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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0.29 14:44 수정 : 2015.10.29 21:28

검찰

[뉴스AS] 박근혜 정부 마지막 검찰총장 인선 관전포인트 ‘스펙VS로열티’
 
추천위, 김수남·김경수·박성재·김희관 등 4명…12월1일 취임
역대 대통령은 ‘로열티’ 중시…스펙 앞선 채동욱 총장은 ‘혼외자’ 낙마

검찰총장후보자추천위원회가 28일 차기 총장 후보자로 김수남 대검차장과 김경수 대구고검장,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 김희관 광주고검장을 추천했습니다. 이들 중 박근혜 대통령의 낙점을 받은 이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친 뒤 12월1일 임기가 만료되는 김진태 총장의 업무를 넘겨받게 됩니다.

이번 총장은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검찰총장입니다. 재임 중에 큰 사고(!)를 치지 않는다면 박 대통령과 남은 2년의 임기를 함께하게 됩니다. 청와대로서는 이번 총장 인선에 더욱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권 말기에는 늘 ‘권력형 비리’가 많이 터지기 때문입니다. 자칫 검찰의 ‘칼’이 현 정권을 겨누는 일은 피하고 싶을 테니까요.

검찰총장이 되려면 무엇보다 수사를 잘 알아야 하고 정의감이 투철해야 합니다. 수사를 잘 모르면 일선 검사들의 수사를 제대로 지휘하지 못합니다. 서투른 수사 지휘는 오히려 검사들의 수사 의지를 꺾기 십상입니다. 정의감이 약한 것은 더욱 문제가 됩니다. 권력형 비리에 대한 수사가 무뎌지기 때문입니다. 정권의 압력으로부터 검사들을 보호해 주지도 못합니다.

하지만 실제 검찰총장을 뽑는 데 적용되는 기준은 이런 것들이 아닙니다. 정의감과 수사 의지 같은 것들이 주요 잣대라면 오죽 좋겠습니까만, 검찰 총수 임명권한을 가진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의 관심은 다른 데 있습니다. 바로 ‘스펙’과 ‘로열티’입니다.

스펙은 검찰 내 주요 보직을 제대로 거쳤는지를 보여줍니다. 주요 보직으로 꼽히는 자리는 서울중앙지검장과 1·2·3차장, 법무부 검찰국장·과장, 대검찰청 소속 검사장과 수사 및 공안 기획관, 대검차장 등입니다.

스펙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대체로 ‘조직 장악력’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주요 보직을 거쳤으면 그만큼 검찰 안에서 인정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후배 검사들이 믿고 따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기소권을 독점한 막강한 검찰 조직을 장악하지 못하면 정권은 불행해지고 국민도 피곤해집니다.

로열티는 ‘충성도’입니다. 여기서 충성도는 국민이 아닌, 정권에 대한 충성도를 의미합니다. 충성도가 약하다면 정권 입장에서는 치명적인 결격 사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정권 말기나 정권 교체기에 임명권자를 향해 칼을 겨누는 일은 정권에 크나큰 비극입니다. (과거 그런 사례가 종종 있었습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 수사 당시 검찰총장은 노 전 대통령이 임기 말에 임명한 이였습니다.)

문제는 스펙과 로열티가 비례 관계에 있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오히려 반비례 경향이 강합니다. 스펙이 떨어지는 이를 총장에 임명하면 충성도가 엄청나게 높아집니다. 경쟁자에 비해 스펙이 약한데도 총장으로 뽑아줬으니, 임명권자한테 ‘보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마련입니다. 이런 총장은 국민이 아닌, 청와대를 바라보고 일을 하게 됩니다.

역대 정권들은 대체로 스펙보다 로열티를 우선순위에 뒀습니다. 스펙이 엇비슷할 경우 정의감이나 수사의지 보다는 로열티를 더 중시했습니다. 청와대 근무 경험이 있는 검사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얘기입니다. 검찰 독립을 보장한 노무현 정부도 이런 ‘유혹’에서 자유롭지 않았다고 합니다. 노무현 정부는 ‘강정구 교수 사건 수사 지휘권 파동’으로 단기간에 낙마한 김종빈 총장 후임으로 대선자금 수사로 여론의 지지를 받은 안대희 당시 대검 중수부장을 제치고 정상명 대검차장을 선택했습니다. 스펙은 큰 차이가 없었지만, 로열티에서 정 총장이 앞섰다고 합니다. 정 총장은 고 노무현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시절부터 친분이 있는 사이였습니다. 사시 합격이 늦은 노 전 대통령이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기들과 서먹서먹하게 지낼 때, 개중 나이가 많은 편인 정 총장은 노 전 대통령을 ‘형님’이라 부르며 친하게 지냈다고 합니다.

로열티를 지나치게 앞세운 총장은 검찰 조직에 큰 상처를 줍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MB(이명박) 정부 때의 한상대 전 총장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같은 고대 출신의 한 전 총장은 MB 정부 이전까지는 사시 동기(23회)들 가운데 선두 그룹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MB 정권에서 박한철 헌재소장과 황교안 국무총리, 황희철 전 법무부 차관 등 ‘쟁쟁한’ 동기들을 제치고 총장에 올랐습니다. MB 정부는 그를 총장으로 임명하기 위해 서울고검장에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역진’시키는 무리수를 두기도 했습니다.

한 전 총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비리 의혹’ 수사에 무리하게 개입했습니다. 사건 관계자 전원을 무혐의 처리하기 위해 대검 간부를 동원해 검사들을 압박했습니다. 수사팀은 청와대 경호처 일부 직원에 대해선 기소해야 한다고 버텼지만, 한상대 총장은 막무가내였습니다. 결국 수사팀은 이 전 대통령의 아들 시형씨를 비롯해 김인종 전 청와대 경호처장, 김태환 전 청와대 특별보좌관 등 7명을 전원 무혐의 처리했습니다.

당초 수사팀은 이 전 대통령이나 아들 시형씨 등에 대해선 사법처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반면, 김 전 처장이나 김 전 특별보좌관 등에 대해선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기소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수사팀의 판단은 이후 출범한 이광범 특검팀에 의해서 옳은 것이었음이 입증됐습니다. 이광범 특검팀은 김 전 처장과 김 전 특별보좌관을 특경가법상 배임 혐의로, 심형보 전 청와대 시설관리부장은 공문서 변조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습니다.

한상대 전 총장은 내곡동 사건 종결 뒤 약 4개월 뒤 사상 초유의 ‘검란(檢亂) 사태’로 불명예 퇴진했습니다. 내곡동 수사팀을 누르는 데 동원했던 대검 간부를 축출하기 위해 대검 중수부 폐지를 시도하다가 검사들의 반란으로 역풍을 맞았습니다. 이 사태는 검찰 조직에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첫 검찰총장으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을 임명하려다,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의 반발에 부닥쳐 스펙에서 앞선 채동욱 당시 대검 차장을 선택했습니다. 채 전 총장은 잘 알려진대로 ‘국정원 댓글 사건’에서 수사팀의 의견을 받아들여 청와대와 맞서다 ‘혼외자 논란’으로 단기간에 낙마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박근혜 정부는 로열티의 중요성을 절감했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요? (하긴, 박 대통령 입장에선 큰 고민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후보들 모두 로열티를 의심할 필요는 없어 보이니까요.)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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