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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1심에서 당선 무효형인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은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지방법원 법정을 나서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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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AS]
조희연 후보, 최경영 기자가 제기한 의혹 기자회견서 공표
1심 재판부 “미필적이나마 허위사실 인식했다” 판단 내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1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습니다. 대법원 선고까지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교육감 직을 상실하게 됩니다.(▶ 관련 기사 :
조희연, 1심 벌금 500만원…확정 땐 당선 무효 ) 조희연 교육감이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은 혐의는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위반’입니다. 6·4 지방선거 구도가 한창이던 지난해 5월 조희연 당시 후보가 상대 고승덕 후보에 대한 허위 사실을 공표했다는 겁니다. 지난해 6월 치러진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시곗바늘을 1년 전으로 돌려 상황을 찬찬히 톺아보겠습니다.
2014년 3월18일 진보 진영이 서울시교육감 단일 후보로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를 선출했습니다. 예비 경선에서 장혜옥 학벌없는사회 대표, 최홍이 서울시의회 교육위원장과 겨룬 결과였습니다.
후보를 단일화한 진보 진영과 달리 보수 진영은 후보가 난립했습니다. 문용린 당시 서울시교육감이 3월25일 재선 도전을 선언했고,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고승덕 변호사는 5월7일 뒤늦게 “교육청을 관료형 감독기관에서 교육 서비스 제공 기관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하며 출마를 공식 선언했습니다. 중간에 보수 진영의 이상면 후보, 진보 진영의 윤덕홍 전 교육부총리가 출마 선언을 했지만 별다른 변수가 되진 못했습니다. 선거는 크게 3파전으로 치러졌습니다.
■ 서울시교육감 선거 초반은 ‘고승덕-문용린 보수 2파전’
하지만 ‘진보 단일화-보수 분열’의 구도가 진보 진영에 유리하게 작용하진 않았습니다. 문제는 상대적으로 낮은 조희연 교수의 인지도 때문이었습니다. 문용린 전 교육감은 교육부 장관을 지낸데다 현직 교육감의 인지도를 고스란히 안고 있었습니다. 고승덕 변호사는 행시와 외시, 사시에 모두 합격한 경력으로 TV에도 자주 출연했고 18대 국회의원까지 지냈던 인물입니다. 반면 조희연 교수는 진보적 민주주의 학자로 학계에선 명망이 있는 인물이었지만, 대중적 인지도는 다른 두 후보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가장 먼저 출마 선언을 하고도 오랫동안 주목을 받지 못한 까닭입니다.
<한국일보>가 같은해 5월15일 공개한 서울시교육감 후보 지지율을 보면, △고승덕 후보 29.9% △문용린 후보 17.6% △조희연 후보 8.3% △이상면 후보 7.5% △윤덕홍 후보 5..4%였습니다. 다만 이때 ‘모름/무응답’이 31.3%로 높았던 점이 주목됩니다. 그만큼 부동층이 컸다는 얘기입니다. 같은날 <중앙일보>가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도 비슷합니다. 고승덕 후보 21.0%, 문용린 후보 13.6%, 조희연 후보 4.1% 등이었습니다. 이 여론조사에서 ‘모름/무응답’은 무려 53.0%나 나옵니다.
이 구도는 선거를 2주 정도 앞둔 5월20일 이후까지 계속됩니다. 5월21일 공개된 지상파 방송 3사의 공동 여론조사 결과, 고승덕 후보는 30.1%, 문용린 후보는 19.1%, 조희연 후보는 10.2%의 지지율을 기록합니다. ‘모름/무응답’은 34.4%였습니다. 진보 진영의 윤덕홍 후보가 사퇴하고 인지도가 조금씩 올라가면서 조희연 후보의 지지율이 조금 올라갔지만, 여전히 고승덕 후보에 견줘 3분의 1수준으로 뒤처진 상태였습니다. 대부분의 선거 전망도 고승덕-문용린 보수 2파전으로 결론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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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 후보, 최경영 기자 트위터 의혹을 기자회견서 공표
이런 현실이 조희연 캠프의 마음을 조급하게 몰았던 걸까요. 5월25일 조희연 후보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승덕 후보가 두 자녀를 미국에서 교육시켜 자녀들이 미국 영주권을 갖고 있고 고 후보 자신 또한 미국에서 근무할 때 영주권을 보유했다는 제보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제보는 한 기자의 트위터에서 비롯했습니다. 최경영 <뉴스파타> 기자는 5월24일 자신의 트위터(@kyung0)에 “서울시교육감 후보로 나선 고승덕 후보는 자녀들을 어디서 공부시키셨나요? 한국에서 공부를 시키지 않으셨으면 왜 그러신건가요? 본인 역시 미국 영주권을 갖고 계시지요? 정말 한국의 교육을 걱정하십니까? 걱정할만큼 잘 알고 계십니까? 궁금합니다”라는 글을 씁니다. 이 트위트는 선거를 앞두고 폭발적으로 리트위트됐습니다.
트위터의 폭발적인 반응에 고무됐던 걸까요. 조희연 후보는 하루 만에 이 주장을 기자회견으로 대중에 공표했습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기자들 중 일부는 ‘사실 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것 같은데 좀 무리한 주장이 아닌가’ 생각했다고 합니다.
25일 오후 고승덕 후보는 ‘조희연 후보님께 드리는 편지’라는 제목의 반박문을 내놓습니다. 고승덕 후보는 “저는 영주권을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며 “단, 자녀의 미국 교육은 사실이고 영주권이 아닌 시민권을 보유하고 있다. (중략) 전처와 결별의 과정을 겪으면서 아이들을 미국으로 떠나보내게 되었다. 제 아이를 한국에서 교육시키지 못한 것은 저가 원하지 않고 어쩔 수 없이 겪게 된 가슴 아픈 가족사이고, 그 외로움을 저는 지난 10여년 간 많은 청소년과 만나면서 채울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반박 이후에도 공방은 계속됐습니다. 조희연 후보는 고승덕 후보의 해명이 미흡하다며 “고 후보가 몇년 전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한 뒤 ‘저는 미국 영주권이 있어서 미국 가서 살면 된다’고 말했다는 다수의 증언이 있다”며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영주권을 받은 적이 없다는 내용 증명을 떼어주면 깨끗하게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고 후보는 자신의 여권이 찍힌 미국 비자를 공개했습니다. 영주권자는 비자를 받을 필요가 없으므로 자신이 영주권자라는 조희연 후보의 주장이 틀렸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고승덕 후보는 27일 조희연 후보를 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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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혹 사실 아닌 것으로 밝혀지자 최경영 기자 사과
최경영 기자는 28일 “고승덕 후보 자신의 영주권 소지 의혹 부분은 고 후보의 서류 제출로 해소된 듯 합니다. 제가 의혹을 제기한 부분의 근거는 있습니다만 말할 필요가 없게 됐고요. 고 후보께 사과 드립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조희연 캠프는 이미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기자회견에서 대중에 공표했습니다. 조희연 후보는 27일 SBS 라디오와 KBS 라디오에 출연해서도 같은 주장을 공표하기도 했습니다.
이 의혹 논란이 일정 부분 영향을 끼친 걸까요. 28일 MBC와 SBS의 여론조사 결과, 고승덕 후보는 26.1%, 문용린 후보 23.5%, 조희연 후보는 14.9%의 지지율을 얻어 판세가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27~28일 <조선일보> 여론조사에서도 고승덕 후보는 28.9%를 나타냈지만, 조희연 후보가 17.4%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문용린 후보(16.7%)를 앞서는 결과를 나타냈습니다. 물론 이 결과는 의혹 논란 때문만은 아닙니다. 5월 중순까지 ‘모름/무응답’이던 부동층 시민들이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서울시교육감 후보들을 자세하게 알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았던 조희연 후보의 지지율이 더 올라간 측면이 있을 겁니다. 학생·노동단체·교육계 등의 지지 선언이 잇따르며 차츰 조희연 후보의 정책이 알려진 결과도 있었을 겁니다.
조희연 후보 쪽이 자신감을 얻은 걸까요. 6·4 지방선거를 엿새 앞둔 5월29일, 이번에는 고승덕 후보의 아들이 이중 국적을 가진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합니다. 고승덕 후보는 30일 이에 대해 해명하면서 “아들은 대한민국 국민이 우연히 미국에서 태어나 이중국적을 갖게 된 것”이라며 “아들은 건드리지 말아주십시오. 잘못을 저질렀으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며 눈물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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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덕 후보의 딸 캔디 고씨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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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덕 후보 딸 캔디 고의 결정적 폭로
결국 이런 의혹들이 선거 막판까지 결정타가 되진 못합니다. 여전히 무난하게 고승덕 후보가 교육감에 당선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습니다.
이때 결정적인 변수가 등장합니다. 많은 분들이 기억하실 겁니다. 미국에 사는 고승덕 후보의 딸 캔디 고(당시 27살)가 선거를 닷새 앞둔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고승덕은 자식들 교육을 방기했다. 교육감이 될 자격이 없다”는 글을 올린 겁니다. 캔디 고는 글을 올린 직후인 6월1일 새벽 <한겨레>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고 후보가 ‘아들은 건드리지 말아달라며 울었다’는 보도를 보고 공개 편지를 쓸 결심을 했다”며 “그 눈물은 자기가 버리기로 결정한 아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현실의 삶에서 저와 제 동생에게 그런 정도의 감정을 보인 기억이 없다”고도 말했습니다.(▶ 당시 인터뷰 전문을 보시려면 :
[단독] 고승덕 딸 “‘아들 때문에 울었다’는 기사 보고 공개 편지” )
선거 판세는 한 방에 뒤집혔습니다. 고승덕 후보가 자신을 “처가에 아이를 빼앗긴 아버지”라고 호소하며 딸의 폭로가 ‘공작정치’라고 맞서고 유세에서 “딸아 미안하다”라고 외치기도 했지만, 이미 상황은 늦었습니다. 6·4 지방선거 결과, 조희연 후보가 38.1%를 득표해 29.0%를 득표한 문용린 후보를 제치고 서울시교육감에 당선됐습니다. 고승덕 후보는 3위로 추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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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덕 서울시 교육감 후보가 1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선거사무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친딸 캔디 고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 대한 입장을 말하다가 물을 마시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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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재판부 “미필적이나마 허위 사실 인식하고 공표”
1년 전의 이런 역사를 톺아봤으니, 이제 다시 이번 1심 판결의 쟁점을 짚어보겠습니다. 조희연 교육감의 이번 혐의는 ‘허위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공표’했다는 점입니다. 조희연 교육감 쪽은 1년 전 의혹 제기를 두고 신뢰할 만한 기자의 문제 제기를 근거로 공직 후보자의 자격 문제에 관한 해명을 요구한 것이라고 재판에서 주장했습니다. 그러니 ‘의견 표명’이지 허위 사실 적시가 아니라는 말이지요.
하지만 재판부는 “기본적으로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대해 증거로 입증이 가능하면 사실로 보는 것인데, 그걸 회피하기 위해 인용을 한다든지 ‘소문에 의한’, ‘제보에 의한’ 등의 가정적인 표현이라고 할 지라도 사실이라고 본다”며 “간접적으로 우회적인 방법으로 사실을 암시하면 사실 적시”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재판부는 미국 영주권을 취득해서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증거로 입증 가능한 사실이라고 보인다”며 “검찰이 미국 대사관 외교부 통해서 외교 노트를 증거로 제출해 (고승덕 후보가) 미국 영주권을 취득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에 공표한 내용은 허위로 입증됐다”고 덧붙였습니다.
재판부는 또 “최경영 기자는 이 법정에서 공익적 차원에서 문제제기를 했다고 했지만, 객관적 자료가 부족해 기사화를 하진 못 했다”며 “5월27일 (고승덕 후보가 조희연 후보를) 고발하자 사과한다는 취지의 글을 게재했다”고 밝힙니다. 이어 “조희연 후보는 그와 같은 보고를 받고, 최경영 기자 트위터의 진위를 확인하거나 추가로 계속 해야하는데 그런 지시를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습니다.
재판부는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조희연 후보 쪽이 “미필적으로나마 허위에 대한 인식이 있다고 보여진다”며 “(고승덕 후보의 영주권 보유 의혹에) 진실로 보일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습니다. 재판부는 또 선관위가 경고 처분을 하고 경찰이 무혐의 처리한 사안을 검찰이 공소권을 남용해 기소했다는 조희연 교육감 쪽 주장에 대해서는 “선관위 경고 처분은 행정 처분이고, 그와 달리 기소된 사례도 많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자, 어떠신지요. 물론 이번 판결은 1심일 뿐입니다. 대법원 판결까지 치열한 법리 공방이 펼쳐지겠지요. 1년 전 선거판의 역사에 대해서도 이 글에 담지 못한 여러 가지 팩트들이 남아 있을 겁니다. 조희연 교육감 쪽 처지에선 혐의에 견줘 벌금 500만원 형이 과하다는 비판이 나올 법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한국 사회가 ‘보수에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불평등한 구조라고 해도, 그 구조가 모든 수단을 정당화해주진 않습니다. 선거일을 며칠 앞둔 조급한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싸우는 방법이 좀 더 신중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 수단이 후보자의 개인 신상에 대한 폭로보다는, 교육 정책에 대한 논쟁이었다면 더 바람직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교육 정책에 대한 이슈화가 힘들었던 선거였다고 하더라도 말이지요.
앞으로의 재판 결과를 주시해야겠지만, 지금까지의 상황만 돌아봐도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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