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한 달 동안 쏟아진 수많은 보도 가운데 유독 언론을 달궜던 키워드는 가수 겸 배우 박유천의 성폭행 의혹과 함께 영화감독 홍상수와 배우 김민희의 열애설이었습니다. 인터넷 매체뿐 아니라 소위 `주류 언론’이라고 불리는 주요 일간지, 방송사까지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보도들을 쏟아냈습니다. 추측성 보도, 마녀사냥식 보도, 개인 간 주고받았다는 에스엔에스(SNS) 메시지 내용까지 보도됐습니다. 유명 연예인이 연루됐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보도가 이어지자 일부에서는 “사건의 본질이 호도되고 있다”(박유천 사건), “개인의 사생활 문제다”(홍상수-김민희 열애) 등의 지적도 나왔습니다. 그래서 <한겨레>가 최근 두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를 다시 짚어봤습니다. 두 사건 보도는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요?
박유천 성폭행 의혹 보도 초반 성폭행 혐의 초점서 화장실로 관심 옮겨 선정성 부각 “심각한 사건인데 화장실 집착해 희화화” “황색 저널리즘 사례”
우선 박유천 성폭행 의혹에 대한 보도들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박씨 사건은 지난 13일 한 유흥업소 직원 이아무개씨가 박씨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를 한 사실이 알려지며 불거졌습니다. 초반에는 강남구청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복무 중인 박씨가 어떻게 유흥주점에 갈 수 있었는지 박씨의 근무 행태를 둘러싼 보도들이 나왔습니다. <와이티엔>(YTN)은 15일 `이슈 인사이드’라는 코너에서 “박유천이 갔다는 일명 `텐 카페’…어떤 곳인가”를 집중 조명했습니다. `텐 카페’ 여성 종업원을 인터뷰한 언론도 있었습니다.
박씨를 고소했던 여성 이씨가 “성관계에 강제성이 없었다”며 고소를 취하했지만 16일 박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또 다른 여성이 고소장을 접수하면서 사건은 폭발력을 더했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박씨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한 여성이 2명이 더 나타났고, 모두 `화장실’이라는 공간에서 성폭행을 당했다는 진술이 나오자 일부 언론은 이성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일보 페이스북 갈무리
다수 언론에서 고소장을 접수한 여성들을 `고소녀’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일보>는 페이스북을 통해 이 사실을 전하며 샤워실에서 옷을 벗고 있는 박씨 사진과 함께 “아 빨리 좀 나와요 (…) 화장실을 몇시간을 쓰는거야 대체”라는 설명을 붙였습니다. 서울지방경찰청이 박씨 사건 전담팀에 성폭력 수사관을 투입하기로 했다는 소식에는 “박유천, 그가 가면 길이 된다”는 문구를 달았습니다. 사실로 밝혀질 경우 피해 사실이 선연한 성폭행 사건을 해프닝처럼 다룬 겁니다.
이후 <서울신문>은 “심리전문가들이 분석한 `박유천 그림’…“`뷰티풀’과 변기 연상, 흔하진 않은데”라는 기사에서 박씨가 과거 그린 것으로 알려진 화장실 그림과 종이컵 낙서에 대한 전문가들의 심리분석까지 보도했습니다. 페이스북에선 “한편에서는 화장실 성폭행 의혹을 희화화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적었습니다.
서울신문과 국민일보 페이스북 갈무리
실제 전문가들이 꼽은 박씨 관련 보도의 문제 중 하나가 바로 화장실이라는 장소를 매개로 사건을 희화화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박씨 개인에 대한 희화화도 포함됩니다.
이윤소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은 “화장실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이것이 심각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박씨의) 화장실 집착을 강조하면서 농담의 소재가 되도록 만들고 있다. 언론 보도 방식이 사건의 본질과는 멀어지게 (사건이) 소비되게 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소위 전문가들이 나와 박씨의 심리분석을 하는 것도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데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닌데도 언론이 원색적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YTN 페이스북 갈무리
21일 <와이티엔>(YTN)이 피해 여성들이 경찰 조사에서 밝혔다는 박씨의 `화장실 내 제압 방식’을 전한 `단독’ 보도도 도마에 올랐습니다. 여성의 피해 상황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자세하게 재현한 이 보도를 보며 “불쾌하다”, “지나치다”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일반인과 일반인의 성폭력 사건을 이렇게 보도했다면 큰일 날 만한 일”이라며 “박유천이 잘못이 있다면 정상적인 사법적 절차를 밟게 해야 하는데 언론재판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그는 “신문, 방송 인터넷 언론의 경우 모두 청소년도 볼 수 있는데, 학교와 학부모가 읽거나 보도록 권장하는 매체들에서 다루는 내용이 지나치게 저급하다. 언론이 유해한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선정적이고 상업적인 황색 저널리즘의 대표적 사례가 이번 보도라고 생각한다”고도 지적했습니다. 아직 박씨 사건은 경찰 수사 중에 있습니다.
김민희·홍상수 열애설 사생활 문제를 카톡 메시지 공개 등으로 불륜 몰며 관음증 자극 “공익성·국민알권리 차원과 전혀 관련없는 인권침해 보도일뿐”
이제 홍상수 감독과 김민희씨의 불륜설을 다룬 보도들로 넘어가겠습니다.
사건은 21일 한 인터넷 연예 매체의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성인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사생활 문제인데도 다수 언론은 앞다투어 보도 경쟁을 했습니다.
조선일보, YTN, 국민일보 페이스북 갈무리
<조선일보>를 비롯해 몇몇 언론은 22일 여성잡지 <우먼센스>가 단독 입수했다며 공개한 김씨 어머니와 홍 감독 부인이 주고받았다는 카톡 메시지를 그대로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홍 감독 가족 쪽은 곧바로 `홍 감독 부인이 비보도를 전제로 언급한 것을 <우먼센스>가 보도했으며 카톡 내용은 허위 짜깁기’라고 주장하며 언론중재위에 이 잡지를 제소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 카톡 메시지 보도를 접한 수많은 독자들은 이미 메시지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국민일보, 조선일보 페이스북 갈무리
홍 감독과 김씨를 둘러싼 보도들은 점입가경이었습니다.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확인할 수 없는 `~카더라’ 기사에서 20년 전 개인사, 심지어 이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건까지 선정적인 보도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내용의 사실 여부는 고려 대상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인터넷 매체가 아닌 소위 기성 언론, 주류 언론들이 최근 에스엔에스를 통해 지면 혹은 방송에 싣는 뉴스보다 가벼운 연성뉴스를 내보내는 것이 추세라고 해도, 일부 언론사가 운영하는 페이스북에서는 언론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저급한 내용과 언어가 사용됐습니다. 김동찬 언론연대 사무처장은 “(기성) 제도 언론은 규모도 크고 독자들도 일반 연예 매체보다 신뢰성을 갖고 볼텐데 사안의 선정성에 휩쓸려서 보도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YTN, 국민일보 페이스북 갈무리
“관음증 보도 같은 것으로, 시민들이 알아야 할 정보가 하나도 없다. 언론이 말하는 알권리와 전혀 관련이 없는 이슈로 분명한 사생활의 영역이다.”
김동찬 사무처장은 관련 보도들을 두고 이렇게 평가합니다. 그는 “이게 과연 연예인이 아닌 정치권 인사의 문제였다면 과연 언론이 이렇게까지 보도했을까”라며 “공적인 영역도 이렇게 집요하게 보도하지 않으면서 결혼생활이라는 사적 영역에 대한 부분을 이렇게 보도하는 것은 권력관계하고도 상관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일부에서는 언론이 `세월호 침몰 당시 세월호에 실렸던 철근이 제주 해군기지로 향하는 것이었다’는 보도 등은 철저히 외면한 것과 비교하며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김언경 사무처장도 비슷한 의견을 밝혔습니다. 그는 “언론이 보통 `인권 침해적 요소가 있지만 국민의 알권리가 있기 때문에 보도한다’며 공익성을 강조하는데, 이 보도들에서 대체 어떤 공익적 요소가 있는지 생각하고 보도하길 바란다”고 꼬집었습니다.
주말을 거치며 두 사건을 둘러싼 보도는 한풀 꺾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광적인 보도들은 언제든지 다시 불붙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보도들, 이대로 괜찮다고 보시나요?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디스팩트 시즌3#9_남들은 알려주지 않는 브렉시트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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