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8.25 09:10
수정 : 2016.08.25 10:33
“부럽네요. 많이 부럽네요.”
“금메달 딸 만하네요.”
리우올림픽 여자 배구 대표팀 주장 김연경 선수는 양궁대표팀이 부럽다고 합니다. 선수들이 최상의 기량을 보여주도록 대한양궁협회가 지원하기 때문입니다. 그 지원이 한몫했을까요. 양궁대표팀은 금메달 4개를 모두 챙기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반면 여자 배구팀은 4강 진출이 좌절됐습니다. 4년 전 아쉽게 동메달을 놓친 런던 올림픽 결과에도 못 미치는 성적입니다. 한데 많은 이들의 실망과 안타까움은 선수 개개인보다는 대한배구협회(협회)를 향합니다. 김연경이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와 그의 뒤를 잇는 황금 세대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협회의 지원이 부실했던 탓에 선수들이 최상의 성과를 보이기 어려웠단 겁니다. 선수들도 “현장 상황이 열악했다”고 입 모읍니다. 누리꾼들의 문제 제기 중심으로 협회의 문제점들을 하나씩 짚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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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자배구 대표팀의 김연경이 16일 오전(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나징유 배구 경기장에서 열린 네덜란드와의 8강전 경기에서 수비에 실패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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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연경이 통역까지 담당했다?
19일 한국으로 돌아온 김수지 선수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연경이가 통역 역할까지 하며 많이 힘들어했다. 옆에서 보기에 안타까웠다”고 했습니다. 20일 귀국한 김해란 선수도 “옆에서 보기에 짜증이 날 정도로 많은 일이 연경이에게 몰렸다”고 말했습니다. 팀에 통역 전담 인력이 없어 외국에서 활동하는 김연경 선수가 통역까지 도맡았단 겁니다. 협회는 통역은 물론, 선수들의 체력 관리를 위해 꼭 필요한 팀닥터도 파견하지 않았습니다. 선수단과 감독, 코치를 빼곤 전력분석원 1명이 전부였습니다. 선수들은 애초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도 경기에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 배구협회는 18일 해명 자료를 내고 경기장 출입카드(AD)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대한체육회에서 선수 12명을 빼곤 출입카드를 3장밖에 할당해주지 않아, 감독과 코치, 전력분석원에 할당하기로 결정했단 얘깁니다. 이어 “리우올림픽 조직위로부터 통역을 지원받았다”며 “추가로 통역을 파견한다 하더라도 AD 카드 발급이 안 돼 대표팀에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합니다. 경기장에 출입하지 못한다고 해서 후방지원까지 불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최동호 스포츠 평론가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출입카드가 없다 하더라도 양궁처럼 리우 시내에 별도 캠프를 마련할 수 있었을 텐데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특히 팀닥터는 올림픽이 진행될수록 체력이 떨어지는 선수들을 꼼꼼히 관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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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한 뒤 김치찌개로 회식을 하는 여자배구 대표팀 모습.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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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번에는 김치찌개 회식조차 없었다?
배구협회에 대한 비난이 이어지면서 2년 전 여자 배구 대표팀 회식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 한장이 누리꾼들의 공분을 일으켰습니다. 사진은 대표팀이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한 뒤 기념으로 김치찌개를 먹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금메달 획득을 축하하는 자리라기엔 다소 초라합니다. 결국 김치찌개 회식을 마친 뒤 김연경 선수가 사비를 털어 2차 회식을 열었다는 얘기도 전해졌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김치찌개 회식조차 없었다고 합니다. 김연경 선수는 23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이번에는 아무것도 안 먹었다”며 “선수들과 못다 한 이야기들 함께할 수 있는 그런 자리만 있어도 정말 감사할 것 같다”고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이에 대해 배구협회는 24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올림픽 현장에서 회식이 이뤄지지 못한 것은 사실”이라며 “선수들이 돌아온 만큼 한국에서 회식 일정을 잡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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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배구 국가대표팀의 김연경이 20일 새벽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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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행정지원 부실 탓 ‘따로 귀국’
8강전에서 패한 뒤 선수들을 2~3명씩 네 개 조로 나누어 이틀에 걸쳐 따로 돌아오게 한 것도 입길에 올랐습니다. 이에 대해 협회는 18일 낸 해명 자료에서 조기 귀국은 대표팀의 의사를 반영해서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애초 배구 대표팀은 올림픽이 폐막한 뒤인 24일 전세기를 타고 돌아올 계획이었으나 4강 진출에 실패한 선수들이 조기 귀국하겠다는 의사를 대한체육회에 전달했다는 것입니다. 선수들이 모두 함께 탈 수 있는 항공편을 급히 찾기 어려웠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최동호 평론가는 “승패를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미리 비행기 표를 확보하기 어려운 사정은 이해가 간다”면서도 “협회 직원이 동행했다면 선수들이 4개 조로 뿔뿔이 나뉘어 귀국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같은 돌발 상황에 빠르게 대처하기 위해서 행정지원을 전담하는 협회 직원이 필요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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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지·김해란·김연경(왼쪽부터) 등 한국 여자배구 선수들이 16일 오전(현지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지뉴 배구경기장에서 열린 네덜란드와의 8강전에서 패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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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예산 탓이 변명일 수밖에 없는 이유
허술한 협회의 지원이 빠듯한 재정 사정 때문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배구협회는 2009년 배구회관으로 쓸 건물을 162여억원에 매입하는 과정에서 크게 출혈을 입었습니다. 자립기금 45억원을 투입하고 113여억원을 대출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당시 협회 전무이사이던 이아무개씨가 특정 업체에서 건물을 사는 대가로 억대 뒷돈을 챙긴 혐의(배임수재)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현장 사정을 아는 전문가는 예산 부족은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최동호 평론가는 “올림픽은 가장 비중 있는 국제 대회인데 예산이 부족하다고 지원을 축소하는 건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며 “애초에 여자 배구의 메달 가능성을 낮게 보고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 아니냐”고 꼬집었습니다.
“좋은 선수들은 점점 없어지고 초·중·고 배구선수들과 팀들은 하나둘씩 없어지고....
조금만 더 구단에 관심과 배려가 있었다면 많은 선수들이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자기의 기량을 보여줄 텐데...
아직도 한국 배구의 갈 길은 멀고도 험하다.”
김연경 선수가 2012년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구단’을 ‘협회’로만 바꿔 읽으면 최근 썼다고 해도 믿을 법합니다.
최동호 평론가는 “올림픽 메달은 선수들의 경기력과 협회의 지원의 총합”이라고 정리합니다. 선수들의 역량을 코트 위에서 꽃피게 하는 것은 결국 든든한 지원체계라는 것입니다. 여자 배구의 4강 진출을 어렵게 했던 것은 이른바 ‘리시브 참패’와 범실 이전에 경기에 온전히 정신을 집중하지 못하게 한 환경이 아닐까요.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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