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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8.06 11:34 수정 : 2018.08.06 22:14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2015년 1월15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5년 정부업무보고경제혁신 3개년 계획Ⅱ 회의에서 김기춘 비서실장이 대통령의 모두 발언을 듣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기소 1년6개월만에 석방된 김기춘
블랙리스트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한 날
대법원, 김 전 비서실장 구속 취소 결정

신체의 자유·무죄추정 원칙 지키려
형사소송법 구속기간 제한 둬
별도 사건 구속영장 발부 않으면
1심·2심·3심 각 6개월만 구속 가능

김종덕·김상률도 지난달 말 석방
2심서 구속된 조윤선은 9월까지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2015년 1월15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5년 정부업무보고경제혁신 3개년 계획Ⅱ 회의에서 김기춘 비서실장이 대통령의 모두 발언을 듣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김기춘(79)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6일 자정 구속기간이 끝나 석방됐다. 지난해 1월21일 구속된 지 562일 만이다. 여론은 좋지 않다. 이날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를 나선 김 전 비서실장은 자신의 석방을 반대하는 시민들과 마주했다. 이들은 “김기춘 석방 절대 안 돼”라는 구호 등을 외치며 김 전 비서실장을 막아섰다. 김 전 비서실장은 가까스로 자동차에 탔지만 차까지 막아선 시민들에 막혀 40여분을 갇혀있어야 했고, 앞 유리창이 깨지기도 했다. 그는 구치소를 떠날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지난 7월27일 김 전 비서실장의 구속취소를 결정했다. 이날 블랙리스트 사건이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합의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되면서, 상고심 심리가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구속재판 기간 6개월을 넘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형사소송법 제92조는 구속기간을 2개월로 하되, 심급마다 2개월 단위로 2차에 한하여 갱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2심과 3심을 의미하는 상소심에서는 3차에 한해 갱신이 가능하다. 즉 구속기소된 경우를 기준으로 1심 2개월+4개월(2번 갱신), 2심 6개월(3번 갱신), 3심 6개월(3번 갱신)까지만 구속 재판이 가능하며, 별도의 구속영장이 발부되지 않는 한 불구속 재판을 해야 한다.

구속재판 기간에 맞춰 하급심 재판도 진행됐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지난해 2월7일 김 전 비서실장을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을 지시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으로 재판에 넘겼다. 구속 기간은 구속된 날을 포함해 계산하기 때문에, 1심 구속 재판 기간은 6개월 뒤인 지난해 8월6일이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재판장 황병헌)는 지난해 7월27일 김 전 비서실장이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범행을 가장 정점에서 지시하고 실행 계획을 승인했으며 때로는 이를 독려했다”며 징역 3년을 선고했다.

항소심인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조영철)도 구속 기한 6개월을 앞둔 지난 1월23일, 블랙리스트에다 1심이 무죄로 판단한 문체부 공무원 사직 강요 혐의까지 인정해 김 전 비서실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양형 이유로 “헌법을 수호해야 할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서 정부를 비판하거나 반대하는 문화예술계 개인·단체에 대한 지원 배제를 위하여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막대한 권한을 남용했다”고 밝혔다. 대법원 구속 재판 기간도 6개월인데, 이에 따르면 김 전 비서실장의 구속 재판 기한은 8월6일이었다. 6개월이 지나서도 선고하지 못하면 구속된 피고인을 잡아 둘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김 전 비서실장은 석방된 것이다. 한 판사는 “국정농단 사건 피고인 대부분에 적용된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는 판례가 많지 않아 대법원에서 정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또 블랙리스트 공모 혐의를 받는 박 전 대통령 사건이 상고되면 대법원에서 통일적으로 판단해야 해 재판 기간이 길어진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구속 재판 기간을 제한하는 규정은 1954년 형사소송법이 제정될 때부터 있었다. 당시에는 “구속기간은 2월로 한다. 특히 계속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심급마다 2차에 한하여 갱신할 수 있다”고 해 오히려 지금보다 구속재판 기간이 짧았다. 상소심에서 3차 갱신이 가능해 구속 재판 기간이 늘어난 건 2007년 형사소송법 개정 때로 비교적 최근 일이다. 그렇다면 왜 구속재판 기간을 규정해둔 것일까.

헌법재판소는 2001년 재판관 7대2 의견으로 구속 기간을 정해둔 형사소송법 제92조 제1항이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헌재는 이 조항의 입법 목적이 “강제처분은 기본권에 대한 중대한 제한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필요한 최소한도의 범위 내에서 행해져야 한다. 이러한 필요최소한도의 원리가 무죄추정의 법리와 함께 구속기간의 제한을 규정하고 있는 법률조항의 바탕이 되는 기본원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법률조항은 미결구금의 부당한 장기화로 인한 인권의 침해, 구체적으로는 신체의 자유의 침해를 억제하려는 데에 그 입법 목적을 두고 있다”라고 밝혔다. 헌법의 무죄추정의 원칙을 지키고 국민의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확정판결이 없는 상태에서의 무제한 구속을 막은 것이다. 이어 헌재는 “법원이 심리를 더 계속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 구속을 해제한 다음 기간의 제한에 구애됨이 없이 재판을 계속할 수 있다. 따라서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된다고 볼 수 없다”며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헌재 결정은 대전고법이 이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기 때문에 나왔는데, 구속 기간에 쫓겨 재판해야 하는 판사들이야 말로 구속 재판 기간 제한에 반대하고 있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구속기간 만료로 석방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6일 오전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김 전 비서실장과 함께 재판을 받았던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구속 기간이 만료돼 지난달 28일과 29일 각각 석방됐다. 다만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은 다음 달 22일이 구속 만기다. 조 전 장관은 김 전 비서실장과 함께 지난해 1월 구속됐으나, 1심에서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에 무죄를 선고받고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그러다 2심은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징역 2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됐다. 따라서 조 전 장관의 최대 구속기간은 2개월+6개월(3차 갱신)으로, 구속된 1월23일부터 8개월이다.

이날 석방된 김 전 비서실장은 법정에서 계속 볼 수 있다. 블랙리스트 사건 외에도 서울중앙지법에서 보수단체에 정부 지원을 몰아준 화이트리스트 사건,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대통령 보고시간 조작 사건 등 2개의 재판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고령인 김 전 비서실장은 블랙리스트 사건 때부터 환자복을 입고 나와 지친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최근에는 직접 증인을 신문하거나, 변호인의 변호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고, 사건 기록을 검토하는 등 김 전 비서실장은 재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검찰은 김 전 비서실장의 구속이 취소되자 두 1심 재판부에 구속영장을 발부해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했지만 아직까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또 다른 판사는 “국민들의 여론도 중요하지만, 재판은 불구속 재판이 원칙이고 헌법의 무죄 추정 원칙도 중요하다. 헌법과 법률의 원칙은 당사자에 대한 호불호와 관계없이 모두에게 지켜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비서실장은 지난해 12월 2심 최후 진술에서 아내와 아들 곁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눈물을 지었다. “저에게 남은 소망은 제 늙은 아내와 식물인간으로 4년 동안 병석에 누워있는 53살 된 제 아들의 손을 다시 한 번 잡아주고, 못난 남편과 아비를 만나서 지금까지 고생이 많았다는 말을 건네고 아들에게는 이런 상태로 누워있으면 아버지가 눈을 감을 수 없으니 하루빨리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라 이렇게 당부한 뒤 제 삶을 마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김 전 비서실장은 재판을 받는 1년 6개월 동안 한 번도 블랙리스트 범행을 사과한 적이 없다. “북한과 종북세력으로부터 이 나라를 지키는 것이 공직자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던 김 전 비서실장은 “배제 대상 명단 작성을 지시하거나 보고받은 일도 없고 그런 명단을 본 사실조차 없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진정으로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던 김 전 비서실장에 대해 대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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