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5.07 17:51
수정 : 2019.05.07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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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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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초 한국 초등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던 티브이 프로그램은 <우주 소년 아톰>이었다. 일본 만화가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 <철완(鐵腕) 아톰>을 토대로 만든 이 애니메이션은 전세계에서 인기를 누렸다. 연재가 시작된 것은 2차 대전 종전 7년 뒤인 1952년이었다. ‘작은’ 아톰이 거대 로봇들을 차례로 격파하는 스토리에 ‘2차 대전 패배에 대한 일본인의 복수심’이 담겼다는 사실이 알려진 건 꽤 시간이 흐른 뒤였다.
<우주 소년 아톰>의 뒤를 이어 <마징가Z>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한국산 애니메이션 <로보트 태권 V>도 나왔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장면은 어린이에게 적합하지 않다고들 생각했지만, 로봇이 로봇을 파괴하는 장면을 문제 삼는 사람은 없었다. ‘나쁜 로봇’이 사람을 괴롭히면 ‘좋은 로봇’이 나타나 물리쳐준다는 상상은, ‘신의 아들’인 영웅이 ‘괴물’을 물리쳐 인간을 구제한다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서사구조와 똑같다. 사람을 닮았으면서 사람보다 훨씬 큰 능력을 지닌 존재로 상정된 현대의 로봇은, 고대에 영웅과 괴물이 차지했던 자리를 대체했다.
인류가 인간의 일을 대신 맡는 자동기계를 상상하고 초보적으로나마 실현한 것은 기원전부터의 일이지만, 현대인에게 익숙한 로봇 개념은 한 세기 전에야 출현했다. 1920년 체코의 극작가 카렐 차페크가 <로섬의 만능 로봇>이라는 연극을 무대에 올렸는데, 이후 로봇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인간처럼 행동하는 기계라는 뜻으로 통용되었다.
우리나라에 로봇이라는 말이 처음 소개된 것은 1928년, ‘사람보다 진화한 인조인간’이라는 제목의 신문기사를 통해서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로봇은 인간의 미래가 유토피아가 될 것인지 디스토피아가 될 것인지를 결정할 물건으로 취급된다. 로봇 덕에 인간이 고된 노동에서 해방될 미래에 대한 기대와 로봇 탓에 직장을 잃거나 로봇에게 지배당할 미래에 대한 공포 사이에, 현대인의 미래관이 있다.
최근의 대표적인 세계 영웅은 로봇과 인간의 결합체인 아이언맨이다. 상상 속의 로봇은 이미 옛날 신의 지위를 얻었다. 인간이 로봇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길은, 로봇이 결코 대신할 수 없는 인간만의 성질을 더 개발하는 것밖에 없을 터이다.
전우용
역사학자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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