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2.06 14:04
수정 : 2018.12.06 16:20
|
서울대 수의대 교수 성폭력 사건 #위드유 연대가 지난 5월 서울대 생명공학연구동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폭력 가해 교수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
[뉴스AS]
2011년~2013년 학생들 상습 성추행 서울대 황아무개 교수
수의대 쪽 “과거에 일단락된 일” 황 교수 “드릴 말씀 없다”
|
서울대 수의대 교수 성폭력 사건 #위드유 연대가 지난 5월 서울대 생명공학연구동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폭력 가해 교수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
“서울대학교 수의대의 황아무개 교수의 별명은 ‘황허벅지’였습니다.”
지난 5월31일, ‘서울대 수의대 ㅎ교수 성폭력 사건 #위드유 연대’(이하 수의대 연대)가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수의대 연대는 이날 2011년부터 2013년까지 학생들을 상대로 허벅지를 만지는 등 상습적인 성추행을 저질러온 서울대학교 수의대의 황아무개 교수에 대한 학교의 징계와 황 교수의 사과를 요구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난 이달 4일, 수의대 연대는 다시 성명서를 냈다. “황 교수는 (첫 공론화 이후 지금까지) 이 사건에 대하여 어떠한 징계도 받은 사실이 없으며, 사건에 대해 책임을 지려는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황 교수의 상습적인 성추행 사실이 학내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은 처음 알려진 건 지난 4월이었다. 8개월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학교 쪽은 징계시효가 지났다며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황 교수는 사과를 하겠다며 수의대 연대 쪽과 접촉했지만 사건이 잠잠해지자 차일피일 사과를 미뤘다. 학생들이 다시 황 교수의 ‘자진 사퇴’를 요구하고 나선 이유다.
■ 고발 이후 ‘가해자·피해자 분리’조차 하지 않은 학교
황 교수의 상습적인 성추행 사실은 처음 알려진 건 지난 4월11일. 학내 언론 <서울대 저널>은 ‘모 교수를 제보합니다’라는 제목으로 황 교수의 과거 성추행 가해를 고발하는 기사를 보도했다.
당시 보도 내용과 수의대 연대의 성명 등을 보면, 2011년부터 2013년 사이에 황 교수는 학생들의 볼에 입을 맞추거나 허벅지를 만지는 등 상습적인 성추행을 일삼았다. 동아리 지도교수였던 황 교수가 동아리 회식 도중 한 학부 학생의 허벅지와 어깨를 만져 이 학생이 선배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도 있었다. 황 교수의 성추행이 상습적이고 광범위했기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서 황 교수는 ‘황허벅지’로 불렸다. “황 교수 옆에는 남자 학생을 앉히라”는 학생들의 ‘대응 매뉴얼’이 있을 정도였다.
사실 학생들의 첫 문제 제기는 거슬러 올라가면, 5년 전을 살펴봐야 한다. 상습적인 성추행을 견디다 못한 학생들이 2013년 학생회를 통해 피해 사실을 수집해 학장단에 제출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도 학교 쪽의 대응은 소극적이었다. 학교 쪽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분리’라는 기본적인 원칙도 지키지 않았다. 학교는 황 교수를 동아리 지도교수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을 뿐 사건에 대해 조사하거나 징계 절차를 밟지 않았다. 다수의 피해 학생들이 문제 제기 뒤에도 실습이 포함돼 점심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황 교수의 수업을 일주일에 한 번씩 들어야 했다. 수의대 연대는 “황 교수가 받은 징계는 구두 경고와 지도교수 교체뿐이라 피해 학생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분노와 불안감 속에서 황 교수의 수업을 들어야만 했다”고 설명했다. 그런 시간들이 5년 이어졌다.
■공론화 8개월…‘징계 접수’조차 하지 않은 서울대
올 초 미투 고발 열풍이 일면서 <서울대 저널>에서 이 문제를 다시 보도했다. 이후 학내에서는 학교 쪽의 대응을 문제 삼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수의대 학생회는 ’수의대 연대’를 꾸려 학교 쪽에 황 교수에 대한 징계와 사과를 요구했다. 5월에 열린 기자회견은 2013년 최초의 성추행 문제가 있었던 뒤 5년이 넘도록 이어져 온 학교 쪽의 방조와 방임에 각성을 촉구하는 자리였다. 기자회견에서 학생들은 “최초 문제 제기 뒤에도 당시 학장단이 ‘수의대 일은 수의대 내부에서 해결해야 한다’며 공론화를 막고, 은폐하기 급급했다”며 “피해자의 용기에도 교수들이 침묵했기에 학생들이 바꾸려 나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원대·건국대·경북대 등 전국 10개 대학 수의학과 학생 1089명도 연서명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수의대 학장단은 황 교수 성폭력 사건을 ‘이미 서로 마무리된 사안’’이라며 사안 해결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우희종 수의대 학장은 <서울대 저널> 보도 뒤 자신의 에스엔에스(SNS)에 “간혹 갑질의 횡포로 억압된 것이 아니라, 이미 서로 마무리된 사안에서 굳이 들추어내어 미투에 편승하여 재차 돌 던지는 행태도 보여 조심스럽다”는 글을 올렸다. 학장단은 수의대 연대와 함께 열기로 했던 간담회를 일방적으로 두 차례 취소하기도 했다.
수의대는 황 교수에 대한 징계시효가 지났다며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 않는 상태다. 우희종 수의대 학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징계 시효가 지났다고 판단해 징계절차를 밟고 있지 않다”며 “(가해자·피해자 분리 조처를 하지 않은) 2013년의 대응에는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대 수의대 쪽은 “학생들이 징계 요구를 공식적인 서류로 접수하지 않아 학교 본부에 징계를 접수하지 않았다”며 “해당 교수가 내부 구성원에게 충분히 사과했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밝혔다. 교원 징계를 담당하는 서울대 교무과는 “징계 요청이 들어오지 않아 징계를 하지 못했다”는 원론적인 입장만을 밝혔다.
황 교수의 사과도 흐지부지됐다. 지난 9월 황 교수와 수의대 연대 쪽이 만나 사과문에 대한 논의하는 자리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수의대 연대 쪽은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사과문 낭독을 요구했지만, 황 교수는 개인정보 유출 위험을 이유로 수의대 대표 앞에서만 사과문을 낭독하겠다는 입장을 고집했다고 한다. 논의가 교착상태에 빠지자 황 교수는 ‘최대한 빠르게 답을 주겠다’고 했지만, 석 달이 흐른 지금까지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고 있다.
황 교수는 현재 별다른 징계 없이 수업에서 배제된 상태다. 수의대 쪽은 “언제까지 수업을 하지 않을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며 지금의 수업 중단이 한시적인 조처라는 입장을 밝혔다.
|
지난 4일 수의대 연대가 발표한 입장문. 수의대 연대 제공
|
■다시 성명 낸 수의대 연대 “황 교수 자진 사퇴해야”
수의대 연대는 지난 4일 공개한 대자보에서 “황 교수는 이 사건에 대해 어떠한 징계도 받은 사실이 없으며 사건에 대해 책임을 지려는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며 “황 교수는 (수의대 연대와 사과문 논의를 위해 만난) 9월6일 이후 2달 이상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는 핑계를 들며 사과문 공개에 대한 답변을 미루고 있다“고 밝혔다.
수의대 연대는 “시효가 지나 징계가 어렵다면 황 교수가 자진사퇴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수의대 연대는 “가해 교수의 진실한 사과문과 사과문의 투명한 공개 및 자진 사퇴를 요구한다”며 “학생회 임기 종료 뒤에도 황 교수에 대한 사퇴 요구를 멈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어 “황 교수 사건은 과거의 일로만 남아서는 안 되며, 현재진행형의 일, 또한 미래의 일로 생각되어야 한다. 이것은 남의 일이 아니다. 이것은 친구의 일이고 선배와 후배의 일이며 동시에 우리의 일이기도 하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황 교수는 6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며 해명에 응하지 않았다. 수의대 관계자는 “내부적으로는 과거에 일단락된 일이라 판단 중”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전광준 임재우 기자
light@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