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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9.02 15:48 수정 : 2016.09.02 17:00

[뉴스AS] 끝내 ‘단식’을 택해야 했던 이들의 사연

곡기를 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서울 광화문과 여의도, 김포공항, 양재동에 자식을 잃은 부모와 해고된 간접고용 노동자, 성추행과 욕설, 열악한 근무 환경에 시달리던 미화 노동자 그리고 동생을 잃은 형이 곡기를 끊은 채 길바닥에 나앉았습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으나 달라진 게 없다’며 마지막으로 택한 방법이 단식이라고 합니다. 박근혜 정부와 국회, 한국공항공사와 현대차를 향한 이들의 호소가 들리시나요? 곪아 터진 한국 사회 곳곳에서 신음하는 절박한 이들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1. 2년 새 두 번째 단식 돌입한 세월호 유가족들

1일 오전 서울 마포구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제3차 청문회에서 유경근 세월호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피해자 단체 모두 진술을 마친 뒤 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그동안 할 수 있는 건 정말로 다 해봤어요. 이제 진짜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남지 않아 단식을 합니다. 오늘도 피가 마르고, 빼가 녹는 유가족들이 더는 거리에 나서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지난달 23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당시 아들 재욱 군을 잃은 홍영미씨가 단식농성을 시작하며 말했습니다. 세월호 특별법 개정과 특검 도입 등을 요구하며 지난달 17일부터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간 유경근 집행위원장과 장훈 진상규명분과장과 함께 동조 릴레이 단식농성에 나선 것. 이로부터 벌써 열흘이 흘렀습니다. (▶바로 가기)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871일, 광화문 농성을 시작한 지 782일. 현재 수습되지 못한 참사 희생자가 9명, 선체 인양을 시도 중인 정부는 계속 선체 훼손 논란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정부는 더이상 세월호 특조위를 지원할 수 없다며 해체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주요 증인들의 불출석 등으로 1일부터 진행되고 있는 세월호 특조위 제3차 청문회도 힘이 빠진 상태입니다. 단원고 ‘기억교실’도 이삿짐처럼 실려 이전됐습니다. 2일로 단식 17일째를 맞이한 유경근 위원장은 앞서 “단식이라도 하지 않으면 영원히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될 것 같아서 단식농성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자식을 잃은 세월호 엄마·아빠들은 2년 전 여름에도 같은 자리에 앉아 곡기를 끊었습니다. 46일 동안 이어진 ‘유민 아빠’ 김영오씨의 목숨을 건 단식에 가수 김장훈씨, 영화감독 류승완·정지영·봉준호·박찬욱·변영주와 배우 문소리·장현성 등 영화인들이 지지 단식에 나섰습니다.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비롯해 시민 2만여명이 함께 했습니다.

그러나 2년 뒤에도 달라진 것이 없어 부모들이 다시 곡기를 끊었습니다.

2. 노조 파괴 공작에 동생 한광호를 잃은 유성기업 해고 노동자

유성기업 노조원들과 민주노총 등 76개 단체로 구성된 유성기업범시민대책위원회(범대위)가 지난 5월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차 본사 앞에서 범국민대회를 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여섯달 전 현대차 하청업체 유성기업 노동자 한광호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서슬 퍼렇던 1970~80년대 군부독재 치하도 아니고, 2016년 ‘민주국가’ 대한민국에서 노조 활동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끈질긴 탄압을 받다가 힘들어 마감한 생이었습니다.

현대차의 지시로 노동조합 파괴 ‘전문가’로 악명높은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이 구체적인 ‘전략’을 내놨고 유성기업이 실행에 옮겼습니다. 유성기업에 건넨 ‘유관기관 대응전략 수립’ 문건에는 창조컨설팅이 노조 파괴를 위해 청와대, 국정원, 경찰청, 노동부, 아산시경, 경총 등 인사들을 접촉했다고 나와 있었습니다. 또 현대차가 작성해 유성기업에 전달한 문서에는 ‘노동조합과의 주간 연속 2교대제 협의 시간을 지연시키면서 창조컨설팅을 통해 대응하라’는 지시사항이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2012년 9월 국감에서 드러난 내용입니다. (▶바로 가기)

2011년부터 시작된 유성기업 노조 파괴 공작의 복판에서 3월17일 한광호씨가 세상을 떠났고 그로부터 155일이 되던 날, 한광호씨의 형 국석호씨가 서울 양재동 현대차 사옥 앞에서 단식에 나섰습니다. 국석호씨 역시 유성기업 출신의 해고노동자로, 6개월째 사과 한마디 없는 현대차를 향해 17일째 곡기를 끊고 외치고 있습니다.

“현대차와 유성기업은 동생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사죄하지 않을 거면 내 목숨까지 가져가라.”

한광호씨 유족은 아직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3. 성추행과 욕설에 시달린 김포공항 미화 노동자들

손경희 공공비정규직 노동조합 서경지부 강서지회장이 8월 30일 낮 서울 강서구 공항동 한국공항공사 앞 버스정류장에서 노사대화를 호소하며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용역업체 관리자들의 성추행과 욕설, 폭언 등의 횡포와 열악한 근무 환경을 폭로했던 김포공항 비정규직 미화 노동자도 8월30일부터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습니다. 용역업체 소장이 자신을 “노래방에서 무릎에 앉히더니 입안에 혀를 집어넣었다”며 성추행당한 사실을 공개해 공분을 일으켰던 손경희 공공비정규직노조 서울경기지부 강서지회장은 서울 한국공항공사 정문 앞 인도에 자리를 깔았습니다. 지난달 12일에는 삭발을 해 완벽한 ‘투사’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손 지회장은 삭발도 처음이고 단식도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는 “노조가 생긴 지 여러 달이 지났는데 (한국공항공사 쪽이) 직접 대화를 안 해준다”며 “그 정도로 철저하게 무시를 당하고 있었구나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손 지회장의 농성장에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있습니다. “미화원 최저임금도 서러운데 대화 거부가 웬말입니까!” “한국공항공사 노사대화 호소 무기한 단식 4일차”라고 쓰여 있습니다.

김포공항에서 30년 넘게 일한 미화 노동자도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126만원)입니다. 하루 11시간 일해 상여금과 기타 수당을 포함해도 180여만원을 받는 현실입니다. 정부가 마련한 ‘공공기관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에는 미화 노동자의 임금은 시중노임 단가(8200원)에 맞춰 정하고 400% 이내의 상여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으나, 현장에서는 무용지물입니다.

손 지부장이 곡기를 끊고 요구하는 것은 공항공사 쪽과의 대화입니다.

4. 하루아침에 직장 잃은 티브로드 간접고용 노동자들

8월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케이블방송 티브로드 외주업체 해고자 복직 및 고용승계 보장 쟁취 단식농성 돌입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는 케이블 방송업체인 티브로드 간접고용 해고노동자들이 나흘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요구는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 “티브로드 해고자 복직과 고용안정”입니다. 올해 초 티브로드 경기 시흥·광명 쪽을 맡은 한빛북부기술센터와 전주기술센터가 외주 용역업체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51명이 고용승계를 거부당했습니다. 하루아침에 일자리가 사라진 겁니다.

그래서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간 이들이 있습니다. 이영진 희망연대노조 케이블방송비정규직 티브로드 지부장과 권석천 광명시흥센터 부지회장입니다. 두 달 전엔 이들의 동료 2명이 서울 용산구 한강대교 북단 아치에 올라 복직요구 농성을 했습니다. 티브로드 노동자들은 원청인 태광티브로드가 하청업체로 가는 비용을 줄이고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쥐어짜는 과정에서 지금과 같은 해고 사태가 벌어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간접고용 노동자가 처하는 현실은 올해 에어컨 실외기 설치 작업 중 추락해 숨진 삼성전자서비스센터 간접고용 노동자 진남진씨와,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가 스무살 생일을 앞두고 목숨을 잃은 김아무개군의 죽음을 통해 알려진 바 있습니다. 그러나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불안하고 위험한 노동환경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그래픽 강민진 기자 rkdalswls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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