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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9.18 16:55 수정 : 2017.09.18 19:36

성한용
선임기자

2008년 7월 일본 홋카이도 도야코 주요 8개국 정상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의 후쿠다 야스오 총리와 회담을 했다. 1주일 뒤 <요미우리신문>에 묘한 기사가 실렸다. 후쿠다 총리가 “중학교 사회과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다케시마(독도의 일본명)를 일본땅이라고 명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자, 이명박 대통령이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말은 “나중에 하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국내 여론이 발칵 뒤집혔다. 이명박 대통령은 출생지가 일본이다. 대선 과정에서 그의 이름이 일본식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청와대는 즉각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이동관 대변인은 “우리 내부를 분열시키고 독도 문제의 본질을 왜곡시키기 위한 일본 언론의 보도라면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건 그랬다. 이명박 대통령이 아무리 미워도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독도를 일본에 넘겨준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격앙된 여론은 곧 가라앉았다.

‘국민소송단’이 꾸려져 법원에 <요미우리신문>을 상대로 정정보도와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법원은 그러면서도 이명박 대통령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시간이 흘러 이명박 대통령이 사실은 그렇게 오해받을 수 있는 말을 했다는 외교문서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파장이 확산되지는 않았다. 대한민국 국민, 특히 시민사회와 진보 개혁 세력은 그 정도의 양식과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다.

보수 기득권 세력은 달랐다. 2012년 대선에서 새누리당의 김무성 총괄본부장은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서해 북방한계선(엔엘엘)을 포기하는 발언을 했다고 폭로했다. 대선 이후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이 터지자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다시 노무현 대통령 북방한계선 포기 발언으로 맞불을 놓았다. 심지어 국가정보원은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까지 공개했다. 정파적 이익을 위해 우리가 뽑은 대통령보다 북한의 말을 더 믿은 것이다.

소란은 2014년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이 “노무현 대통령이 엔엘엘 포기 발언을 하지 않았다”고 물러서면서 가라앉았다. 색깔론의 반사이익을 충분히 누린 뒤 뒤늦게 꼬리를 내린 셈이다.

보수 기득권 세력의 이런 행태는 지금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 앞에서는 가끔 노상 토크쇼가 열린다. 거리의 논객들은 문재인 대통령 탄핵과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을 외친다. 이런 펼침막이 걸려 있다.

‘헌법 유린, 안보 무능, 검찰·사법부 사조직화’ ‘적폐원조 정권, 언론 탄압, 불법 탈핵 정책’ ‘문재인 정권 탄핵합시다!’

지난 15일 대구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전술핵 배치 대구·경북 국민보고대회’에서 이재만 최고위원은 “문재인 대통령은 탄핵감”이라고 했다. 김문수 당협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의 기쁨조”라고 했다.

지난 9일 자유한국당은 장외투쟁을 하면서 “지금 대한민국은 문재인 정권의 ‘대북 평화 구걸 정책’과 ‘오락가락 외교 행보’로 결국 5천만 국민이 북한 김정은에게 핵 인질이 되어버린 역대 최대의 안보 위기에 봉착하였다”고 주장했다. 북핵 사태가 문재인 대통령 때문이라는 얘기다. 어이가 없다.

얄팍한 이득을 위해 외교·안보를 국내 정치에 끌어들이는 행위는 위험하기 그지없다. 국민을 분열시키기 때문이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대통령과 정부를 향한 공격에는 금도가 있어야 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남북관계가 악화하며 금강산 관광이 중단됐고 개성공단이 폐쇄됐고 사드 배치 결정이 내려졌다. 반대 여론이 들끓었지만 대통령과 정부의 결정은 뒤집을 수 없는 현실이 됐다. 외교·안보는 그런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 국제사회 공조를 통한 대북 제재를 가하면서도 대화의 문은 닫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외줄타기처럼 아슬아슬하다. 대북 강경론자들은 “너무 유약하다”고 비판하고, 대북 온건론자들은 “박근혜와 뭐가 다르냐”고 비판한다. 어느 쪽이든 너무 몰아붙이지 않으면 좋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18일 미국 뉴욕으로 떠났다. 며칠 동안 북핵 사태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 동분서주할 것이다. 유엔총회 연설에서 문재인식 해법을 제시할 것이다. 귀를 기울여야 한다. 밀어줘야 한다. 외교·안보이기 때문이다. 우리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정치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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