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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시민단체들이 11월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군 성폭력 사건에 대한 고등군사법원의 무죄판결을 규탄하며 “국가는 군대 내 성폭력과 혐오범죄를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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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AS] ‘해군 성폭력’ 사건, 2심 판결문 분석
피고인-피해자 권력관계 고려않고 피고인쪽 증언만 채택
피해자 진술은 “허위로 보이지 않는다”면서도 배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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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시민단체들이 11월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군 성폭력 사건에 대한 고등군사법원의 무죄판결을 규탄하며 “국가는 군대 내 성폭력과 혐오범죄를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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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해군본부 고등군사법원 특별부(재판장 홍창식)는 부하를 추행, 강간한 혐의로 1심에서 각각 징역 10년(ㄱ소령)과 8년(ㄴ대령)을 선고받은 두 간부에게 원심을 뒤집고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논란이 일었다.
‘부하 여군을 강간한 두명의 해군 간부를 처벌해주십시오’란 청와대 국민청원은 4일 기준 20만명이 넘는 서명을 받았고, 시민단체는 “명백한 오판”이라고 규탄했다. (
▶관련 기사: “성폭력 해군간부 ‘무죄’ 선고한 군사법원, 존재 이유 포기”)
‘해군 성폭력’ 사건의 2심 판결은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을 일방적으로 배척한 점 △증거없이 주변인 증언만을 토대로 피고인의 진술을 채택한 점 △‘위계적인 권력관계’란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점 등에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1심 판결과도 닮아있다. 안 전 지사의 1심이 위력의 존재와 행사 여부를 분리해 위력의 해석범위를 축소시켰다면, 이 사건은 강간죄에 명시된 폭행이나 협박을 좁은 의미로 해석해 무죄를 선고했다. 판결문을 통해 해군 성폭력 사건 2심에 제기되는 의문점을 짚어본다.
■ 강간죄의 ‘폭행, 협박’을 가장 좁은 의미로 해석했다
“피해자는 매번 성관계를 시작할 때 피고인이 한쪽 손으로 피해자의 손을 머리 위로 올라가도록 눌러 자유스럽지 못하게 하거나, 자신의 양 손목을 누른다든지, 피고인의 양손으로 피해자의 양쪽 앞을 누른다든지 해서, 피고인의 체중으로 인해 벗어나기 어려웠고, 그 팔을 눌렀을 때의 공포감으로 그 이후 성관계를 거부할 수 없었다고 진술하는 바, 피해자는 비록 그 자체로 공포감을 느끼게 되어 그 후로 아무런 거부를 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객관적으로 상대방의 몸을 누르거나 팔을 잡는 행위는 성관계를 시작하면서 수반되는 일반적인 동작이어서 위와 같은 행위가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강간의 수단인 폭행이 인정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ㄱ소령에 대한 2심 판결문
“피해자는 ‘잡은 힘의 강도보다는 정신적 충격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였다’, ‘처음에 눌려지지 않고, 심리적인 이유로 권력이라든지 제일 높으신 사람이니까 저항을 못했다’, ‘총체적으로 내가 무력했다’, 결국 ‘간음행위가 멈출 때까지 가만히 누워있었다’고 진술하므로,
아무런 저항없이 누워있는 피해자의 팔을 피고인이 강한 압박으로 눌렀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고, 달리 팔을 잡는 것 이외에 피고인에 의한 어떠한 실력행사도 없었음이 인정된다.”
“(피해자와 피고인의)
권력관계로 인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피고인에 대한 저항을 처음부터 곤란하게할 만한 사정이 인정된다고 볼 여지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은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위력’에 해당할 수 있을 것이지, 그러한
권력관계 자체를 강간죄의 수단인 협박으로 포섭할 수는 없다.”
-ㄴ대령에 대한 2심 판결문
피해자는 1, 2차 가해 과정에서 모두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다는 걸 일관되게 진술했다. ‘상명하복’이 규율로 작용하는 군대 안에서 “술자리 등을 싫어하는 내색을 하면 업무할 때 분위기가 고압적으로 되는 부분이 있”는 등 “피고인(ㄱ소령)이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어떠한 불이익이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군 고등법원은 두 피고인으로부터 모두 물리적인 폭행이나 명시적인 협박이 존재했는지 여부만 따져묻고, 이런 강제력이 없었다는 이유로 죄를 입증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차혜령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이에 대해 “강제추행죄에서 ‘폭행’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의 행사가 있는 이상 힘의 대소강약을 불문한다는 것이 확립된 판례”라고 지적했다. 또 강간죄 공소사실에 기재된 ‘양 손목을 누르는 행위’ 등은 “이미 다른 사건에서 강간죄의 수단인 폭행 또는 협박에 해당한다고 판시된 행위”라고 짚었다.
재판부가 ‘위력간음죄’를 거론한 점에 대해서도 차 변호사는 “현재까지 대법원이 강간죄에 관해 정립한 법리를 충실히 적용하지도 않고, 독자적이고 비상식적인 판단기준을 들어 무죄로 판단하고 공소사실의 적용법조를 탓하는 뉘앙스를 남긴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 피해자가 사력을 다해 저항하지 않았음을 따졌다
“피해자는 ‘폭행이나 협박조차도 필요하지 않았을 만큼 무기력한 상태였으며, 그런 무기력한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거부했을 때 오는 조금 더 강화된 고압적인 업무태도들을 견뎌야 한다는 것들로 저항하지 못하고, 계속 반복되었다’고 진술하였다.
결국, 피해자는 매 순간이 업무적인 영향을 받게 될 것이 두려웠다는 이유로 어떠한 강제추행의 점에서도 실제로 거부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ㄱ소령에 대한 2심 판결문
“당심 법정에서는 당시 간음행위에 관한 상황을 직접 재현하면서도 키스할 때 자신의 팔을 잡았던 사실 이외에는 자신은 누운 채로 그냥 피고인의 범행을 지켜보고 있었다며
달리 구체적으로 피해자의 저항을 표현하지 않는바, 다른 폭행 내지 협박행위는 없었던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
-ㄴ대령에 대한 2심 판결문
2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음을 근거로 폭행이나 협박이 없었다고 판단했다. 이는 강간죄의 ‘폭행이나 협박’을 가장 좁은 의미로 해석하는 이른바 ‘최협의설’에 입각한 기준으로 성폭력 관련 특별법이 만들어질 때부터 제기돼온 문제다.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는 지난 7월 안희정 전 지사의 1심 재판부에 전달한 의견서에서 “최협의설에 입각한 판결은 결국 피해자에게 신체적 훼손을 감수하고 정조를 지키라는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한다”며 “피해자의 부동의를 강간죄의 구성요건으로 보아야 하며, 부동의 여부에 대해 판단할 때는 당사자 간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지위의 차이로 인해 피해자가 처해있는 위치를 고려해야만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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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시민단체들이 11월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군 성폭력 사건에 대한 고등군사법원의 무죄판결을 규탄하며 “국가는 군대 내 성폭력과 혐오범죄를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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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고인과 피해자가 ‘상하관계’란 맥락은 삭제됐다
“피고인은 이러한 피해자의 태도에서
오히려 피해자가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하므로, 피고인에게 ‘피해자에 대하여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하여 추행행위를 한다’는 강제추행의 범의(범죄 행위임을 알고서도 그 행위를 하려는 의사)가 있었다고도 추단하기 어렵다.”
“피고인과 피해자는 같은 함정 내, 같은 부서에서 4개월 정도 함께 근무한 장교들로서, 성인 남녀이고, 피해자는 일관되게
단 한 번도 명시적으로 거부의사를 밝히거나 자리를 회피하지 않았다.”
-ㄱ소령에 대한 2심 판결문
“남성인 피고인이 저녁에 독신숙소로 불렀을 때 여성인 피해자가 응하였다면, 비록 피해자가 기억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당시
피해자로서는 큰 경계심 없이 피고인을 찾아갈 만한 사정이 있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된다.”
-ㄴ대령에 대한 2심 판결문
사건 당시 피해자는 막 임관한 소위였다. ㄱ소령은 직속상관이고, ㄴ대령은 함정의 최고책임자인 함장이었다. 2심 재판부는 이러한 권력관계 대신 “호감인 줄 알았다”는 ㄱ소령, “묵시적 합의가 있었다”는 ㄴ대령의 진술만 채택했다. 피해자가 왜 추행 당시 곧바로 거부의사를 표시하지 못했는지, 상사가 저녁에 숙소로 불러도 왜 응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맥락은 사라졌다.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여성주의상담팀장은 지난달 26일 기자회견에서 “(피해자와 ㄱ소령이) 서로 성적 호감을 가진 사이라는 것을 증명할 증거는 재판과정에서 아무 것도 제출되지 않았다”며 “증거조차 없는 가해자의 주장을 재판부는 최측근인 가해자의 부인과 공범인 두번째 가해자 ㄴ대령의 진술만을 근거로 채택하고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했다”고 비판했다.
또 “ㄴ대령은 ‘묵시적 합의’에 의해 가슴을 만지고 키스를 한 적은 있지만 성폭력을 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며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군대조직 문화에서 초급장교와 대령 간에 묵시적 합의라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라고 반문했다.
■ 구체적이고 일관된 피해자의 진술을 일방적으로 배척했다
2심 재판부는 ㄱ소령, ㄴ대령 혐의에 대한 재판에서 각각 “피해자가 의도적으로 허위의 사실을 진술하고 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피해자가 이 사건 공소사실에 관하여 일관되게 진술해왔다. 이는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진술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판시하면서도 “전적으로 피해자의 기억을 신뢰하기 어렵다”며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일방적으로 배척했다.
이런 판단은 최근의 대법원 판례와도 매우 다르다. 대법원은 2008년 “(피해자) 진술이 주요 부분에 있어서 일관성이 있는 경우에는 그 밖의 사소한 사항에 관한 진술에 다소 일관성이 없다는 등의 사정만으로는 그 진술의 신빙성을 함부로 부정할것은 아니”라고 선고한 바 있다. 지난 10월에는 성폭행 피해자가 처한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그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할 수 없다고 선고했다.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으므로, 개별적, 구체적인 사건에서 성폭행 등의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 (대법원 2018.10.25 선고)
■ 사법부에도 ‘성범죄 재판’ 매뉴얼이 필요하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재판부의 시각이 일반 시민들과 매우 동떨어져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김 부소장은 “최근 대법원 판례는 피해자 진술이 유일한 증거일 때 피고인의 진술에 모순이 있는지 대조해볼 필요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안희정 1심이나 이번 해군 성폭력 2심에서 법원은 모두 피고인의 진술을 교차 검증해 합리성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물증이 없는 피고 주변인들의 증언만 근거로 삼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왜 가해자의 말을 다 수용하면서 피해자의 말은 이해 못하는지, 내가 피해자가 됐을 때 재판부가 과연 공정하게 봐줄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생기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다른 범죄 피해자와는 다른 반응을 보이는 걸 판사들이 알아야 하고, 이런 내용을 담은 교육과정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몇몇 개별 사건에서 법원이 피해자의 말을 경청하고 ‘2차 가해’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움직임이 보임에도, 여전히 가해자가 “억울하다”거나 “사귀는 사이였다”고 주장을 하면 판결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금 의원은 “성폭력 사건의 특징이 무엇인지, 피해자가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에 대해 다양한 사례 연구를 해서 적용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고도 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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