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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15 17:57 수정 : 2019.10.16 09:38

전우용
역사학자

“양생(養生)이라는 것은 혈액을 보양하여 유통에 막힘이 없도록 함으로써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처를 깨끗이 하고 더러움을 피하며 절식하고 운동하는 것이 양생의 근본이다. 따라서 의식주로 요체를 삼는다. 의복은 기온에 맞춰 입어 추위와 더위를 피하고, 음식은 양을 조절하여 마르거나 뚱뚱해지는 것을 피하고, 주거는 운동에 편리하게 하여 막히는 것을 피해야 한다.”(박영효, 1888)

옛사람들은 생명이 피에 있다고 믿었다. 죽어가는 부모에게 자기 피를 먹여 회생시켰다는 효자 이야기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생명이 깃든 피를 잘 보호하고 관리하는 것을 양생이라 했는데, 이는 온전히 개인의 책임이었다.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고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 국가의 책임으로 인식된 것은 근대 이후였다. 1871년 일본 이와쿠라 사절단 일원으로 유럽을 견학한 나가요 센사이는 유럽 국가들에 전염병 예방, 빈민 구제, 토지 청결, 상하수도 관리, 가옥 건축 규제, 약품 및 음식물 단속 등 ‘세상의 위해를 제거하고 국가의 복지를 완전히 하는 정부 기구’가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는 이 포괄적인 일을 <장자> ‘경상초’(庚桑楚) 편에 있는 단어인 ‘위생’(衛生)으로 명명했다.

‘위생’이라는 단어는 1884년 <한성순보>를 통해 수입되어 빠르게 확산했다. 초기의 위생은 청결과 대략 같은 뜻이었으며, 불결은 곧 비위생으로서 자신뿐 아니라 타인까지 해치는 악덕이었다. 위생을 위해 가장 중시된 것은 ‘깨끗한 물’이었다. 상수도가 보급된 뒤 우물물과 생수는 비위생적인 물로 취급되었다. 이때 생수(生水)는 끓이거나 화학 처리하지 않은 물을 의미했다.

우리나라에서 생수가 판매되기 시작한 것은 1972년 코리아약수건강회라는 곳에서 생수 배달업을 하면서부터였다. 1980년께에는 지하수를 식수로 판매하는 업체가 4~5곳으로 늘었다. 생수 시판 초기에는 물을 사 마시는 것이 사치라는 비판도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거리에서 생수병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흔히 본다. 현대 한국인 다수는 생수를 ‘끓이지 않은 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물’로 해석한다. 수돗물은 생수가 아니다. 끓이거나 소독하지 않은 물이 더 위생적이라는 믿음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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