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8.05 15:30
수정 : 2016.08.05 17:57
국과수에서 20년간 교통사고 조사한 박성지 교수에게 물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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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부산 감만동에서 싼타페 차량이 트레일러 차량을 들이 받아 싼타페에 타고 있던 일가족 5명 가운데 4명이 숨졌다. 싼타페 차량 운전자는 사고 전, 차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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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자가 차를 마음대로 운전할 수 없다고 호소한 뒤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는 장면이 담긴 부산 감만동 교통사고 차량 블랙박스 영상. 이 영상을 본 많은 누리꾼들은 ‘급발진’ 사고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급발진이란, 보통 운전자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엔진 회전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그만큼 자동차 속도가 빨라지는 현상을 의미하는데요. 국내에서는 1990년대부터 급발진 의심 사례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자동차 급발진이라며 국토교통부나 한국소비자원에 신고한 건수도 해마다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지금까지 국내·외 정부 조사에서 자동차 결함으로 인해 급발진이 일어났다고 밝혀진 사례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급발진 현상이 명확히 규명된 것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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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지 대전보건대 과학수사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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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월까지 20년가량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교통사고 분석을 해왔던 박성지 대전보건대 과학수사과 교수(전 국과수 이공학과장)는 ‘자동차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이 있다’고 보는 전문가 가운데 한명입니다. 박 교수에게 급발진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급발진을 유발할 수 있는 원인은 무엇인지 등을 물었습니다. 다음은 일문일답.
-급발진을 주장하는 사고 가운데 자동차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은 얼마나 된다고 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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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씀드리면, 10건 가운데 9건가량은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밟고 있었던 경우입니다. 졸다가 깬다든가, 어떤 차가 끼어든다든지, 갑자기 놀랄만한 상황이 벌어진 다음 차가 튀어나가는 사례들인데 운전자들이 브레이크를 밟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가속페달에 발이 올려져 있었던 거죠. 운전자가 갑자기 놀란 경우, 내 발이 지금 무엇을 밟고 있는지 의심해 봐야 합니다.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밟지 않았는데도 갑자기 나타나는 급발진은 자동차 결함 때문이라고 봅니다.
-급발진 상황에 놓인 경우 운전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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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발진 이후 대형사고가 난 사례를 보면, 운전자들이 차에 이상이 생겼음을 감지한 뒤 공황상태에 빠져 핸들만 잡은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거의 대부분 최대출력이 돼 차가 마구 나가려는 상황에서 브레이크를 제대로 밟으면 감속이 됩니다. 그러나 최대출력 상태에서 브레이크를 여러 번 밟으면 성능이 확 떨어져요. 그러므로 가능한 힘을 주어 깊게 브레이크를 밟아야 합니다. 차에 이상이 있으면 바로 변속기 레버를 중립(N)상태로 놓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공황상태가 되면 변속기 레버를 중립에 잘 놓지를 못합니다. 전방주시를 해야 하니까 변속기를 볼 정신도 없고요. 눈으로 보지 않고도 레버를 주행(D)상태에서 중립으로 옮겨 놓을 수 있도록 습관을 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차가 ‘웅~’ 하고 나갈 때 레버를 앞쪽으로 탁 쳐서 중립상태로만 만들어도 더 큰 사고를 면할 수 있습니다.
-급발진 상황에서 브레이크가 듣지 않을 수도 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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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자동차가 최대 출력상태가 되고 운전자가 당황해 브레이크를 여러 번 밟으면 브레이크 성능이 떨어져요. 그러다 아예 브레이크가 안 드는 경우가 있어요. 브레이크 자체가 고장 난 상태도 있을 수 있고요. 최근 고급차에 들어가는 브레이크는 과거처럼 사람이 밟는 만큼 속도가 느려지는 게 아니라 알아서 속도 제어를 하는데요.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 상황인데 안 밟으면, 자동으로 차를 정지시켜 안전 운전을 돕는 겁니다.이러한 브레이크의 경우 되레 운전자가 꽉 밟아도 제 성능이 안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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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부산 감만동 교통사고를 보도한 한겨레 기사에 달린 급발진 경험을 한 적이 있다는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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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발진을 유발할 수 있는 자동차 결함은 어떤 것들이 있다고 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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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젤엔진 출력에 영향을 미치는 건 연료, 가솔린엔진 출력에 영향을 미치는 건 공기입니다. 디젤엔진에서 연료를 공급하는 펌프나 이를 제어하는 부품 및 전기제어장치(ECU·자동차에 들어가는 일종의 컴퓨터로 여러 기능을 자동으로 제어)에 이상이 있는 경우 연료가 과다하게 엔진으로 유입돼 출력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솔린엔진에서는 스로틀밸브(자동차 실린더로 들어가는 공기량을 조절하는 장치)가 중요한데요. 이를 구성하는 부품이나 전기제어장치에서 이상이 생기면 스로틀밸브가 열려 출력이 높아질 수 있고요.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밟은 뒤 발을 뗐지만 가속페달이 원위치로 돌아오지 않는 ‘고착’ 현상이 급발진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바닥 매트에 가속페달이 끼는 경우도 있고요.
-많은 소비자들이 ‘자동차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이 없다’는 제조사 입장이나 정부 조사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불신을 누그러뜨릴 방법은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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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급발진과 관련한 의혹이 너무 증폭돼 있어요. 이러한 상황은 현대기아차에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현대차 차량 사고기록장치(EDR·사고 전후 일정한 시간 동안 속도, 브레이크 작동 여부 등 운행정보가 기록된 장치. 2016년부터 자동차 제조사는 이러한 장치가 장착된 경우 설치 사실을 알려야 하며, 소유자 등이 기록 공개를 요구하면 내용을 공개하도록 함) 내용은 현대차만 읽어낼 수 있어요. 국과수도 현대기아차가 도와주지 않으면 이 회사 차량의 EDR을 읽을 수 없습니다.
EDR을 해독하려면 해당 EDR에 쓰인 통신 규약을 알아야 하는데, 현대차는 이를 공개하지 않는 데다 해독 장비를 판매하는 것도 아니거든요. 현대차 급발진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현대차가 해독해서 내어준 EDR 데이터를 믿을 수 있느냐는 의혹이 불거질 수밖에 없죠. 현대기아차가 자사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공개하면 소모적인 논쟁을 줄일 수 있다고 봅니다.
또 급발진 등 자동차 결함을 조사하는 객관적이고 전문화된 기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국토교통부는 자동차 인증기관이라 이미 허가를 내어준 부품의 결함을 조사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고, 국과수는 범인을 잡기 위한 범죄수사를 지원하는 기관이라 자동차 결함을 밝히는 일은 중점 업무가 아닙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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