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AS]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성매매 의혹 동영상 보도로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이건희 회장의 불법행위가 이뤄진 서울 논현동 빌라의 13억원짜리 전세권자가 삼성 계열사인 에스디에스(SDS)의 김인 고문이라는 점에서 이 이슈는 삼성 비자금으로 확산될 조짐도 엿보입니다. 공인이라 할 수 있는 유명 재벌 회장의 비리나 비위는 기자들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소재입니다. 하지만 엄청난 부의 장막 속에 가려진 이들을 취재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들의 움직임은 그룹 비서실이 발표하는 것 빼고는 매우 은밀할 뿐더러, 정보를 아는 극히 일부의 사람들도 입을 열려 하지 않습니다. 재벌가가 정치·경제·사법의 영역에 걸쳐 행사하는 무소불위의 권력 때문입니다. 저는 7년 전 이건희 회장의 ‘스피드웨이 독점 사건’을 단독 취재해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 또 그보다 3년 전에는 또 다른 재벌 회장의 20대 내연녀 사건을 취재한 적도 있습니다. 이건희 회장 성매매 의혹 동영상 보도를 계기로 그때의 추억담을 풀어 놓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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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용인 스피드웨이에 나타나 슈퍼카를 운전한 뒤 떠나고 있다. 류우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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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꼭지를 따라
“이거 꼭지 좀 따야겠는데 말야. 잘 안 되네…”
7년 전인 2009년 4월 말. 시사주간지 <한겨레21> 사회팀에서 일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정치팀장을 맡은 이아무개 선배가 저를 부르더니 슬쩍 말을 꺼냈습니다. <한겨레21>이 과수원도 아닌데, 무슨 꼭지를 따냐구요? ‘꼭지를 딴다’는 표현은 언론계 은어입니다. 중요한 사건의 주변 취재는 어느 정도 마쳤지만 정작 해당 사안을 기사화할 수 있는 핵심 팩트 확보에 어려움을 겪다가 마침내 그 팩트를 손아귀에 넣었을 때, 기자들은 “꼭지를 땄다”고 외칩니다.
꼭지를 따야 할 대상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었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경기 용인의 에버랜드에 있는 자동차 전용 경주장인 스피드웨이에 와서 자신이 소유한 슈퍼카를 탄다는 첩보였습니다. 하지만 정통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이 파파라치는 아닙니다. 재벌가 회장이 자신의 소유 지분이 있는 곳에 와서 틈틈이 제 차를 운전하는 현장을 덮칠 만큼 한가하지 않습니다.
2. 레이싱카는 안 되고 슈퍼카는 된다?
2009년은 국내에서 각종 레이싱 대회가 활성화되고 관련 산업이 크게 성장할 때입니다. 이듬해 전남 영암에 포뮬러원(F1) 서킷 개장을 앞두고 국내에선 레이싱대회를 치를 수 있는 경기장이 경기도 용인과 강원도 태백 두 곳 밖에 없었습니다. 대회 주최 쪽과 선수 등은 수도권에 있어 이동이 편리하고 레이싱 관련 업체들이 즐비한 용인 스피드웨이를 선호했습니다. 당시 스피드웨이 인근에만 40여개 넘는 업체들이 성업 중이었습니다.
문제는 삼성 쪽이 2009년부터 스피드웨이에서 열릴 예정이던 모든 레이스대회를 취소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일본 전문업체의 구조진단을 받은 결과, 서킷 주행로의 노면이 침하되고 부대시설에서 균열이 발견돼 더 이상 자동차의 고속주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전면적인 수리를 하고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위험한 서킷에서 이건희 회장이 자신이 보유한 배기량 6000cc급 슈퍼카를 몰고 와 고속 주행을 한다는 제보가 <한겨레21>에 들어 온 것입니다. 삼성이 회장님만 즐기게 하려고 멀쩡한 서킷을 폐쇄한 것일까요 아니면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서킷에 회장님을 무방비로 방치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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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전 회장이 포르셰 911 터보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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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삼성의 자동차산업 진출과 구제금융
이건희 회장은 예전부터 자동차를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서울 강남에 있는 포르셰, 페라리 등 수입차 매장에 들러 슈퍼카를 한 번에 여러 대씩 사갔다는 소문, 대한민국 최고 부자인 이건희 회장이 차량만 지목한 뒤 그냥 가려하자 매장 여직원이 “왜 결제하지 않고 그냥 가느냐”고 따졌다는 확인할 수 없는 소문도 돌아다녔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스피드웨이 인근 교통박물관에 최고급 외제차를 수십여대 보유하고 있다는 얘기도 일부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 있습니다.
이건희 회장의 이런 취미를 단순한 개인적 취향으로만 넘길 수 없다는 점에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 놓여 있습니다. 그의 이런 호기심이 자동차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삼성그룹으로 하여금 자동차사업에 뛰어들게 만들었고 결국 그 대가를 국민들이 치렀기 때문입니다. 이건희 회장은 1987년 11월 부친인 이병철 회장이 사망하자마자 그룹 비서설에 자동차산업 진출을 지시했습니다. 그 전까지 엔진이나 미션같은 핵심 자동차 설비의 부품 하나 만든 적 없던 삼성은 회장 지시 한 마디에 사업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닛산과 손 잡고 1998년 3월 에스엠5(SM5)를 출시하며 자동차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 해 10월 삼성자동차는 부도 위기에 몰린 기아자동차 입찰에 뛰어들었지만 현대자동차 쪽에 진 뒤 이듬해 6월 스스로가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결국 2000년 프랑스 자동차 회사 르노에 팔렸습니다. 나중에 공개된 이른바 ‘삼성 엑스(X)파일’에선 기아차 매각 앞뒤로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기아차 쪽에 금융권이 추가 지원을 하지 않도록 삼성이 정치권을 대상으로 로비를 벌인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결국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이라는 수렁에 빠지게 된 데는 삼성이 기아차 인수 과정에서 벌인 로비가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전문가들에 의해 제기됐습니다. 호사가인 재벌 회장의 취미가 단순히 부러움의 대상으로 끝날 수 없는 배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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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4월30일 경기 용인 스피드웨이에서 전문 레이서를 옆에 앉힌 채 2009년형 벤츠 SL65-AMG를 운전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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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야산을 헤맨 뒤 만난 슈퍼카
이제 이 회장이 실제로 스피드웨이에 와서 슈퍼카를 직접 운전한다는 사실만 확인하면 됩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일 단순한 취재방법은 스피드웨이 근처에 가서 이 회장이 올 때까지 무조건 뻗치기(한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취재가 될 때까지 계속 기다린다는 뜻의 언론계 은어)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 올지 모르는 그를 몇날며칠 동안 기다리자니 견적이 안 나옵니다. 그래서 우선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는 검색 엔진을 이용해 스피드웨이 인근의 레이싱 업체 명단과 전화번호를 확보했습니다. 그리고는 계속 전화를 걸어 물었습니다. 열 몇 번째인가 스물 몇 번째인가, 전화 돌리기에 지쳐갈 때 즈음 한 업체 관계자가 귀가 번쩍 뜨일 얘기를 해줬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목요일에 종종 차를 타러 오니 그 주 목요일에 자신의 업소로 찾아오라는 것이었습니다.
4월30일 이른 아침 <한겨레21> 사진팀 류우종 기자와 함께 용인을 찾았습니다. 업체 관계자는 “30여분 전 슈퍼카 굉음이 난 것으로 보아 이건희 회장이 온 게 틀림없다”고 일러주었습니다. 저는 집에 있던 25배율 쌍안경을 들고, 류유종 기자는 당시 <한겨레21>이 보유한 600㎜ 렌즈를 든 채 야산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처음 가 본 산길을 업체 관계자가 일러준대로 가다보니 일반차량과는 확연히 다른 배기음이 들려왔습니다. 나뭇가지 사이로 400∼500m 멀리 떨어진 건너편을 향해 쌍안경의 배율을 높이고 초점을 맞추는 순간 이건희 회장과 슈퍼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빨리 셔터 눌러.” 망원렌즈를 끼우고도 건너편 사람이 누구인지 식별되지 않는다는 류유종 기자한테 제가 말했습니다. 사진을 찍는 데는 고배율 단렌즈가 성능을 발휘하지만, 접안렌즈에 맺히는 상은 쌍안경의 것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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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전 회장이 스피드웨이 경주로를 달리고 있다. 류우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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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회장님의 단독 드라이브
당시 이건희 회장은 엑스파일 사건이 터진 뒤 삼성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나 어떤 직함도 맡지 않은 자연인 신분이었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당시 구부정한 자세인데다 걸음도 원활치 않았음에도 4억여원이 넘는 메르세데스벤츠사의 SL65-AMG를 몰고 신나게 서킷을 달렸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성매매 의혹 동영상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게 2011년 12월이니, <한겨레21> 취재는 그로부터 1년8개월 전인 셈입니다.
그날 이건희 회장 앞에 놓인 슈퍼카는 모두 15대. 페라리의 F430스쿠데리아, 599GTB피오라노를 비롯해 람보르기니의 가야르도 LP560-4, 포르셰의 911터보, 911GT2, GT3RS 등 대부분 최고시속 300∼320㎞ 안팎의 슈퍼카들이었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때론 전문 레이서(업계 관계자 증언)를 조수석에 태우고 슈퍼카를 몰았습니다. 때론 혼자서 운전대를 잡고 전체 2㎞ 길이의 서킷 가운데 450m짜리 직선주로에 들어서면 시속 200㎞를 훌쩍 넘어 보이는 속도로 내달리기도 했습니다.
그가 흰색 람보르기니 가야르도를 운전할 때는 에스(S)자 곡선 주로에서 과속하다 안전펜스를 들이받을 뻔하기도 했습니다. 안전 문제 때문에 레이싱 대회를 치를 수 없다는 서킷에서 국내 최고급 몸값을 자랑하는 이건희 회장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차들을 운전하는 장면은 아이러니 그 자체였습니다. 한참 레이스를 즐긴 이건희 회장은 여성 수행비서가 운전하는 포르셰 조수석에 앉아 스피드웨이를 떠났습니다. 간호사 출신으로 알려진 이 비서는 예전 이건희 회장의 수행비서 출신으로 최근 관심 인물로 다시 떠오른 박명경 전 상무의 후임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당시 운전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삼성자동차가 망하지 않았더라면, 삼성차가 만든 스포츠카를 몰고 이 트랙을 돌 텐데”라고 생각했을까요? 어쨋건 저는 꼭지를 땄고, 그 주 <한겨레21> 표지기사를 썼습니다.
▶관련기사 : 단독 취재한 회장님의 ‘단독 드라이브’
6. 꼭지를 못 딴 기자의 꼭지가 돌 때도
워낙 취재가 힘든 재벌 회장 취재는 꼭지를 딸 때보다 못 딸 때가 더 많습니다. 제가 경찰청에 출입하던 2006년, 서울시내 특급 호텔 객실에서 스무살짜리 젊은 여성 ㅂ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단순 변사일 수 있는 이 사건에 제가 관심을 가진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여성이 유서를 남겼는데, 유서에 나이가 80대인 한 재벌 회장과의 교제를 암시하면서 재벌 회장에 대한 원망을 가득 남겨놨다는 제보 때문이었습니다. 80대 재벌 회장이 손녀뻘 여성과 염문을 뿌리는 것 자체는 <한겨레>같은 정론지에서 뉴스가 되기 힘들지만, 재벌 회장이 돈과 권력을 이용해 젊은 여성을 죽음으로 내몬 사건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저는 사건이 일어난 호텔을 권역으로 하는 해당 경찰서로 달려갔습니다. 변사 사건을 맡고 있는 담당 팀장을 1시간 넘게 추궁했습니다. 제보받은 여성의 이름과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실은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담당 팀장은 “유서를 남긴 것은 사실이나 유서는 유가족이 가져갔고, 그 내용은 확인해줄 수 없다”고 잡아뗐습니다. 그러면서 “회장님 관련한 내용은 없다. 만약 내 말이 거짓으로 드러나면 내가 전 기자 아들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애초 제보 자체가 경찰 쪽에서 나온 것이라 신빙성이 매우 컸지만 저는 결국 이 사건의 꼭지를 따지 못 했습니다. 재벌 회사가 유가족한테 이미 거액을 쥐어줬다는 소문도 돌았고, 유가족들의 연락처를 확보하는 데도 끝내 실패했습니다.
대한민국 0.1%인 이들의 엇나간 말과 행동으로 나라가 연일 시끄럽습니다. 다음번엔 0.1%의 비리와 비위 소식이 들려올 때 반드시 꼭지를 따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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