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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8.08 19:18 수정 : 2011.08.08 19:18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스톱워치는 무용지물이었다. 발언 시간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앞에서 누군가 말한 소재를 가지고 조금씩 다른 내용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 사람씩 카메라를 쳐다보고 말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서류를 뒤적이거나 가끔 옆 사람과 귓속말을 했다.

아침 9시에 시작한 공개회의는 대개 50분을 넘겼다. 휴가철이라 한두 사람이 빠졌는데도 회의시간은 줄지 않았다. 집단지도체제라지만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당 최고위원회는 이틀에 한 번씩 이렇게 사실상의 ‘집단 기자회견’을 한다. 회견 뒤에 열리는 비공개 회의에서는 대개 당무보고를 한다. 공개회의보다 훨씬 짧다. 토론은 별로 없다. 중요한 현안이 생기면 일요일 밤에 따로 최고위원 간담회를 연다.

제1 야당 민주당이 고장 났다. 4·27 재보선 뒤 한나라당과 맞먹었던 지지율은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야권통합이나 당 개혁도 지지부진하다.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의 실정에 의한 반사이익이 민주당이 유지되는 유일한 동력이다.

임채정 전 국회의장이 박순성 민주정책연구원장과 인터뷰를 했다.

“상황 대처 능력이 떨어지고 역사인식도 무뎌지고, 일부 방만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치열성이 좀 부족하다고 할까. (중략) 현 정국에 대한 안이한 생각은 민주당에 위기를 불러올 것입니다.”

당의 원로가 점잖게 표현한 게 이 정도다. 민주당에는 지금 중요한 몇 가지가 없다.

첫째, 손학규 대표의 리더십이 없다. 손 대표는 민주당의 대표다. 그런데 자꾸 겉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총재를 하던 시절 ‘사당화’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이번에는 반대로 대표가 당에 대해 관심이 너무 없다. 왜 그럴까? 측근들은 “시스템을 존중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리가 있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합리주의의 뒤에 숨겠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정당은 아직 사람이 끌고 가는 조직이다.

둘째, 손 대표 참모들에게는 전략이 없다. 당대표로서 국면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교한 계획이 있어야 하는데, 막연한 낙관론만 있다. 충성심도 좀 부족한 것 같다. 1992년 총선 당시 김대중 총재를 위해 의원직을 포기했던 조승형 비서실장 같은 인물을 손 대표 주변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셋째, 민주당 의원들에게는 정권교체의 열망이 없다. 의원들의 관심사는 대선이 아니라 총선이다. 의원직을 내놓고 여당을 하는 것과, 그냥 야당 의원을 계속하는 것 중에 선택하라면, 아마 거의 모두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야당 지지자들은 생각이 다르다. 공천개혁과 야권통합으로 총선에서 정치지형을 변화시키고, 그 힘으로 연말 대선에서의 권력교체를 희망하고 있다. 의원들과 지지자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넷째, 일부 중하위 당직자들도 열의가 없다. 믿기 어렵지만, 이런 말을 하는 당직자가 있다고 한다.

“대선에서 이겨봐야 청와대 갈 사람들은 정해져 있다. 총선에서 이기는 게 더 중요하다. 그래야 국고보조금이 늘어나고 월급이 오른다.”

이런 당직자들이 많다면 집권이 불가능하다.

다섯째, 민주당은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는 게 별로 없다. 야당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는 하지만, 정책을 끊임없이 내놓지 못하면 정당이 아니다. 한나라당이 훨씬 더 정부에 대해 공격적이고 과감한 정책을 잘 내놓는다. 임채정 전 의장도 “보다 과학적이고 공격적으로 공세를 펴야 한다”고 제안했다. 민주당의 한 고참 보좌관은 이런 말을 했다.

“맹자가 항산 항심을 설명할 때도 ‘다섯 이랑의 택지에 뽕나무를 심으면 쉰 살 된 자도 비단옷을 입을 수 있다’고 구체적으로 말했다.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만들어, 지금 당장 관철시킬 것은 관철시키고, 공약화할 것은 공약화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국민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야 하는데, 민주당은 그걸 못하고 있다. 도대체 뭘 하겠다는 정당인지 알아야 지지할 것 아니냐.”

당사자들은 이런 비판에 좀 억울할 수 있겠다. 어려움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제1 야당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는 크다. 각성을 촉구한다.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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