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6.11 17:27
수정 : 2019.06.11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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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봉이통닭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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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강화도조약 직후 한국에 온 일본인들은 한국인들이 자기들보다 키가 크고 힘이 센 데에 자괴감과 위협감을 느꼈다. 부산 제생의원 원장이던 일본 군의(軍醫) 고이케 마사나오는 <계림의사>(鷄林醫事)라는 책의 결론부에 이렇게 썼다. “혹자는 말하기를 한인의 신장은 지나치게 커서 체력이 그에 비례할 정도로 강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이는 실로 그러하다. 그렇지만 만약 그들이 전력을 기울여 우리에게 대비한다면 지금보다 체력이 더 뛰어나게 될 것이다. 우리 일본의 위생 개량을 도모하는 자의 급무는 식정(食政)이라 할 것이다.” 일본이 한국인의 저항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먼저 ‘먹는 것’에 관한 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일본인들이 보기에 한국인의 체력이 자기들보다 강한 이유는 고기를 많이 먹기 때문이었는데, 그 고기의 반 정도를 닭고기가 점했다.
한국인들이 언제부터 닭고기를 먹었는지 따지는 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지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하다. 백숙, 삼계탕, 용봉탕 등 닭고기의 조리법도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죽은 닭의 털을 벗기고 내장을 뺀 뒤 통째로 솥에 넣는 경우도 많았으나, 통닭이라는 말은 쓰지 않았다. 통오리, 통잉어 같은 말을 쓰지 않는 것처럼.
‘통닭’이라는 말이 처음 생긴 것은 일제강점기였는데, 가끔씩 시골 마을에 순찰 오는 일본 순사를 접대하기 위해서 다섯 집 단위로 순번을 정해 닭 한 마리씩 잡는 관행을 지칭했다. 조선시대 오가작통(五家作統)의 예에 따라 ‘다섯 집 단위로 잡는 닭’이라는 뜻으로 쓴 것이다.
손질한 닭의 날개와 다리를 접어 한 덩어리로 만들고 뱃속에 각종 소스를 넣은 뒤, 껍데기에 버터를 발라 오븐에 넣고 굽는 조리법은 해방 이후 미군을 통해 전래됐다. 이것을 ‘통닭구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말부터였다. 60년대 말에는 ‘전기구이 통닭’ 가게들도 출현했는데, 주로 크리스마스 특식이나 선물용으로 팔렸다.
현대 한국인들은 삶거나 끓인 닭보다는 굽거나 튀긴 닭을 훨씬 많이 먹는다. 한국의 통닭집 수는 전세계 맥도날드 매장보다 많다. 은퇴한 직장인 상당수가 통닭에 의지해서 생계를 잇는다. 먹는 닭은 엄청나게 늘어났지만 마당에서 종종거리던 병아리는 보기 어렵게 된 시대가 현대다.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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