한 기회에 받아들이면 좋겠다. 안철수 대표와도 만날 필요가 있다. 시간이 없으면 우선 전화라도 자주 해야 한다. 야당과 전화하고 만나면 무조건 대통령에게 이득이다. 정치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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