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2.13 14:35 수정 : 2019.02.13 14:57

간호사들의 파업에 연대하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독일 매체 ‘NRZ’의 기사. ‘NRZ’ 누리집 갈무리

[뉴스AS] 외국선 정말 도서관과 연구시설 파업 없을까
서울대 시설관리 노동자 파업으로 촉발된 ‘파업권’vs‘학습권’ 논쟁
서울대 교수 “세계 어디에 도서관 난방 끄고 임금 투쟁하는 나라 있나”
외국 사례 살펴보니, 도서관 완전 폐쇄에 학생들 파업 지지 선언도

간호사들의 파업에 연대하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독일 매체 ‘NRZ’의 기사. ‘NRZ’ 누리집 갈무리
서울대 시설관리직 노동자들의 파업은 닷새 만인 12일 교섭 합의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노동조합의 ‘파업권’과 학생들의 ‘학습권’을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꺼지지 않은 불씨로 남았다.

논란은 민주노총 서울대 일반노조 기계전기분회 소속 노동자들이 파업과 동시에 도서관과 연구실 난방을 끊으면서 발생했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지난 8일 “노조의 정당한 파업권을 존중한다”면서도 “일반노조에 도서관을 파업 대상 시설에서 제외해 줄 것을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노동자들의 파업은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사실상 파업권 침해”라는 의견과 “도서관·연구실 난방을 끊은 것은 너무하다”며 “학생들의 학습권은 보호돼야 한다”는 입장이 맞섰다.

이 논쟁에 불을 붙인 건 서울대 중앙도서관장을 맡고 있는 서이종 교수(사회학)의 기고다. 서 교수는 11일치 <조선일보>에 ‘도서관 난방 중단…응급실 폐쇄와 무엇이 다른가’라는 글을 기고했다. 서 교수는 글에서 “학생들의 공부와 연구를 볼모로 임금 투쟁하는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며 “세계 어느 나라에서 그 나라의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의 핵심 시설인 도서관과 연구실의 난방을 끄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임금 투쟁하는 나라가 있는지”라고 적었다.

_________
“학생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교직원 파업이 있나요”

정말 다른 나라에는 이런 사례가 없을까? 국외에서도 대학 노동자들이 파업을 한 경우가 여럿 있었다. 하지만 학생들이 난방 등을 거론하며 학습권을 거론한 사례는 찾지 못했다. ‘독일에 혹시 유사 사례가 있느냐’는 질문에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는 윤아무개(29)씨는 “아마 독일에서는 (도서관 등의) 난방이 논란이 된다는 사실 자체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며 “독일에선 대중교통 파업으로 아예 학교에 못 가는 일이 생겨도 불평하는 사람은 없다. 학생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교직원 파업이 있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독일에선 지난해 5월 교직원 파업으로 도서관이 아예 폐쇄된 일이 있었다. 독일의 훔볼트 대학에서 지난해 5월24일부터 근로장학생들과 대학 노동자들이 공동으로 파업을 벌였고, 이들은 주말 저녁시간 도서관을 폐쇄했다. 17년 동안 임금 인상이 없었고, 크리스마스 보너스가 삭감됐다는 게 파업의 이유였다.

베를린 교원노조도 최근 유치원과 학교 폐쇄를 예고하는 파업을 통보했다. 지난 9일 베를린 교원노조는 “유치원과 학교가 완전히 폐쇄될 것”이라며 파업이 도서관과 대학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파업 예고 이유는 임금 6% 인상안을 받아들이라는 것이었다. 하노버에서도 지난해 4월 벌어진 서비스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우리나라의 ‘수능시험’ 격인 졸업 시험이 연기되기도 했다. 도서관·학교·병원도 이용이 제한됐다. 이들의 요구 또한 임금 6% 인상이었다.

프랑스에서도 도서관 폐쇄 사례가 있다. 프랑스 최대노총인 노동총동맹(CGT)은 지난달 26일 프랑스 최고 고등교육기관인 그랑제콜(Grandes ?coles)로 알려진 ‘에꼴 노르말 쉬페리외 리옹’(?cole normale sup?rieure de Lyon)에서 도서관 노동자들이 파업하며 도서관을 폐쇄했다고 전했다. 노동총동맹은 이곳에서도 교원자격시험을 준비하는 일부 학생들의 불만이 나왔지만, 지금은 학생들과 노동조합 간의 연대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들 또한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했다.

대학본부가 학생들에게 파업으로 인한 도서관 이용 제한 등을 미리 공지한 사례들도 있었다. 지난해 2월27일 핀란드 헬싱키 대학교는 누리집을 통해 같은 달 28일부터 파업으로 인해 모든 수업이 중단되고 국립도서관과 헬싱키 대학교 도서관이 문을 닫을 것이라고 미리 알렸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도 지난해 2월19일 학교 누리집에 올린 글에서 강사, 연구원, 도서관 사서 등이 속한 대학연맹(UCU)이 파업을 한다며, 파업 예상기간, 파업 참여 인원, 강의와 시험에 미칠 영향, 도서관에 미칠 영향 등을 미리 알렸다.

_________
학부모와 학생들, 교사 파업 지지 선언도

파업으로 불편을 겪어야 하는 이들이 오히려 파업을 지지하고 나선 사례도 있었다. 지난해 2월22일부터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주에서는 680개 공립학교가 휴교했다. 주 전체 55개 카운티에 속한 모든 학군에서 교사들이 파업을 벌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임금 인상’과 ‘의료보험 인상의 부담을 노동자에게 돌리지 말 것’ 등을 요구했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교사의 노동조건이 곧 학생들의 교육 환경’이라며 이들의 파업에 지지를 보냈다.

독일에선 지난해 뒤셀도르프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들이 파업했다. 이들은 열악한 근무환경 개선과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 파업은 52일간 지속됐고, 수술 3000여건이 취소·연기됐다. 하지만 환자들은 오히려 이들의 파업을 지지했다. 이들은 “간병인들이 너무 시간에 쫓기고 바빠 붕대도 제대로 못 갈아준다”며 병원이 이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노동조건 개선이 곧 자신들에게 의료서비스 개선으로 돌아온다는 얘기였다. 환자들은 파업을 지지하는 서명운동까지 벌였다.

대학 사례도 있다. 2017년 영국 킹스칼리지 대학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이혜민(23)씨는 “당시 청소 노동자들이 파업으로 출근을 안 해 모든 관리 업무가 중단됐지만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파업 기간 학교 내에 쓰레기 버리지 않기 등의 캠페인을 벌였다”며 “수업 시간 전에는 교수님이 학생들이 제작한 영상을 틀어줬는데, 청소 노동자들의 파업 이유와 이에 동참하자는 격려가 담긴 영상이었다”고 회상했다.

킹스칼리지 대학 학생들이 제작한 영상. 청소 노동자들의 파업 이유를 설명하고 동참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튜브 갈무리
사실 이런 모습은 한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2011년 홍익대 청소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시작된 청소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결성과 파업 과정에 학생들이 참여한 것이 대표적이다. 최정선 공공운수노조 아주대시설분회장은 “당시 학생들 덕분에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최 분회장은 “결국 대학 노동자들도 학생들이 있기에 존재할 수 있고, 학생들도 대학 노동자들의 노동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며 “학생들이 그런 점을 이해해주고, 유대관계를 쌓으며 우리와 함께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서울대 총학생회의 첫 입장문에 대해 “정중한 말씨이지만 결국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침해하는 내용”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던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는 노동권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 교수는 “서울대 총학생회가 입장을 바꾼 게 중요하다고 본다”며 “학생들이 이런 상황을 접할 기회가 없어 몰랐을 뿐, 그 뒤 치열한 토론으로 문제 해결의 올바른 방법을 깨달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도서관을 파업 대상에서 제외해줄 것을 요청하겠다”고 밝혔다가 노동자들의 처지를 외면한다고 비판받던 서울대 총학생회는 단과대 학생회장 운영위원회 밤샘 회의 끝에 노조와 연대하기로 사흘 만에 입장을 바꿨다. 하 교수는 “프랑스나 독일처럼 어릴 때부터 노동교육을 받는 곳에선 다른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치면서까지 노동자들이 파업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며 “우리나라에서도 노동권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광고

관련정보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뉴스AS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