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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0.12 18:08 수정 : 2016.10.12 22:47

사망진단서 ‘병사’ 논란…의무기록지로 본 진실찾기

서울대병원이 작성한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 사망의 종류란에 ‘병사’라고 표시돼 있다.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제공
“수술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고인의 사망진단서에 소신껏 담아 작성했습니다”

고 백남기 농민의 주치의 백선하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11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교문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백씨의 사망 종류가 ‘병사’라는 입장을 다시 한 번 밝힌 그는 “하고 싶은 말을 해보라”는 한 의원의 제안에 “명백히 해야할 것 같아서 만들었다”며 준비해온 A4 한 장짜리 답변서를 읽었습니다.

“317일 진료 중 일부만의 진료에 참여하였던 의료인, 사망 후 2주도 되지 않는 기간에 환자의 진료에 전혀 참여한 적이 없는 의료인은 환자의 입원부터 사망에 이를 때까지의 전 과정을 주치의만큼 알고 있지 못합니다. (중략) 확인되지 않은 수많은 말들, 하지도 않았음에도 했다고 버젓이 활자화되어 나오는 말들 앞에서 개인적으로 커다란 무력감을 느끼지만 신경외과 전문의로서 환자분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날 국감에 함께 출석한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은 ‘주치의 백선하 교수의 판단이 적법하다’고 밝혔다가 다시 “특위 입장(외인사)을 따를 수밖에 없다”며 오락가락 했고요.

주치의가 무력감을 호소하며 “소신껏 썼다”는 백씨의 사망진단서를 두고 ‘진실찾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망진단서에는 사인이 물대포로 인한 ‘외인사’가 아닌 ‘병사’라고 적혀 있고, 급성경막하출혈과 급성신부전, 심폐정지가 사망원인으로 기록됐습니다. 백 교수는 유족이 연명치료를 중단해 사망했다고 책임까지 떠넘겼고요. (▶관련기사: 서울대병원, “백남기 농민, 병사가 맞다”)

그러나 사망진단서 논란을 조사한 ‘서울대병원·서울대의대 합동특별조사위원회’(특위)를 비롯해 대한의사협회 등 대부분의 의사들은 백씨의 사망 종류를 “외인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백씨를 담당했던 레지던트(전공의)는 사인을 ‘병사’라고 적은 것에 대해 신찬수 서울대병원 부원장과 백 교수의 지시를 받았다고 유족에게 밝힌 바 있습니다. 모두가 ‘외인사’라고 말하는데 주치의만 고집스럽게 ‘병사’를 주장하는 상황이니 ‘외압’ 의혹도 커지고 있습니다.

백씨가 쓰러져 입원했던 날부터 사망 당일까지 병원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다행히 의무기록지에 적힌 기록들로 진실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습니다.

■ “수술해도 회복 힘들다” 판정해놓고 뇌수술

9월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연 백남기 농민과 관련한 상황 및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유족인 백도라지씨가 발언하고 있다. 유족과 백남기 투쟁본부는 경찰의 부검 시도에 대해 사인이 명백해 부검은 불필요하다며 부검을 통해 사인을 바꿔 책임을 모면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고 규탄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난해 11월14일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백씨는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이송된 직후 ‘외부 충격에 의한 두개골 골절과 뇌출혈로 수술을 해도 회복이 힘들다’는 의료진의 판정을 받습니다. 이는 사망 원인과 부검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경찰 물대포로 인한 심각한 뇌손상이 백씨의 직접적 사인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관련기사: 백남기씨 응급실 CT영상 ‘외부충격 두개골 골절·뇌출혈’ 판정) 당시 당직교수로 백씨를 진찰한 조아무개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신경학적 검사와 뇌시티 검사 결과 수술을 해도 회복이 어려울 것으로 진단하고 이런 상황을 백씨의 가족에게 설명했음을 의무기록지에 적습니다. 이후 치료 목적이 아니라 환자의 고통 등 불편을 덜 수 있도록 ‘지지적 치료’를 하겠다는 계획도 가족들에게 알립니다.

<백남기 투쟁본부가 밝힌 수술일지>

2015.11.14. 18:56께 - 경찰 물대포 맞고 쓰러짐

19:14께 - 현장에서 송파119 응급차량에 실려감

19:40께 - 서울대병원 도착

20:05께 - CT 촬영(19:59 CT촬영실로 이송)

21:30께 - 신경외과 조○○ 교수, 가족들한테 가망 없으니 요양병원으로 옮기라고 설명

22:05께 - EICU 병동으로 이송(응급중환자실)

22:30께 - 신경외과 백선하 교수, 응급실에 내려와서 수술하자고 함

23:35께 - 수술장으로 이동

11.15. 03:25께 - 수술(3시간50분 소요) 뒤 수술장에서 나옴

03:30께 - 수술경과 설명(백 교수)

‘수술 불가’였던 의료진의 판정은 1시간여가 지난 밤 10시30분께 등산복 차림의 백 교수가 등장하면서 바뀝니다. 최근 백남기 투쟁본부가 공개한 수술 직후 동영상을 보면, 백 교수는 ‘뇌뿌리 반사’를 근거로 수술을 했다고 말합니다. 지난달 10일 박남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국가인권위원회의 ‘물대포 피해 농민 사건 기초조사 보고’를 보면, 수술 이틀 뒤 인권위 조사관과의 면담에서 백 교수는 “함몰 부위를 살펴볼 때 단순 외상 아니라 높은 곳에서 떨어진 사람에게 나타나는 임상적 소견”임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3일 특위 기자회견에서 백 교수는 수술을 결정한 이유를 다르게 설명합니다. ‘뇌뿌리 반사’ 등은 언급하지 않은 채 ‘만성경막하수종’을 근거로 수술했다고 말을 바꾼 것이죠. 당시 의무기록지에 남은 CT 판독 결과나 그밖에 환자의 상태를 기술한 어떤 기록에도 ‘만성경막하수종’이라는 진단명은 등장하지 않는데 말입니다. 당시 판독 결과에도 없고, 가족에게도 설명하지 않은 부분을 뒤늦게 수술 근거로 든 겁니다.(▶관련기사: <한겨레21> 백남기 농민 유족 단독 인터뷰/ 주치의 “‘정치적 사건’ 소견서 발급 못한다”)

■ 서울대병원, 가족 반대 불구하고 무리한 연명치료

고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 논란에 대한 서울대병원-서울대의과대학 합동 특별조사위원회 언론 브리핑이 지난 3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의학연구혁신센터에서 열려 주치의 백선하 교수가 특위의 입장과 다른 소견을 밝히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의무기록지엔 서울대병원이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백씨의 연명 치료를 시행한 흔적도 발견됩니다.(▶관련기사: 머니투데이 [단독] “서울대병원, 가족 반대 불구 백남기씨 무리한 연명치료”) 국회 교문위 소속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0일 서울대병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의무기록지를 보면, 9월 들어 백씨의 상태가 채혈도 힘들 만큼 악화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백씨의 담당 전공의는 “환자 본인의 생전 의사에 따른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하며, 가족들의 거듭된 합의 내용 또한 존중해야 한다는 점에 이해하고 있음을 공감한다”고 적었습니다.

9월6일자 의무기록지/ “뇌단층촬영에서 뇌 전반에 걸쳐 저음영을 보이고 의식 호전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 “환자의 신체와 존엄이 훼손되지 않는 방향으로 고민하겠다고 약속했다”

9월7일자 의무기록지/ ‘채혈가능한 정맥을 찾아봤으나 마땅한 혈관이 없음’, ‘PICC 통한 채혈을 시도했으나 역류가 잘 되지 않고 전해질 정확히 반영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돼 포기함(가성동맥류 때문에 치료 중임)’. ‘우측 노동맥을 찔렀으나 검체량이 부족해 다시 노동맥 또 찌름’

김 의원은 “의무기록지에 ‘이해’와 ‘공감’이라는 감정적 표현이 들어간 것은 극히 이례적”이라며 “전공의가 의식 호전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무리한 연명치료로 인해 신체와 존엄이 훼손되는 것을 염려하고 고민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습니다.

백씨가 위독하다고 알려진 사망 전날에도 이례적인 상황은 또 벌어집니다. 신 부원장이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백씨의 혈압을 강제로 상승시키는 승압제 사용 지시를 내린 겁니다.(▶관련기사: 백남기씨 유족들 “주치의 백교수 무책임…부검 응하지 않겠다”) 사망 전날인 지난달 24일 의무기록지에는 “진료부원장 신찬수 교수님과 환자 상태에 대해 논의했고 승압제 사용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을 나눴다”는 기록과 함께 “가족들이 승압제 사용을 원치 않는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학계에선 환자의 연명시술에 주치의가 아닌 부원장이 직접 개입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는 반응이 나옵니다. 병원 쪽이 가족들이 원치 않는 연명치료까지 하며 백씨의 사망시점을 늦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왜 적극적인 치료를 받지 않아 백씨가 사망했다며 책임을 유족에게 돌리는 걸까요?

■ 같은 날 퇴원기록에 적혔다 사망진단서에서 사라진 ‘외상성’ 문구

퇴원기록에 적힌 진단명 ‘S0651’은 국제표준질병 사인분류체계에 따른 코드에서 ‘외상성 경막하출혈’로 나타난다. 윤소하 정의당 의원 제공
백 교수는 11일 교문위 국정감사에서 “유족의 사인 수정 요구를 받아들일 의향이 있냐”는 질의에 단호하게 “없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소신대로 했다는 백 교수의 백씨 사망 당일 행동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10일 윤소하 정의당 의원이 공개한 의무기록지를 보면, 백씨가 숨진 직후 작성된 퇴원기록 진단명은 ‘(열린 외부 상처가 없는) 외상성 급성경막하출혈’ 입니다. 지난해 11월14일 수술 전 진단명에 적힌 그대로입니다. 퇴원기록에는 백 교수의 친필 서명도 첨부돼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날 백 교수가 작성한 사망진단서에는 외부 요인에 의한 사망을 입증할 수 있는 ‘외상성’ 문구가 빠진 ‘급성경막하출혈’만 적혀 있습니다.(▶관련기사: 고 백남기 농민 사망직후 의무기록에도 ‘외상성 출혈’) 서울대병원이 건강보험급여를 받기 위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제출한 상병 코드(진단내역)에도 백씨가 응급실에 도착한 시점부터 숨질 때까지 일관되게 ‘외상성’ 출혈로 기록돼 있습니다.(▶관련기사: 서울대병원, 백남기씨 건보 진료비 청구땐 “외상성 출혈”)

사망진단서 작성에 외압이 작용했을 수 있다는 주장은 그래서 나옵니다. 백남기 투쟁본부는 “사망진단서를 쓸 당시 담당 레지던트가 유족에게 ‘나는 사망 원인에 대해서는 (판단할) 권한이 없고 진료부원장과 백 교수 두 분이 상의한 내용을 쓸 수밖에 없다’고 얘기하면서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며 “그 레지던트는 ‘병사요?’라며 세 차례나 반문한 끝에 사인을 병사로 체크했다고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병원 쪽은 사망진단서에 ‘외상성’이라는 문구가 삭제된 것에 대해 “의무기록과 사망진단서 내용이 반드시 일치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백씨가 입원한 317일간의 의무기록들이 ‘외인사’를 가리키고 있지만 ‘병사’라고 적힌 주치의의 사망진단서. 외압은 있는 걸까요, 없는 걸까요. 경찰의 부검에 맞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선 오늘도 ‘백남기 지킴이’들이 촛불을 켭니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고 백남기씨 수술 당일부터 사망까지 주치의 백선하 교수의 말>

2015년 11월14일 “오셨을 때는 뇌뿌리반사가 없어 거의 뇌사상태. 이때는 수술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서 일단 보존적인 치료하고 인공호흡기 달아…10시 넘어 다시 볼 땐 통증 주니 조금 움직여. 아직 뇌뿌리반사가 남아 있으니 수술하자…”(수술 직후 가족에게 수술 배경과 경과 설명)

2015년 11월16일 “함몰 부위를 살펴볼 때 단순 외상 아니라 높은 곳에서 떨어진 사람에게 나타나는 임상적 소견임”(국가인권위원회 ‘물포 피해 농민 사건 기초조사 보고’ 면담에서)

2016년 10월3일 “응급실에서 CT에서 발견되는 급성경막하출혈 외에 만성경막하수종이 같이 동반돼 있었다. 보통의 ‘외상’으로 인한 급성경막하출혈과는 달라 수술을 했다”(서울대병원 특위 기자회견에서 수술 이유를 묻자)

10월3일 “환자 가족들이 고인의 평소 유지를 받들어 여러 가지 합병증에 대해 적극적인 치료 받기를 원하지 않아…약 6일 전부터 시작된 급성신부전이 빠른 속도로 진행하면서 고칼륨증이 단시간에 걸쳐 빠른 속도로 진행하였고, 급성신부전에 대한 적절한 치료가 되지 않아 결국에는 고칼륨증에 의한 급성심폐정지가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급성신부전의 체외투석을 통한 적극적인 치료가 시행되었다면 사망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서울대 특위 기자회견에서)

10월11일 “존엄한 죽음과 연명치료 거부에 대한 토론과 생각은 본 사안의 본질과는 다른 철학적, 사회적, 법적인 문제…환자분은 급성 신부전증의 합병증인 고칼륨혈증에 대해 꼭 받아야 하는 치료를 받지 못하여 심장정지가 왔으며 그러한 이유로 직접적 사망원인으로 심폐정지, 선행사인 신부전, 원사인을 급성 경막하 출혈로 기술했고 사망의 종류는 병사로 기술”(국회 교문위 국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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