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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02 17:53 수정 : 2019.07.03 09:33

전우용
역사학자

1919년 11월, 후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한글학자 김두봉은 상해 청년단 주최의 기원절(현재의 개천절) 기념 강연회에서 태극기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태극의 푸른색과 붉은색은 자유와 평등, 힘과 사랑을 표시함이니 이 둘은 우리 민족의 전통적 국민성이라. 힘 있는 곳에 자유가 있고 사랑이 있는 곳에 평등이 있나니 둘은 서로 동반하여 헤어지지 않는 것이므로 원내의 곡선으로 서로 포옹하게 하니라. 자유와 평등의 양대 이상을 기초로 삼은 우리 민족의 영광은 세계만방에 퍼져야 할지니 사괘는 이를 표시함이라.”

태극기는 유교 경전인 <주역>의 원리를 도상화하여 왕조국가의 상징물로 삼은 것으로서, 자유 평등 등 근대적 가치와는 아무 관계가 없었다. 하지만 3·1운동으로 민국을 선포한 뒤에도 새 국가의 이념에 맞는 새 국기를 제정하자고 주장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안중근이 태극기에 손바닥 도장을 찍은 것에서 알 수 있듯, 태극기는 이미 독립운동의 주요 상징물이 된 상태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새 국기를 만드는 대신 태극기 도상을 근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했다.

해방 뒤에도 한동안은 모두가 행사 때마다 태극기를 들었으나, 곧 이념에 관계없이 도상의 ‘봉건성’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사회주의자들이 선수를 쳤다. 1946년 봄, 이른바 ‘신탁통치’ 문제를 둘러싸고 사회가 둘로 갈라지자 그들은 태극기 대신 적기를 들었다. 1947년 11월, 북조선인민위원회 3차 회의의 결의에 따라 발족한 조선임시헌법제정위원회는 새 국기 제정에 착수하여 이듬해 9월8일, 북한 정권 수립과 동시에 공포했다. 이 국기에서 상하단의 파란색은 평화, 그 아래 흰색은 광명, 가운데 붉은색은 혁명정신, 원 안의 붉은 별은 공산주의 사회를 상징했다.

대한민국 정부도 ‘국기시정위원회’를 구성하여 새 국기 제정을 검토했으나, 위원회는 ‘반역도배’가 새 국기를 만든 상황에서는 태극기를 고수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이후 대한민국에서 북한의 ‘인공기’는 자체로 ‘반역의 상징’이 되었다.

지난 6월30일 판문점 남쪽 자유의 집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장소에는 성조기와 인공기가 번갈아 놓였다. 분단의 역사가 새로운 단계로 이행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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