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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16 16:10 수정 : 2019.04.17 10:49

전우용
역사학자

지인이 물었다. “칼럼 제목은 현대를 만든 물건들이지만 물건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도 꽤 많던데? 물건을 어떻게 정의하는 거야?” 내가 답했다. “산 사람을 제외하고 형체를 갖춘 모든 것을 물건으로 취급해.” 그가 다시 물었다. “그럼 태아는?”

티브이 사극 등에는 종종 ‘물고’(物故)라는 말이 나온다. 표준국어사전은 ‘사회적으로 이름난 사람의 죽음’이라고 설명하지만, 본래는 ‘죽음’ 또는 ‘시체가 되다’라는 뜻이었다. “무진년에 주살당한 사람들의 노비로서 공노비로 삼은 자들 중에 도망쳤거나 물고하여 대신 세운 자들의 역(役)을 면제하라고 명했다.”(<정종실록>) 시체를 ‘연고 있는 물건’으로 부른 셈이다.

인류가 먼 옛날부터 태아를 사람으로 취급했는지 아닌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당장 우리나라의 조선시대만 해도 아이를 배기 위해 높은 산에 올라가 석불의 코 부위를 긁어 물에 타 마시는 사람이 있었던 반면, 뱃속의 아이를 ‘지우기’ 위해 독초를 먹거나 산에서 구르는 사람도 있었다. 태아는 물론 영아 살해도 무척 흔했다. 태어나자마자 바구니에 담겨 강에 띄워진 건 모세만이 아니었다. 태아가 자기 자식이 아니라고 의심한 남편들이 아내와 태아를 함께 죽이는 일은 전세계에서 일어났다. 의심받은 태아는 태어난 뒤에도 온전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고, 그 엄마의 남은 일생까지 나락으로 끌어내렸다. 이런 현상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임진왜란 때 왜적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의심받은 사람들이 모여 살아서 이태원(異胎院)이 되었다는 속설이 생겨났다.

가문과 개인의 명예, 극심한 가난, 또는 불길한 예언 때문에 수많은 여성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낙태를 강요받거나 스스로 원했다. 여성의 자발적 낙태를 죄로 규정한 것은 기원전 1200년께 아시리아의 법전이 처음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대한제국 시대까지도 임신부를 구타하여 낙태케 한 자만 처벌했다. 1912년 조선총독부는 ‘조선형사령’을 제정, 공포하여 자발적 낙태를 법적인 죄로 규정했다. 자신의 생명, 재산, 안전, 평판 등을 위협하는 타인을 물건 취급 하는 건 인간의 습성이다. 어쩌면 낙태를 죄로 규정했던 것 자체가,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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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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