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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09 14:12 수정 : 2019.08.10 14:26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리얼돌 수입·판매 금지 청원글. 26만명이 넘는 서명을 받고 종료됐다. 국민청원 게시판 갈무리

“‘지인능욕’ 범죄 일어나는 강간문화 연속선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어”
“어떻게 마케팅하는지도 함께 봐야하는 것”
8일 ‘아동 리얼돌’ 제작·판매·소지 금지하는 ‘아청법’ 개정안 발의
미국·오스트레일리아 등도 아동 리얼돌 규제 추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리얼돌 수입·판매 금지 청원글. 26만명이 넘는 서명을 받고 종료됐다. 국민청원 게시판 갈무리

대법원이 지난 6월 ‘리얼돌’(신체를 본뜬 전신 실리콘 인형) 수입을 허가하는 판결을 한 뒤 논란이 사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연예인이나 지인의 얼굴을 본따 ‘커스터마이징’(맞춤형) 제작을 할 수 있다거나 키 100∼130센티미터(cm)대로 아동을 연상케 하는 ‘리얼돌’이 제작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더 커졌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리얼돌 수입 및 판매를 금지해주세요’란 청원글은 26만명이 넘는 동의를 얻어 청와대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관련 기사 :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리얼돌’ 수입허가 논쟁 “개인의 자유” VS “존엄성 훼손”)

‘리얼돌’을 성기구로 보고 “개인의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전제로 한다”는 2심 재판부의 판단처럼 일각에선 개인의 성적자기결정권 영역이기 때문에 이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국내 ‘리얼돌’ 판매업체를 운영하는 ㄱ씨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사용자의 편의성을 위해 작은 키의 인형을 제작, 판매하는 것 뿐이지 얼굴은 아동을 연상케하지 않는다. 또 커스터마이징 역시 비용 등의 문제로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며 “성욕은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성범죄 예방에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합법적인 영역 안에서 위생적인 부분이나 유통망에 대해 틀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라고 항변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답변으로 ‘리얼돌’을 ‘강간 인형’이라고까지 부르는 여성들의 분노를 가라앉히긴 어렵습니다. 대신 ‘리얼돌’ 그 자체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안에서 여성의 몸과 성이 어떤 방식으로 재현되거나 소비돼왔는지를 함께 보는 것이 핵심이라고, 여성들은 말합니다. 성, 즉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성별 권력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이해하는 것이 이러한 분노를 이해하는 출발점입니다.

■ 지인능욕 성범죄, ‘정액인증’글 올라오는 사회…‘강간 문화’부터 돌아봐야

“피규어나 여자 연예인의 등신대에 정액을 뿌리고 섹스를 하는 인증, 지인 사진을 포르노물에 합성하고 (사진에) 정액을 뿌리는 일, 불법촬영에 등장하는 인물을 ‘○○녀’로 칭하며 노는 것, 남대생들이 단톡방에서 여성을 성희롱하는 것 등이 남성 (중심) 사회에서 쓰이는 여성의 이미지입니다. ‘장학썬’(고 장자연 배우·김학의·클럽 버닝썬 사건)이나 웹하드 카르텔 사건은 여성을 (성적인) 매개로 하는 (남성들이) 노는 상황을 보여주고요. 성폭력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강간문화’가 존재하고 그 안에서 남성들의 연대가 공고하기 때문에 ‘리얼돌’ 역시 강간 문화의 연속선상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8일 저녁 서울 마포구 디지털미디어센터(DMC) 산학협력연구센터에서 열린 <‘리얼돌’ 집담회>에서 도미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리얼돌’에 대한 분노의 원인을 이렇게 짚었습니다. 실제로 지인이나 연예인의 얼굴을 음란물에 합성하는 일명 ‘지인능욕’ 범죄는 논란이 된 바 있습니다. (▶관련 기사 : “내 얼굴이 음란물에?”…신종 성범죄 ‘지인능욕’ 181건 접속차단) 실제 발생 여부는 확인이 어렵지만 여성 연예인을 거론하며 “전설의 정액 사건”이란 글이나 “피규어 정액 인증”과 같은 글이 일부 남초 커뮤니티에 올라오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리얼돌’을 향한 여성들의 목소리는 단순히 기분이 나쁘다는 감정 표출이 아니라 “여태껏 경험한 성차별, 성적 대상화, 성폭력의 경험들이 누적돼 나오는 분노”라는 겁니다. 도미 활동가는 특히 ‘리얼돌’이 “남성의 성욕은 자연스럽고 해소돼야 하는 것”으로 여기는 통념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가슴이 크고, 하얗고, 저항하지 않고 무엇을 해도 다 받아주는 물체로 굉장히 성애화된 (일종의) ‘그릇’으로서의 여성이 재현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성범죄 피해자’로서의 여성 이미지가 계속 재생산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리얼돌’이 있으면 성범죄가 줄어들 것”이란 주장에도 도미 활동가는 반박했습니다. “성폭력을 성욕 해소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기존 논리를 답습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폭력을 줄이기 위해서는 반성폭력 운동을 하면 된다”는 겁니다. 그는 “사회가 누구의 욕망을, 어떤 욕망을 승인해주는지”부터 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성인용품가게를 운영하는 강혜영 ‘피우다’ 대표는 ‘딜도’(남성의 성기를 본뜬 성인용품)와 ‘리얼돌’의 차이를 설명했습니다. “섹스토이는 결국 ‘물건’(object)이에요. 성적인 즐거움을 주는 도구가 꼭 발끝부터 얼굴까지 사람의 모습을 본딴 대체품일 필요는 없어요. 특히 ‘리얼돌’이 시장에 나오면 마치 ‘내가 알았던 누구와 닮은 인형’처럼 마케팅이 될 수밖에 없고, 이렇게 사람의 대체품으로 시장에서 유통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강 대표는 “사회적인 규율이 분명히 필요한 문제”라며 “수입뿐만 아니라 한국 공장에서 제작되는 리얼돌에 대해서도 규제 제도를 만드는 등 (사회적) 합의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 ‘아동 리얼돌’ 제작·판매·소지 금지…뒤늦게 제도공백 메우기 나선 정부

‘리얼돌’을 둘러싼 논의는 사실상 이제 시작입니다. 8일 정인화 민주평화당 의원은 영유아나 아동으로 명백하게 인식될 수 있는 아동 ‘리얼돌’의 제작·수입·판매와 소지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아동·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관세청은 최근 경찰청,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등 유관기관에 ‘리얼돌’ 수입에 대한 의견을 달라는 공문을 보냈습니다. 김성벽 여가부 청소년보호환경과 과장은 “현행법에 따라 성인용 성기구는 이미 청소년유해물건으로 지정되고 판매사이트는 청소년 유해사이트로 지정돼 있다”면서도 “엄밀하게 모니터링하고 국민 여론을 수렴하면서 판매 경로나 유통단계에 대해 고민해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아동 형상을 한 ‘리얼돌’ 문제에 대해선 제도적으로 어떻게 접근가능한지, 어떻게 대응해야하는지 계속 고민하면서 전문가들과 논의해나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국외에서도 ‘아동 리얼돌’에 대해선 규제에 나서고 있습니다. 영국에선 아동 리얼돌을 유통하거나 구매할 때 최대 12개월 이하 징역에 처합니다. 캐나다와 노르웨이에서도 아동 리얼돌의 소지, 구매가 금지돼 있습니다. 미국 하원은 지난해 아동형상의 리얼돌과 섹스로봇을 금지하는 ‘크리퍼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아동과 성인 간 성관계를 마치 정상적인 것처럼 여기게 할 수 있다는 이유입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지난 2월 아동 리얼돌의 수입과 구매를 금지하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형사정책연구원은 “아동 리얼돌은 아동 성범죄를 확산할 가능성이 있고 아동에 대한 성폭력에 대해 둔감하게 만들 수 있다. (성인이) 아이들과 성관계를 맺기 위해 ‘그루밍’(길들이기)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도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리얼돌’에 대한 논의는 인공지능(AI)이 탑재된 ‘섹스로봇’ 문제와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성의 성적 대상화나 인격권 침해는 물론이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나 욕망, 감정을 물건으로 치환한다는 점에서죠. 이미 국외에선 ‘록시’, ‘하모니’, ‘사만다’ 등 다양한 섹스로봇이 출시돼 있고, 이에 대한 찬반 논의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땜질식 처방이 아닌 신중한 사회적 논의가 선행돼야 하는 이유입니다. 로봇과 인공지능(AI)에 대한 윤리와 문화를 연구해 온 영국의 캐슬린 리차드슨 드몽포르 대학교 교수는 ‘섹스로봇’ 상용화에 대해 이렇게 경고합니다. “새로운 기술의 발전과 보급이 (오히려) 섹스 산업계에 기여해왔”기 때문에 “‘섹스로봇’의 상용화가 성매매의 대안이 될 수도 없고 윤리적으로 정당하거나 안전하지도 않다”고 말입니다.

“매춘은 평범한 활동이 아니며 사람을 사물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에 의존하기 때문에 성매매(섹스) 로봇과 성매매는 이러한 점에서 유사점을 갖고, 성매매를 옹호하는 사람들에게서 종종 발견될 수 있는 관점입니다. 여기서 여성은 비인간화되고 비인간적인 인공물로 재구성됩니다. 성행위 역시 인격체와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럴 수 있다면, 그것은 돈으로 살 수 있는 도구에 가깝습니다. 인간은 사랑, 그리고 성행위에 있어서 도구가 될 수 없습니다.”

*참고: <섹스로봇 상용화가 갖는 윤리적 문제와 윤리적 정당성 확보에 대하여> (김태경, 철학논총 제95집)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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